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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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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노동자, 모두가 돌봄자

부부 9쌍의 ‘48시간 가사노동 기록’ 실험,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사노동 부담 실감
적절한 분담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노동시간 줄고 돌봄 인식 바뀌어야
등록 2022-02-21 18:05 수정 2022-02-22 07:21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오른쪽) 부부가 2022년 2월14일 주방에서 함께 설거지하는 모습. 박승화 기자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오른쪽) 부부가 2022년 2월14일 주방에서 함께 설거지하는 모습. 박승화 기자

*참가자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냈다. 집안일은 누구의 몫인가?

<한겨레21> ‘48시간 가사노동 기록’에 참여한 부부는 모두 9쌍이다. 이 기록이 한국 사회 부부의 가사노동 현실을 대표하는 표본은 아니다. 개인과 가족의 특성, 기록한 48시간의 특수한 상황 등 변수가 있다. 그럼에도 이 기록을 통해 ‘일정한 패턴’이 엿보였다. 대체로 숨 막히는 가사노동의 연속이었다. 2022년 한국 사회의 어떤 전형이다.

하루 총 12시간의 노동

경북 포항에서 6~12살 아이 셋을 키우는 전업주부 박정애(41)씨의 말은 서늘했다. “저는 집안일 안 하는 시간을 쓰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박씨는 하루 평균 총 12시간 가사노동을 했다. 가정관리와 가족돌봄에 각각 6시간25분, 5시간35분을 할애했다.(아래 그림 참조) 김씨를 포함해 ‘48시간 가사노동 기록’에 참여한 18명은 모두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가사노동 부담이 늘었다고 토로했다. 어린이집과 학교 등이 확진자 발생으로 갑자기 문을 닫거나 재택근무가 늘면서 일과 돌봄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진 탓이다.

“남편들은 잘 모를 거예요. 학교와 학원에서 공지사항이 많아지고 확진자가 나오면 온라인수업으로 대체돼 아이 수업과 식사, 간식, 기타 일정을 제가 다 미리 챙겨야 하거든요.” 서울 서초구에서 초등학생 2명을 키우며 맞벌이하는 김다영(41)씨는 코로나19 이후 특히 돌봄 부담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에서 유치원생을 키우는 유소희(40)씨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회사 근무시간이 더 정신없어졌다고 했다. “직장에서 근무시간인지 육아시간인지 구분이 잘 안 될 정도예요. 중간중간에 유치원 전화 받고 알림장 앱에 써야 하는 거 챙기고, 집안일 도와주는 친정엄마 카톡에 답하는 일이 늘었어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외부 도움을 받기도 여의치 않다. 아이 셋을 키우는 박정애씨는 “첫째 아이 원격수업은 로그인하는 것부터 도와줘야 하는데, 동시에 동생들의 수업 방해도 막아야 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게 버거워 학원에 보내려고 했는데, 학원에서도 계속 확진자가 나와 한 달, 두 달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 육아 재택근무 보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2년 1월23일 약속한 공약이다. 부모가 원할 때는 육아를 위한 재택근무를 보장하고 이를 허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어린아이가 있는 부부일수록 재택근무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가끔 재택근무를 하면 촉박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직종이라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는데도 남편이 두 아이를 돌보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서울 양천구에서 3살, 6살 두 아이를 키우는 이윤미(38)씨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재택근무가 훨씬 힘들다고 했다. 이씨의 남편은 육아휴직 중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재택근무하면서 아이를 챙겨야 할 일이 많아서 ‘육아 재택근무’란 말에 잘 공감되지 않아요.” 회사를 운영하며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장현선(46)씨는 재택근무를 하다가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아이를 혼자 집에 남겨두고 10㎞ 떨어진 집과 회사를 여섯 차례나 오간 날이 있었다. 장씨는 “재택근무는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집에서 근무하면 동시에 두 개의 일(직장일과 집안일)을 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아내 최수연(49)씨도 “재택근무하면서 아이들 밥 챙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 밥 한 끼라도 챙겨준 학교가 새삼 고마웠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자녀 돌봄 시간은 보통은 아내들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맞벌이와 외벌이 부부 남녀 1394명에게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견줘 자녀 돌봄 분담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물었더니, 맞벌이 여성은 40.7%, 외벌이 여성은 38.7%가 ‘(배우자보다) 본인이 더 많이 했다’고 응답했다. ‘배우자가 더 많이 했다’는 응답’은 6.0~7.5%에 불과했다. 반면 맞벌이 남성은 22.7%, 외벌이 남성은 18.8%만 ‘본인이 더 많이 했다’고 답했다. ‘배우자가 더 많이 했다’는 응답이 남성의 경우 맞벌이 23.0%, 외벌이 34.0%나 됐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코로나19와 가족생활 실태조사’, 2020년 7월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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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5쌍 중 4쌍이 아내가 자녀 교육 전담

