‘혐오가 문제’라고 모두 말하지만, 각자가 인식하는 혐오는 다르다. 무엇을 어디까지 혐오로 인식할지,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해결책을 모색할지를 두고 또 다른 충돌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혐오의 원인과 맥락에 접근할 길을 찾는 대신, 겉으로 드러난 갈등 자체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한겨레21>은 이같은 혐오 현상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분석해보려 했다. 1부에서는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와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 뉴스 댓글 등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한국의 혐오가 온라인 공간에서 어떤 맥락 안에 축적돼왔는지를 살폈다. 온라인 공간은 오프라인 공간보다 혐오를 둘러싸고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곳이며, 언론과 정치인의 목소리를 통해 혐오가 확대재생산될 가능성이 큰 곳이기도 하다. 여성혐오 표현에 거울을 비추는 방식(미러링)으로 혐오를 되돌려주려 한, 온라인 커뮤니티 ‘메르스갤러리’의 성장 전후로 일간베스트저장소, 에펨코리아 등 남초 커뮤니티에서 어떤 흐름이 나타났는지, 퀴어문화축제 개최 전후로 포털 뉴스 이용자의 혐오 댓글 작성 행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등을 분석했다. 분석 방법으로는 혐오표현을 학습한 인공지능(AI) 알고리즘(헤이트스코어 알고리즘)을 이용했다. 1부에 이어 제1434호에 연재되는 2부에서는 혐오표현과 혐오범죄 등에 대응하는 외국의 사례를 전할 예정이다. _편집자주
3년 만의 해후였다. 2022년 7월16일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2019년 퀴어문화축제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공간에만 머무르다가 다시 거리로, 현장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고 외치는 13만5천여 명(주최 쪽 추산)이 서울광장에 모였다. 무지개가 광장을 수놓았다.
같은 날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알리는 한 온라인 기사(‘3년 만에 퀴어축제 vs 반대집회… 美 등 13개국 대사관 측도 참석’, <문화일보>)에는 2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3년 만에 열린 행사여서일까. 댓글만 보면,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반감이 더 거세진 듯했다. ‘맞불집회에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동성애 미화하지 말라’는 댓글 사이로 다음과 같은 익숙한 논리의 댓글들이 눈에 띄었다.
“변태성욕자들이 지들끼리 집구석에서 더러운짓 하든말든 관심없다. 근데 니들의 변태성욕을 왜 그리 못드러내서 안달이냐”
“일단 애들볼까 무섭다~~~왜, 점잖게는 할수없나?? 꼭 저렇게 티내면서 해야 하나?? 그게 더 이상해서 이질감이 드네”
자신은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합리적인 사람인데 성소수자가 자신을 드러내고 거슬리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혐오하게 됐다는 논리다. 퀴어문화축제 때마다 으레 등장하는 이런 주장은 성소수자가 혐오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전제하며 혐오의 피해자에게 혐오의 책임을 전가한다.
성소수자에 대해 특별히 거부감이 없던 사람들이 퀴어문화축제 ‘때문에’ 성소수자에게 적대감을 갖게 되는 걸까. 퀴어문화축제가 ‘지나치게 과감해서’ 오히려 혐오를 촉발하는 역효과를 일으켰을까.
<한겨레21>은 지식콘텐츠 스타트업인 ‘언더스코어’와 함께 이런 가설을 검증했다. 언더스코어가 자체 개발한 ‘헤이트스코어(HateScore) 알고리즘’(48쪽 기사 참조)을 이용해 2019년 8월~2022년 9월 성소수자 관련 포털(네이버·다음) 기사에 최소 한 번 이상 댓글을 작성한 1304명(네이버 535명, 다음 769명)의 댓글 총 286만7883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봤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온라인 기사에 댓글을 단 이들 1304명은 퀴어문화축제 전후 적어도 서른 개의 댓글을 다는 등 여러 기사에 활발히 댓글을 작성했다.
