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사는 평범한 서민이 신축 아파트에 저렴한 임대료로 거주하는 게 가능할까? 더군다나 아파트 주민들이 육아·취미·사회 활동을 함께 하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돕는 마을공동체까지 형성된다면?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위스테이별내’는 이 이상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그려왔다. 수도권 서민은 대부분 집을 살 엄두를 못 내 세입자로 전전하거나,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채 향후 부동산 가치 상승을 기대하는 삶을 선택해야 했다. 이웃과의 유대는 약화돼, 고립으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가 늘어나고 있다.
위스테이별내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먼저 아파트 임대조건을 보증금 8500만원에 월 임대료 32만원(전용면적 60㎡ 기준)으로 잡았다. 전용면적 74㎡는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42만원, 84㎡는 1억1천만원에 45만원이다. 보증금을 늘리면 임대료를 낮출 수 있다. 서류상 임대료 상승률은 2년마다 5% 이하로 묶어뒀는데, 실제는 이보다 더 낮은 약 1%로 인상했다.
마을공동체를 만들려 처음 설계부터 입주민들이 참여해 체육관, 책방, 목공소, 카페 등을 조성했다. 덕분에 텃밭에서 함께 키운 배추로 김치를 담그고, 동네키움터에서 함께 아이들을 보육하는 삶이 가능해졌다.
이런 아파트가 가능해진 비밀은 어디에 있었을까. 위스테이 사업의 시행사 역할을 맡았던 사회적기업 ‘더함’의 양동수 대표, 이상우 ‘위스테이별내 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를 만났고, 국토교통부·주택도시보증공사 관계자와 최민아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등에게 물었다.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보고서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모니터링을 통한 제도개선 및 확산방안 연구’(2021년 12월)도 참고했다.
사회적기업이 시행사 구실을 하고 입주민이 협동조합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택 지분을 갖는 형태라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다. 위스테이별내 사업 시행사인 더함은 사회적기업이다. 일반적인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과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은 보통 임대료가 시세의 95%, 연간 임대료 상승률은 5% 안팎이다.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는 임대기간 8년이 끝나면 일반분양으로 이윤을 챙긴다. 이때 분양가는 건설사 수익 중심으로 책정된다. 공공택지를 싼값에 제공받은 건설사가 큰 시세차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반면 위스테이별내 사업의 시행사 역할을 한 더함은 이윤을 최소화하고 입주민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커지도록 사업을 설계했다. 양동수 더함 대표는 “해외 유사 사례에서 비영리·사회적 기업들이 받는 시행 수수료 대비, 우리는 3분의 1 정도의 수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위스테이는 임대료를 시세의 80%로 책정했는데, 최근 집값이 폭등해 사실상 시세의 45∼60%가량 된다.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의 출발점은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표방한 뉴스테이 사업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월 “최소 8년간 이사 걱정 없이 적정 수준의 임대료로 누구나 양질의 주택에 거주할 수 있게 하겠다”며 ‘기업형 임대사업’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당시 뉴스테이 정책의 혜택이 기업에 너무 크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정부는 민간임대사업을 장려하기 위해 사업자에게 싼값에 공공택지를 공급하고, 주택도시기금으로 저리의 융자를 지원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출자와 융자를 통한 사업 리스크 분담, 임대주택에 대한 세금감면 등 지원책이 많아 민간 건설사의 이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라는 비판이 나왔다.
더함은 공공성을 강화해 2016년 11월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협동조합형 기업형임대주택 사업자 공모’를 통해 사업을 시작했다. 경기도 남양주 위스테이별내(491가구) 외에도 고양시 지축동에서 539가구 규모의 위스테이 아파트 사업을 토지임대부 형식으로 진행했다. 지금은 서울시의 노량진역 인근 부지를 매입해 역세권 청년주택 형태의 ‘도심형 커뮤니티 기반 공동체주택(500가구)’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위스테이별내 사회적협동조합 설립동의자 25%(123가구)를 우선 모집했다. 이 외 정책지원계층 25%(123가구), 재능기부자 2%(10가구)를 특별공급으로, 48%(235가구)를 일반공급으로 모집했다. 총 539가구인 위스테이지축도 설립동의자 25%(135가구)에 정책지원계층 20%(108가구)는 특별공급으로, 55%(296가구)의 입주민은 일반공급으로 모집했다.
