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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섬의 소금 노동

등록 2021-11-06 05:19 수정 2021-11-06 11:14
한겨레 장현은 기자

한겨레 장현은 기자

1004개의 섬이 있다 해서 ‘천사의 섬’으로 부르기도 하는 전라남도 신안군이 염전 문제로 다시 시끄럽다. 사건의 시작은 7년 전인 2014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안 신의도의 염전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염전에서 지적장애인을 유괴해 감금한 다음 강제로 집단노동을 시켜온 것이다. 사건 당시 피해자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어머니를 통해 지역 경찰이 아닌 서울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고, 경찰이 소금 장수로 위장해 잠입수사를 벌인 끝에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전수조사 결과 이 지역 염전에서만 63명의 강제노역 피해자가 나왔다. 이후 장애인 불법 고용 실태조사 등 염전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루어졌고,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7년여가 지난 2021년 10월, 또 다른 ‘염전노예’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건의 당사자는 염전 노동자인 박영근(53)씨다. 그는 7년 동안 470만원가량(합의금·가불)을 제외하면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일했고, 사실상 감금당했다고 주장했다. 전남경찰청은 박씨가 일한 염전의 사장을 입건해 진상을 확인 중이지만, 사장은 착취와 감금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실제 피해가 발생했는지는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염전 노동자 전수조사 등 지자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련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이유는 염전 노동의 특수성에 있다. 염전 노동은 무척 고된데다 임금도 높지 않아 염부를 구하기 어렵다. 중간에 일하다 도망치는 경우가 생기자 임금을 1년 단위로 정산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1년을 버티지 못하면 정산받기 어려운 이런 구조는, 피해자 처지에서 감금으로 여길 가능성이 있다.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임금체불이나 감금 같은 피해가 재발할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신안군은 11월2일 염전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수준의 강력한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군의 계획대로 신안군에 주소를 둔 사람뿐 아니라 거주를 목적으로 체류하는 사람,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까지 조례가 보호하는 ‘주민’의 범위가 확대되면, 그동안 인권 사각지대에 놓였던 이주노동자, 타지역 주민, 장애인 등도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천다민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

관심 분야 문화, 영화, 부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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