퀴어문화축제는 축제를 넘어 캠페인이자 사회운동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사회적 억압 때문에 숨어 지내던 이들이 ‘연대’ 위에 발 딛고 서서 스스로를 가시화하는 자리다. 참가자들이 집회·시위 신고를 위해 밤새우기를 마다하지 않고, 축제에 반대하는 세력의 맞불집회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광장을 지키는 이유다. 그러나 온라인 세상에서 오가는 ‘내 눈에만 띄지 마. 그럼 적어도 반대는 하지 않을게’라는 취지의 발언들은 교묘하게 이들을 위축시킨다. “축제조직위 등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에게 오히려 혐오가 늘어나는 책임을 씌워서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거죠.”(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 너무 과감한 정치적 움직임은 오히려 사회적 반발을 유발한다며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최선이라는 논리로 발목을 붙잡기도 한다.
다시 앞의 가설(‘퀴어문화축제 때문에 성소수자에게 적대감을 갖게 된다’)로 돌아가보자. 가설이 들어맞으려면, 원래는 혐오 댓글을 달지 않던 사람들이 퀴어문화축제를 기점으로 혐오 댓글을 달기 시작해야 한다.
퀴어문화축제 관련 기사들이 본격적으로 작성된 2022년 6월4일을 기점으로 1304명이 작성한 댓글을 추적한 결과, 퀴어문화축제 이전에도 혐오 댓글을 달던 사람들이 축제 이후에도 다시 혐오 댓글을 다는 등 기존 경향성이 그대로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그림1 참조) 1304명을 다시 기존에 성소수자혐오 표현으로 분류될 확률이 50% 이상인 댓글을 한 번이라도 단 적이 있는 사람(770명)과 없는 사람(534명)으로 나눠서 살펴봤다. ‘혐오’표현은 머신러닝(기계학습)으로 걸러냈다. 과거에 강한 혐오발언을 한 적 있는 이용자(770명)가 퀴어문화축제 이전과 이후에 혐오 댓글을 단 비율은 각각 이들이 작성한 전체 댓글의 1.34%와 1.28%로, 축제 개최 여부에 따라 큰 차이가 없었다. 혐오발언 강도에 따라, 상(434명)-중(435명)-하(435명)로 나눠 축제 전후 성소수자혐오 댓글 비중을 살펴봐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그림1 참조)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는 “퀴어문화축제를 기점으로 중도층으로 분류되는 이용자가 혐오발언을 더 많이 하는 정황은 관찰되지 않았으며 ‘원래부터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이던 사람이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계속 혐오발언을 하는 경향’이 재확인됐다”고 짚었다. 결국 성소수자혐오 댓글은 달던 사람이 또 달더라는 것이다.
퀴어문화축제, 동성혼 합법화, 차별금지법 국회 통과 등 특정 사건이나 이슈가 중도층이나 반대파의 더 강한 보수화를 유발한다는 가설에 통계적 근거가 없다는 연구는 미국에서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됐다. 2016년 정치학계 학술지(AJPS)에 실린 ‘여론의 백래시와 대중의 태도: 동성애자 권리의 정치적 진보는 역효과를 낳는가?’라는 제목의 연구를 살펴보면, 2400여 명에게 실험과 설문을 진행한 결과 퀴어퍼레이드나 의회에서의 동성혼 허용 법안 통과 등에 관한 기사를 읽고 나서도 실험 참가자들은 성소수자 이슈에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박한희 변호사는 “퀴어문화축제가 3년여 만에 열렸고 반대 축제가 맞선 것처럼 말하고들 있지만 실제로 (분석 결과는 퀴어문화축제 개최로) 논란이 가중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오히려 “정부나 정치권, 언론이 ‘사회적 논란이 가중된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는 것이다. 성소수자혐오 댓글은 그 실체나 진위 파악은 생략한 채 근거 없이 반복적으로 인용되면서 하나의 의견으로서 지위를 부여받는다. 특히 정치권은 퀴어문화축제 반대 여론의 눈치를 보거나 정치적 자산으로 삼기 위해 이러한 혐오 댓글에 적극 호응한다.