단순화하면 위스테이별내의 총사업비가 2천억원인데 80%(1600억원)는 타인자본으로, 20%(400억원)는 자기자본으로 조달했다. 자기자본 가운데 민간사업자 출자금이 120억원(준공 뒤 협동조합이 인수), 정부(주택도시기금) 지분이 280억원이다. 나머지 80%는 민간차입(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 기금융자, 임차인 임대보증금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상우 위스테이별내 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위스테이별내) 임대 기간 8년이 종료되는 2028년에 이 지분을 정부가 팔면 협동조합이 사들일 가능성도 열어놨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발간 보고서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모니터링을 통한 제도개선 및 확산방안 연구’를 보면, 위스테이별내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할 의향을 묻는 문항에 69.6%가 ‘아니요’라고 답했다. ‘예’란 대답(30.4%)의 두 배에 달한다.
하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정부가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에 대해 의무임대기간 종료 이후 계획을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주민 다수는 협동조합이 정부 지분(280억원)을 매입해 임대주택사업을 이어가길 바란다. 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어야 한다는 주택협동조합의 가치를 이어가자는 것이다. 반면 ‘소유’를 위해 분양 전환을 원하는 이도 있다. 협동조합은 8년 뒤 안정적인 주거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논의하지만, 임차인에게 우선분양권이 주어지는지 등 사업 청산에 대한 법령이 명확히 제정되지 않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야 할지도 과제로 남았다.
협동조합보다 많은 지분을 가진 정부는 어떻게 생각할까. 주택도시보증공사의 한 관계자는 “8년 뒤 ‘분양을 통한 청산’을 기본 구조로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민간임대정책과 관계자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사업을) 얼마든지 공모를 통해 할 수 있지만 사업비가 많아 협동조합 입장에선 (장벽이) 높은 건 사실이다. 입주민이 협동조합을 설립하면 임차인인 동시에 간접적 집주인이라, 모델 자체는 매우 바람직해 보인다”면서도 “땅값, 건물값, 운영비 등이 청산되지 않으면 적자가 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열린민주TV’에서 양동수 대표와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제도 관련 대담을 나눈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싼 임대료로 사람들한테 임대하고, 공공적 성격이 가미된 디자인으로 운영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아 대출로 끌어온 돈을 청산하지 않고 어떻게 빌려준 쪽에 돌려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동수 대표는 “누적 적자 얘기, 리파이낸싱 얘기는 임대기간 8년 이후에도 현재와 같은 임대 조건이 지속된다는 걸 전제로 얘기한 것 같은데, 이후엔 새로운 구조, 즉 협동조합이 기금의 지분을 인수하거나 리츠를 청산하면서 아예 임대사업자 지위를 양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설령 이익을 가져가더라도 그 이익을 공동체 활성화와 지역사회 지원에 사용하도록 법적 제한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위스테이별내 같은 협동조합형 아파트는 더 추진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정부가 분기별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을 공모하지만, 사실상 토지 매입 비용 등을 건설사만 감당할 수 있는 형태라 위스테이 별내·지축처럼 ‘협동조합형’ 공모가 따로 나오지 않는 한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위스테이 같은 형태의 아파트 사업이 추진되는 곳은 없다.
최민아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위스테이는 500가구 정도 돼 느슨한 공동체를 하기 적합한 규모이고 정말 좋은 사례지만, 그게 아닌 ‘몇천 가구를 협동조합형으로 만들겠다’며 협동조합의 탈을 쓴 민간 개발자도 최근 나타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정장차림 법정 좌정...구속영장 심사 진행 중
“역시 오실 줄 알았거든”…윤석열 출석 소식에 지지자들 격앙
윤석열 구속되면 수용복 입고 ‘머그샷’
‘윤석열 영장집행 방해’ 이광우 체포…“정당한 임무일 뿐”
“우리 엄마 해줘서 고마워, 매일 올게”…눈물의 제주항공 추모식
윤석열 쪽 “헌재는 능력 없다” 무시 일관…법조계 “불리한 전략”
경찰이 잘못 쏜 총에 맞은 행인…“국가가 2억원 배상”
2천년 전 폼페이 상류층 ‘개인 목욕탕’…냉탕 폭만 10m
경호처 ‘윤석열, 하늘이 보낸 대통령’ 원곡자 “정말 당혹”
윤석열, 1시54분 서부지법 도착…구속영장심사 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