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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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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이 맞는데 법이 정한 괴롭힘은 아니다?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윤지영 변호사 인터뷰
문제해결에 불성실한 회사는 손해배상 등 제재 강화해야
등록 2022-07-21 12:28 수정 2022-07-22 01:22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인 윤지영 변호사(맨 앞)와 활동가들. 왼쪽부터 박점규 운영위원, 권호현 변호사, 정현철 사무국장(포스터 든 사람), 오진호 집행위원장. 정용일 선임기자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인 윤지영 변호사(맨 앞)와 활동가들. 왼쪽부터 박점규 운영위원, 권호현 변호사, 정현철 사무국장(포스터 든 사람), 오진호 집행위원장. 정용일 선임기자

‘직장 내 괴롭힘’이 법으로 금지되기까지 일등공신 가운데 하나가 ‘직장갑질119’다. 2017년 11월1일 출범한 이 단체 소속의 노무사·변호사·노동단체 활동가 등 전문가 150명이 하루 평균 80건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익명 채팅방에서 상담하고 있다. 2021년 말까지 피해자 10만여 명이 직장갑질119의 문을 두드렸다. 직장갑질119는 괴롭힘 발생시 사용자의 신속 조치를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입법과 개정을 이끌었다. 또 각종 사례 분석, 통계 등을 매주 보도자료로 배포하며 ‘직장 내 괴롭힘’ 문제뿐 아니라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제도 밖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같은 각종 이슈를 공론화하고 있다. 2022년 7월13일 서울 중구 직장갑질119 사무실에서 윤지영 운영위원(변호사)을 만났다.

‘가해자 처벌’은 고민스러운 주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3년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회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신설했다. 그런데 대부분 회사에서 자체 해결이 안 된다. 노동청이라도 적극적으로 조처해야 하는데, 여전히 잘 안 되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결국 피해자는 회사와 마지못해 합의하거나 소송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지금 직장갑질119에 (신고) 들어오는 사건들을 보면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불리한 처우는 많아지니까 되레 신고를 안 하게 되고, 그러니까 더 불리한 처우가 많아지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참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괴롭힘이라는 게 피해 당사자에게는 어떤 범죄행위보다 더 범죄로 다가온다. 하지만 범죄로 보는 순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기 더 엄격해질 수 있다. 죄형 법정주의, 명확성의 원칙 때문에 범죄로 인정하려면 요건을 엄격하게 해야 하는데 괴롭힘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한다. 다만 형벌은 아니어도 제재는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회사에 남녀고용평등법에서처럼 노동위원회가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과태료 몇백만원 내는 것과 몇억원을 손해 배상하는 것은 회사가 느끼는 게 다르다. 현재는 법적 근거가 있는 과태료 부과마저도 노동청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전혀 집행을 안 하고 있다.”

노동부 매뉴얼(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 처리지침)에 문제가 많다던데.

“예를 들면 상사가 폭행했다고 회사에 신고했더니 보름 넘게 회사가 조사를 미루고, 분리 조치를 요구해도 내버려두고, 피해자 고통은 심해진다. 법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면 ‘지체 없이’ 조사하라고 돼 있지만, 얼마큼이 ‘지체 없이’인지는 고용노동부가 매뉴얼에서 정한다. 현재 자의적으로 25일 정도로 정하고 있다. 이걸 정확하게 ‘익일’ 혹은 ‘3일 이내’ 식으로 바꾸고, 피해자에 대한 분리 조치는 ‘곧바로’라는 식으로 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법 취지에 맞게 조사·조치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하지만, 노동청은 회사가 일단 면담 등으로 조사를 개시한 뒤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뒤늦게 조사 결과를 내놓아도 제대로 조처한 것으로 회사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노동부는 매뉴얼을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캐디의 극단 선택, 그곳만의 문제 아니다

최근 상담한 괴롭힘 사건 중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괴롭힘을 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골프장 캐디분의 가족이 직장갑질119에 상담을 요청했다. 2021년 5월 민사소송을 제기해 1심이 진행 중이다. 캐디들을 감독하는 이른바 ‘캡틴’이 캐디들이 함께 쓰는 무전기에 대고 피해자에게 ‘너 뚱뚱하다고 안 뛰냐’ ‘다이어트한다면서 또 먹냐’는 등 폭언한 사건이다. 절망한 피해자가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결국 캐디들이 있는 인터넷카페에 그 캡틴을 원망하는 글을 올렸는데, 글을 올리자마자 강퇴를 당했다. ‘캐디 카페’는 매일매일 근무일정이 올라오는 곳이다. 즉, ‘카페 강퇴’는 자영업자 취급을 받는 특수고용노동자인 캐디에게는 ‘해고’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그리고 얼마 안 돼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이게 어느 한 골프장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골프장의 문제, 전체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라고 본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골프장 캐디처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런 이유로 관할 노동청도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것은 맞지만, 법에서 정한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직장갑질119 오픈 카톡방은 어떤 공간인가.

“상담은 주로 여기서 이뤄진다. 누구든 익명으로 참여할 수 있어 문턱이 아예 없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피해자가 비슷한 피해를 당한 분들과 공감하고 위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노동 관련 전문가 150명이 4년 넘게 비용도 받지 않고 상담에 참여하고 있다. 문상환 활동가는 금요일 저녁, 심준형 노무사는 토요일 아침에 심지어 상담하겠다고 자청한다.”

오픈 카톡방이 4년 넘게 끊기지 않고 돌아가는 동력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노동조합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주로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 괴롭힘을 비롯해 갑질, 성희롱, 성차별 등 직장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에 대해 듣다보면 상담자·활동가들이 ‘이건 해결해야겠다’는 자발적인 선한 의지가 생긴다.”

3명 모이면 되는 ‘온라인 노조’ 구상 중

최근 운영 여건이 많이 어려워졌다던데.

“3년 동안 양대 노총(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출연한 공공상생연대기금에서 한시적인 재정 지원을 받아왔는데 2022년 6월로 지원이 마무리됐다. 활동이 왕성하다보니 밖에선 ‘이 조직, 믿을 구석이 있나보네’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후원이 없으면 존폐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500명 정도인 후원자가 1천 명 정도는 돼야 정상적인 운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직장갑질119 후원계좌는 ‘농협 119-119-911-8’)

앞으로 활동계획은.

“괴롭힘 등에 대해 법적인 해결도 중요하고 회사가 절차를 지키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노동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야 한다. 그게 노동조합일 수 있다. 그래서 권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3명 이상만 있어도 쉽게 노조를 결성할 수 있도록 ‘온라인 노조’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 직장갑질119 정기후원 http://bit.ly/gabjil119 (기부금 영수증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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