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가균형발전의 엔진을 다시 힘차게 돌려야 한다. 우리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다.”(2018년 2월1일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발언)
“우리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다방면에서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수도권 집중 흐름을 되돌리지 못했다.”(2022년 4월19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 발언)
이렇게 4년 동안 문재인 대통령 발언의 온도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집권 초기 문재인 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왜 실현되지 못했을까? 문재인 정부의 5년을 돌아보면, “출범 초기부터 다방면에서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전국의 지방정부들과 전문가들이 기대했던 가장 시급한 균형발전 정책은 ‘2차 공공기관 이전’ 사업이었다. 2018년 9월 당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수도권에 있는 122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추가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대상 기관의 규모는 당시 국토교통부에선 350여 개,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500여 개로 추산했다. 그러나 청와대에선 별 반응이 없었다.
2019년 5월 민주당의 윤호중 당시 사무총장은 2020년 총선 공약으로 공공기관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역시 별 반응이 없었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둔 뒤에도 청와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2020년 7월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1차 공공기관 이전(혁신도시) 평가와 2차 공공기관 이전 방안을 청와대 수석보좌관(수보) 회의에서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때도 대통령은 별 반응이 없었다. 이 보고를 끝으로 2차 공공기관 이전은 사실상 무산됐다.
김사열 위원장은 “2020년 7월 수보 회의에서 2차 공공기관 이전 시기와 규모에 대해 보고했다. 그런데 대통령으로부터 아무런 지시가 없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직후였는데, 왜 이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세종시에 청와대 제2집무실도 설치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2019년 9월 세종시에 제2집무실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시 세종시엔 새 정부청사 건설이 추진되고 있었다. 앞서 2019년 1월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는 일을 포기한다고 밝힌 상태였다.
반면 국회와 민주당은 세종시로 국회와 청와대를 옮기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2019년 8월 국회는 17개 상임위 가운데 10개를 세종시로 옮기는 방안을 발표했다. 2020년 7월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겨 행정수도를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여야는 대선을 앞둔 2021년 9월 세종시에 제2국회를 설치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27년 완공 계획이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세종시의 국회 분원(제2국회) 설치는 늦었지만 진전이 있었다. 청와대 제2집무실도 가능했는데, 왜 굳이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GTX·반도체 복합단지·이건희기증관…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치명적 잘못을 몇 차례 저질렀다. 수도권 집값 폭등의 대책으로 2018년 12월 3기 신도시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일이 대표적이다.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수도권 집값이 올랐는데, 다시 수도권의 그린벨트를 3069만㎡(930만 평)나 풀어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악순환이었다. GTX 3개 노선을 건설하는 데만 13조원 이상이 투입된다.
2019년 2월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반도체 복합단지를 경기도 용인에 허용해준 일도 치명적이었다. 투자 규모가 120조원에 이를 이 복합단지 유치에 지방 도시 여럿이 운명을 걸었다. 그러나 정부는 사업자 뜻에 따라 수도권 공장 총량까지 풀어가면서 이를 허용했다.
이두영 충북경제사회연구원장은 “문재인 정부 초기의 3기 신도시와 GTX 건설, 에스케이하이닉스 입지 결정은 균형발전이 아니라, 수도권 중심 발전 전략으로 간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2021년 11월 정부가 ‘국립이건희기증관’을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 짓겠다고 발표한 일도 수도권 집중 정책이었다. 당시 전국 40여 개 도시에서 이건희기증관을 유치하겠다고 신청했다. 현재 국립미술관은 수도권에 2곳, 지방에 1곳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란 듯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바로 옆에 입지를 결정했다.
문 대통령은 5년 동안 모두 42회 열린 균형발전위 본회의를 단 한 번도 주재하지 않았다. 다만 2018년 2월 균형발전 선포식에 한 번 참석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72회 본회의 중 29번을 주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난 이 모든 일의 결과는 이렇다. 2017년 수도권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 50% 돌파, 2019년 수도권 인구 비중 50% 돌파. 2017년에서 2022년 사이 서울 아파트값 2배 이상 폭등.
문재인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균형발전 정책이 실행되지 못한 것은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담당 비서관도 계속 바뀌어 컨트롤타워 노릇을 할 수 없었다. 균형발전 실패는 수도권 부동산값 폭등으로 이어져 결국 정권이 교체됐다”고 평가했다.
5월10일 집권하는 윤석열 정부는 균형발전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와 자치분권위 등 2개 기관을 통합하고 행정권을 줘서 정부 안 컨트롤타워로 만들어야 한다.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균형발전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재율 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대표는 “정부 초기에 2차 공공기관 이전을 바로 시행하고, 각 지역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게 부산-울산-경남처럼 초광역 통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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