2021년 2월18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제3지대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한 텔레비전 토론에서 금태섭 후보가 자신처럼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차별에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축제를 광화문에서 하게 되면, 그런 것들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다음날 그는 퀴어문화축제의 신체 노출을 거론하며 “축제 장소를 도심 이외로 옮기는 게 적절하다는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안 대표의 발언이 성소수자 차별이라고 판단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댓글을 다는 사람이 계속 단다면, 혐오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인터넷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뜻이다. 혐오의 논리를 제공하는 반동성애 운동 세력이 오프라인에 여전히 존재하지만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치권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혐오발언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달던 사람들이 더 열심히 다는 것뿐이고 그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면 정치권에 ‘(누군가의 권리를 제한하는 주장을) 계속 듣고만 있을 거냐’고 물어볼 수 있겠죠.”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 뒤에 숨어 ‘계속 듣고만’ 있고 법 제정을 미룬 대표적 사례가 차별금지법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에 출연해 “사회적 합의라는 용어를 (실행을) 미루는 요소로 쓰기도 하지만 저는 실제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2년 5월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론조사 대상자(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1003명)의 67.2%가 ‘평등사회 실현을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얼마나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같은 여론은 외면하고 논쟁의 영역에 남겨뒀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인지, 합의의 대상이 누구인지 등은 따져보지도 못했다.
성소수자는 포털 뉴스 댓글창을 마주하고 압도되는 경험을 겪기도 한다. 지난 3년간 성소수자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댓글에서 혐오발언 비율이 함께 늘어났다.(55쪽 그림2 참조) 언더스코어 분석 결과, 포털 댓글 이용자 1304명의 3년간 댓글 흐름을 살펴보면 성소수자 관련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해당 일자의 성소수자 혐오 댓글 비율이 급격히 치솟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관련 이슈가 발생한 때는 크게 다섯 시기였다. ①고 변희수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당하고 트랜스젠더 합격자의 숙명여대 입학 논쟁이 발생한 2020년 1분기 ②차별금지법 발의 시도와 이태원발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6월 ③국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비율 통계가 발표된 2020년 7월 ④변희수 하사의 사망과 염수정 추기경의 동성애 지양 발언이 있던 2021년 2분기, 그리고 ⑤서울퀴어문화축제와 희귀 바이러스 질병 원숭이두창이 확산되던 2022년 7월이다.
이는 성소수자 관련 이슈가 발생해 관련 보도가 늘어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해당 일자에 각 이용자가 작성한 모든 댓글 중 성소수자혐오 댓글의 비율은 고작 1% 안팎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이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는 댓글창이 가져오는 착시효과를 짚었다. “해당 일자에 작성된 모든 댓글 중 성소수자혐오 발언의 비율이 1% 내외라면 전체 댓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높지 않은 거죠. 그런데 보통 성소수자 관련 기사를 클릭했을 때 눈에 보이는 다수 댓글이 부정적이면 여론이 부정적인가보다 인식하게 되잖아요. 그것이 당사자나 동료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고요.”
포털 뉴스와 그에 딸린 댓글은 여론의 바로미터처럼 여겨진다. 이런 시각을 경계하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1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뉴스 기사에 댓글을 다는 뉴스 이용자는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조사에 참여한 포털 뉴스 이용자(3967명) 가운데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본 뉴스에 댓글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응답자는 93.2%를 차지했는데, 작성했다고 답한 이용자는 6.8%에 그쳤다. 뉴스 댓글을 읽는 사람에 견줘 뉴스 댓글을 작성하는 사람 또한 10분의 1 수준이었다. ‘뉴스 댓글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전체 여론의 분포를 파악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목소리 높은 소수의 의견으로 대체할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22년 9월호 ‘목소리 높은 소수가 다수에게 미치는 영향을 먼저 파악해야’)
이 분석을 진행한 김선호 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의 지적이다. “뉴스 댓글을 통해 여론 동향을 파악하기보다는 댓글에서 목소리 높은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에게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이 선차적으로 필요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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