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오빠가 은둔한 뒤 나도 은둔했다

가족에게로 확산되는 은둔의 고통, 은둔 청년 가족에 대한 지원도 필요해
등록 2021-11-30 13:06 수정 2021-12-01 14:33
일러스트레이션 김혜리

일러스트레이션 김혜리

한정된 공간에서 고립된 채로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른다. 은둔형 외톨이는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나지만 청년 세대의 은둔은 특히 심각한 문제다. 사회적 활동이 한창일 나이에 고립해 지내는 청년이 많다면, 그들을 은둔시킨 사회 역시 병들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취업난과 코로나19로 은둔 청년이 증가했으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러나 전국에 은둔 청년이 얼마나 있는지, 그들은 누구이며 왜 은둔하게 됐는지, 방 안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정부 차원의 전국적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고 이를 구체적으로 파고든 국내 언론 보도도 많지 않았다. 일체의 접촉과 소통을 거부하며 방 안에 은둔 중인 청년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발행하는 독립언론 <단비뉴스>의 기자 5명은 2021년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은둔 청년들의 일상을 직접 취재했다.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단체의 도움을 받거나 기자들이 직접 수소문하고 설득해 전국 각지에서 은둔 중이거나 은둔에서 갓 탈출한 청년 25명을 만났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가입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분석해 은둔 청년들의 일반적 행동과 정서를 분석했다. 전문가 11명을 따로 만나 인터뷰했고, 2500여 쪽에 이르는 관련 보고서와 연구논문도 읽었다.
실명 보도가 원칙이라는 점을 25명의 은둔 청년과 그 가족에게 설득했으나, 이들은 신상 노출을 매우 꺼렸다. 은둔 경험을 세상에 알리면 사회적 낙인이 찍힐까봐 많이 걱정했다. 이에 기사에서는 은둔 청년과 그 가족의 이름을 모두 가명으로 표기했다. 거주 지역은 광역 단위 또는 시군구까지만 밝혔다._편집자주

광주광역시에 사는 이정선(56·가명)씨에게는 3년째 은둔 중인 아들이 있다. 둘째 권준성(19·가명)씨다. 이씨 부부와 세 형제까지 다섯 식구가 사는 51평짜리 아파트에서 권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3평(9.9㎡) 남짓한 자신의 방에서 보낸다. 하루에 한두 번 화장실과 주방을 갈 때만 방에서 나온다. 배고플 때는 라면이나 냉동식품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 한동안은 먹고 싶은 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어머니 이씨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요즘에는 그마저도 끊겼다.

가족은 일하면 은둔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

가족은 은둔 청년과 가장 가까운 타인이다. 안정과 지지를 바탕으로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지만 잘못된 대응으로 은둔 청년을 더욱 고립시킬 수 있다. 더구나 가족의 고통이나 좌절도 악화된다. 은둔 청년은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소통을 기피한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 25명 가운데 13명(52%)은 은둔하는 동안 ‘가족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다’고 답했다(그래프 참조).

소통이 단절되면 추측만 늘어난다. 은둔형 외톨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가족은 ‘일하면 은둔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라’고 압박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2020년 광주시가 은둔형 외톨이 가족 112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2020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를 보면, 가족이 은둔 당사자를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부분은 ‘취업 및 직업훈련 권유’(44.1%)였다. 가족이 불안감 탓에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 25명 가운데 5명에게 정신병동 입원 경험이 있었는데, 그중 3명은 부모가 강제로 입원시켰다.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려는 가족의 마음은 은둔 청년에게 가닿지 못한다. 은둔 청년은 심리적·사회적으로 위축된 상태이므로 피해의식을 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가 마련한 자조모임에 참석한 김진화(50대·가명)씨는 은둔 중인 26살 아들 때문에 집에서도 편히 쉴 수 없다고 했다. “숨소리만 내도 자기를 무시했다고 나를 몰아세워요.” 아들을 생각해 함께 상담받자고 하면 욕설이 날아왔다. 교육에서 추천받은 책을 슬쩍 권하면 “나를 정신병자 만들지 말라”는 말이 돌아왔다.

은둔 청년은 대체로 대인관계에서 매우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현하거나 신체적 공격을 하기도 한다. ‘2020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서 은둔 당사자 237명 가운데 61.5%는 ‘가족에게 화내거나 폭력을 휘두른다’고 답했다. 큰소리로 격분하는 경우는 83.9%에 이르렀다. 은둔 기간이 길어질수록 충동성과 분노 폭발의 빈도도 높아졌다. 그 피해는 온전히 가족에게 돌아간다.

은둔 자녀의 부모, 사회적 관계도 축소돼

폭력과 폭언이 아니어도, 가족구성원이 은둔한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가족은 위축된다. 은둔 청년이 느끼는 우울과 불안이 가족에게 전염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강세주(32·가명)씨의 오빠는 15년째 은둔 중이다. 오빠의 은둔을 곁에서 지켜본 마음을 강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새로 태어나거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답이 없는 것 같았어요. 구렁텅이에 빠진 기분이 들었죠.” 이러한 심리 상태는 은둔 청년의 다른 가족까지 은둔하게 만든다. 결국 강씨도 1년 동안 은둔했다.

수백 명의 은둔 청년과 그 가족을 상담했던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 소장은 “은둔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남들과 어울려 가족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꺼리면서, 부모의 사회적 관계도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은둔 청년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은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박 소장은 설명했다.

일본에서 20여 년간 ‘히키코모리’를 연구한 사이토 다마키 일본 쓰쿠바대학 교수(사회정신보건학)는 은둔형 외톨이가 개인-가족-사회에서 삼중으로 고립되는 ‘은둔형 외톨이 시스템’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은둔형 외톨이 개인의 고립이 가족의 고립, 나아가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되어가는 시스템을 뜻한다. 은둔 청년 본인이 스스로를 가두고, 가족이 당사자를 압박함으로써 가두고, 당사자와 가족이 사회에서 고립되면서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은둔 청년 가족에 대한 지원도 꼭 필요하다. ‘2020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서 은둔 가족 112명 중 41명(36.6%)은 은둔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심리상담을 꼽았다(그래프 참조). 가족구성원의 은둔으로 겪는 다른 가족의 무력감과 우울감 등의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다는 것이다. 은둔 청년의 엄마이기도 한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는 “엄마 입장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원 기관이나 단체가 은둔 당사자와 그 부모의 마음까지 잘 살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둔 청년이 자존감 회복하는 데 3~10년 걸려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청년재단’은 2018년부터 고립 청년의 자립을 돕는 ‘청년 체인지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부모 교류회’도 이 프로그램의 하나다.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이아당 심리상담센터도 은둔하는 자녀와의 소통과 대응 방식에 관한 교육과 자조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 소장은 “가족의 지지가 있을수록, 친구가 있을수록, 좋은 상담사나 의사를 만날수록 회복력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은둔 청년이 주변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는 최소 3년에서 최대 10년 이상 걸린다. 가족의 문제라고만 여겨서는 버티기 어렵다. 전문가와 지원기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해야 하는 이유다.

임예진·이강원·최은솔 <단비뉴스> 기자 beautifulday9577@gmail.com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