모든 게 코로나19 탓만은 아니다. 가사노동은 부부 사이에 종종 ‘갈등의 씨앗’이 된다. 아내들은 대개 남편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를 내비쳤다. “저는 집에서 식사 준비하면서 아이 숙제도 봐주는데 남편은 아이와 잠깐 얘기하다가 본인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점점 불만이 쌓이고 밤이 되면 폭발해요. 주말 여섯 끼 중 한 번만 남편한테 차리라고 100번도 넘게 얘기했는데 그걸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전혀 인식하지 않더라고요.” 학교 행정직으로 근무하며 유치원생을 키우는 유소희씨가 말했다. 유씨의 남편 김상훈씨도 불평등한 가사노동 분담을 ‘알고는’ 있다. “제가 주로 하는 집안일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들이에요. 청소기 돌리고 쓰레기 분리배출하고 빨래 개고 식기세척기 돌리는 일 같은 거요. 요리는 복잡하고 어려워서 벽이 느껴져요. 주말에 한 번은 제가 밥을 차려야 하는데 아직은 안 하고 있죠.”

아내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한다고 인정하는 남편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본인은) 관심이 없어서” “귀찮아서” “더 급한 사람이 하게 돼서” “더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나아서” “절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경제적인 부분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건 책임감의 문제죠. 의무감 때문이라도 관심이 생기고 잘 해내야겠다는 의욕을 느껴야 하는데 아내가 주책임자고 남편은 부책임자라는 인식 때문에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금융권에서 일하며 초등학생 2명을 키우는 김다영씨는 어느 정도 기대를 내려놨다. “주말엔 남편이 아이들 학원 이동과 쓰레기 분리배출을 전담하고 청소나 식사 준비는 시키면 해요.” 김씨는 “남편이 자발적으로 하는 건 포기했고 시키는 거라도 빨리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맞벌이하는 유소희씨도 비슷하다. “남편이 조력자가 되지 말고 스스로 집안일을 해주면 좋겠어요. 지금은 집안일을 주체적으로 한다는 게 뭔지부터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에요.”

다른 참가자들에 견줘 가장 균등하게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것으로 나타난 부부도 나름의 고충은 있다. 이윤미씨는 “육아휴직 중인 남편을 배려해 퇴근 뒤 집안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하는데, 회사에서 이미 지쳤는데 집안일까지 하다보면 힘들어서 말도 곱게 안 하고 서로 트러블이 생기고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야근해야 하는 상황이면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남편 눈치도 보이고 퇴근하려니 회사 눈치도 보여서 양쪽 눈치 보느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고 말했다.

가정 내 불평등은 청소·설거지 같은 가사노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 5쌍 중 4쌍은 아내가 자녀 교육 업무를 전담했다. 유치원생을 키우는 유소희씨는 얼마 전 집에 휴대전화를 놓고 출근한 날을 기억한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바람에, 집에 있는 남편에게 아이 유치원 알림장 앱에 글을 올려달라고 했어요. (남편이 글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몰라서) 결국 제가 인사말부터 문구 전체를 정리해줬어요. 항상 글을 올리는 건 내 몫이었기 때문이에요.” 여기엔 학교나 학원의 문제도 있다. 초등학생을 키우는 아내 강은주씨는 “학교 알림장에 전화번호를 등록할 때 부모 중 한 명만 등록할 수 있다. 그러면 남편이 보조 역할도 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반적인 생활 관리도 아내 몫으로 남겨둔 맞벌이 부부가 많았다. 유소희씨는 “아이가 먹고 입는 것, 유치원 갈 때 준비할 것 등을 근무시간 중간중간에 챙겨야 할 때가 있는데 모두 다 챙기지 못해 그 스트레스가 자꾸 아이한테 간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을 키우는 장현선씨는 “가사에 대한 주도자가 아내라는 생각이 너무 견고해서 내 딸이 결혼할 때는 (그 생각이) 깨질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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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가도 집 안 청소

