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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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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아동의 진술을 존중하는 법

헌재 위헌 결정 이후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피청취권 보장을 위하여아동권익 보호 전문가 임수희 부장판사 인터뷰
등록 2022-04-16 11:48 수정 2022-04-16 11:48
2022년 3월30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 인근에서 만난 임수희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

2022년 3월30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 인근에서 만난 임수희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도록 한 영상 진술 특례조항이 위헌이라는 2021년 12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지 3개월여가 흘렀다. 2022년 4월14일 법무부가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표하는 등 성폭력 피해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범죄 피해아동의 ‘들려질 권리’(피청취권·Right to be heard)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_편집자

2021년 12월23일 헌법재판소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진술이 담긴 영상은 진술 당시 피해자와 동석했던 신뢰관계인의 증언이 있으면 증거로 쓴다”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위헌이라고 결정된 법률(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6항)은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 증언으로 고통을 겪거나 추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입법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미성년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방지는 중요한 가치”라면서도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반대신문할 기회를 주지 않아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미성년 피해자의 보호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과 충돌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제약받을 수 있는 가치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특히 미성년자인 ‘아동’에 대한 사법기관의 인식 수준이 드러난 대목이다.

아동인권 시계를 2010년 이전으로 돌려놨다

아동권익 보호 전문가로 꼽히는 임수희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는 피해아동이 형사절차의 객체나 대상이 아니라 권리행사의 주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2022년 3월30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 인근에서 임 판사를 만나, 피해아동에게도 ‘들려질 권리’(피청취권·Right to be heard)가 있으며 이 권리와 피고인의 방어권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시각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법조계·여성계에서 두루 비판받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뭘까요.

아동 관련 사안임에도 ‘아동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s of the Child)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헌법에 의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제3조)에 명시된 의무를 위반한 거죠. 2013년 청소년성보호법에서 같은 내용의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이 났는데 8년 만에 헌재 입장이 뒤바뀌었어요. 헌재 소수의견이 지적했듯이, 지난 10년 동안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는 오히려 늘어났고 피해 연령은 더 낮아졌어요. 피해자를 보호할 필요성은 더 높아졌지만 헌재 결정문만 봐서는 판단이 뒤바뀐 근거를 찾기 어려워요.

이번 헌재 결정은 어떤 완충·보완 장치 없이 아동인권 시계를 해당 조항이 도입된 2010년 이전으로 돌려놨다고 생각해요. 대안 입법이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할지 알 수 없어요. 무너뜨리기는 쉽지만 쌓기는 어려워요.

사법절차에서 범죄 피해아동을 대할 때 어떤 인식이나 조치가 필요한가요.

헌재 다수의견은 범죄 피해를 말하는 피해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보는 인식이 부재해요. 아동은 형사절차의 객체도, 대상도 아니에요. ‘들려질 권리’(피청취권)를 행사하는 주체예요. 들려질 권리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제12조)에 명시된 권리예요.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사법·행정 절차에 있어서도 아동은 직접, 또는 대리인 등을 통해 ‘피청취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는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특히 아동이 성학대, 폭력 등을 당한 피해자인 경우 아동이 완전한 보호를 받으며 피청취권을 보장받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고 합니다.

현재 형사사법 제도에서 국가와 피고인은 형사사법 절차의 주체이고 피해자는 증인 위치에 있죠.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려 나가 피해 사실을 복기하고 수사기관이나 재판부, 피고인의 때로는 모욕적인 질문을 감내해야 합니다. 아동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고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요. 왜 피해아동은 국가가 요구하는 대로 피고인 앞에 불려가서 질문에 답을 해야 하나, 들려질 권리의 주체로서 말을 할지 말지, 한다면 언제 어떤 환경에서 말할지 선택할 수 있어야지, 왜 사법제도가 원하는 방식으로 2차 가해에 노출되면서 말할 의무를 져야 하나. “피고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과 양립될 수 있다면 아동 피해자가 피고인의 반대신문을 받지 않도록 보장돼야 한다”(범죄 피해아동 및 목격아동이 관련된 사건에 있어서의 사법지침·2005년)는 유엔 가이드라인도 있어요.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왜 피해아동에게 들려질 권리를 줘야 하나요.

아동의 들려질 권리는 아동이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에 포함되는 것으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과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어요. 그리고 아동의 다른 모든 권리를 해석·적용하기 위한 전제로도 필요하죠. 아동이 언제부터 의견을 존중받아야 할까요? 말할 수 있을 때일까요? 아니죠. 태어나서 응애응애 우는 그 순간부터예요. 언어적 표현뿐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도 우리는 읽어주고 발견해주고 알아봐줘야 해요. 아동의 마음은 그렇게 발견되고 들려져야 합니다. 이 권리가 아동인권이라는 창문을 통해 뚫고 나갈 수 있다면 장애인·여성·노인·성소수자 인권까지 인정되도록 확장될 수 있겠죠.

대체 입법을 모색하는 노력이 활발합니다. 어떤 방향의 대체 입법안이 필요한가요.

먼저 아동 피해 사안에서는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규정을 명시적으로 두어야겠지요. 아동 피해자의 법정 증언에 관해서 △연령과 발달 수준 △피해의 경중과 가해자와의 관계 △피해 발화가 비언어적인지에 따라 예외를 둘 수 있어야 해요. 즉 피해아동이 어릴수록, 피해 결과가 심각할수록, 언어화된 진술이 어려울수록, 되도록 초기에 아동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진술을 영상녹화물로 촬영·보존한다면 그것에 위조나 기타 변형 가능성이 없는 한 그대로 법정에서도 증거로 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 밖에 피고인의 반대신문으로 피해아동이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심각한 해악의 가능성이 있으면 반대신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규정, 피고인의 위협적인 행동, 피해 상황 재연, 관련 없는 사생활 질문을 제한하는 의무규정을 둬야 합니다.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중요하죠. 피고인이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요. 그렇다면 아동의 최선의 이익은 얼마나 중요하냐고 묻는다면요? 그것 또한 매우 중요하고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답할 거예요. 그렇다고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동에게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묻는 것처럼, 질문 자체가 틀린 거라고 봐요. 틀린 질문에는 틀린 답밖에 없죠. 피고인의 방어권과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 둘 다 매우 중요해요.

현재 수사기관은 피해자 진술이 있으면 다른 보강수사나 피고인의 변명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요. 피고인의 변명의 진위도 철저히 수사해줘야죠. 그렇게 하지 않고 실체적 진실 발견의 부담을 피고인의 반대신문 받는 피해아동에게 전부 감당하게 하는 것은 수사, 기소, 재판 기관이 너무 게으른 거죠.

피고인 방어권과 피해아동 보호, 둘 다 지켜야

헌재 결정은 두 가치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양립 가능할까요.

단순히 평면적으로 사고하면 두 권리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겠죠. 마치 파이를 한쪽이 많이 먹으면 다른 쪽이 덜 먹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이 사회에서 인간에게 중요한 수많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파이를 나눠 먹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 수많은 가치 모두를 충족할 방법이 나올 때까지 계속 노력을 멈추면 안 되겠죠. 국가는 피고인의 방어권과 아동 피해자의 보호, 양자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다가 적당히 포기할 권리가 없어요. 끝까지 찾아야 할 의무만 있습니다.

글·사진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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