물론 가사노동을 슬기롭게 적절히 분담하는 부부도 있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을 키우는 남편 김홍일씨는 “(엄마들 커뮤니티가 있어서) 학교와 학원 연락이나 결정사항은 아내가 맡고 나는 아이들 숙제와 공부를 봐주는 걸 전담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육아휴직 중이라 혼자 출근하는 아내 이윤미씨는 “내가 출근할 때 등원시키는 첫째 아이 어린이집은 나에게 먼저 연락하고, 집 근처 둘째 아이 어린이집은 육아휴직 중인 남편에게 연락한다. 남편이 육아와 어린이집에 관심이 많아서 궁금한 게 있으면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먼저 연락해서 알아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여성의 일’이라는 덫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622.html

가족돌봄, 주말에 격차

어떻게 조사했나

<한겨레21>의 ‘48시간 가사노동 기록’에 참여한 부부는 총 9쌍이다. 맞벌이 부부가 7쌍, 남편 또는 아내가 혼자 일하는 외벌이 부부가 2쌍이다. 자녀가 있는 부부는 7쌍이었다.

참가자 18명(9쌍)에게 각각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들어가 ‘48시간’을 10분 단위로 입력하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2022년 2월4일(금)~5일(토) 또는 6일(일)~7일(월) 본인이 수행한 가사노동을 시간대별로 기록했다. 기록할 때는 ‘가사노동 분류표’를 참고하게 했다. 통계청이 5년마다 시행하는 ‘생활시간 조사’의 분류표를 그대로 따랐다. 가사노동은 ‘가정관리’(28개 항목)와 ‘가족돌봄’(11개 항목)으로 분류했다. 다만 통계청과 달리 ‘이동’도 가사노동으로 추가했다. 아이 등원이나 병원 진료 관련 이동 등은 엄연한 가사노동(육아)에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뒤 참가자 18명의 총가사노동시간, 아내와 남편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과 그 비중 등을 계산했다.(위 그림 참조)

부부 9쌍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을 보면, 아내(5시간56분)가 남편(4시간10분)보다 1시간46분가량 많았다. 장보기 등 가정을 관리하고 아이 공부를 봐주는 등 가족을 돌보는 시간 모두 아내가 많았다. 가정관리시간은 아내가 하루 평균 3시간16분, 남편이 2시간41분이었다. 가족돌봄시간은 아내(2시간40분)와 남편(1시간29분) 사이에 더 큰 차이를 보였다. 평일(아내 2시간11분, 남편 1시간28분)보다는 주말(아내 3시간9분, 남편 1시간30분)에 격차가 컸다.

맞벌이 부부(7쌍)로만 한정해서 봐도, 아내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이 5시간5분으로 남편(3시간44분)보다 길었다. 특히 가족돌봄시간은 아내가 2시간6분으로 남편(42분)보다 3배 많았다. 직장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아이를 돌보는 책임이 여성에게 더 많이 쏠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가정관리시간은 남편(3시간2분)이 아내(2시간59분)보다 조금 많았다. 맞벌이 부부 남편 7명 중 3명이 주말에 대출상담, 반려동물 돌보기 등에 총 4시간40분을 할애한 특수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과는 한국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 평균치를 웃돈다. 통계청이 2020년 발표한 ‘생활시간 조사’(2019년 기준 전국 1만2435개 표본가구에 상주하는 만 10살 이상 가구원 약 2만9천 명 조사)에서 맞벌이 부부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아내 3시간24분, 남편 1시간3분이었다(가사노동 관련한 이동시간 포함해 계산). <한겨레21> 조사에서는 평균치보다 아내가 1시간41분, 남편이 2시간41분 더 가사노동에 시간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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