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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가족 아니면 장례 치를 자격 미달?

현행 장사법의 ‘연고자’는 혈연 중심 비혼과 1인 가구 늘어나는 상황에서 연고자 범위 넓혀야
등록 2021-10-27 14:10 수정 2021-10-28 00:52
대한민국에서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1인 가구다. 이들에게 무연고 죽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죽은 뒤 어떻게 하면 무연고 공영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 ‘나눔과나눔’에 문의하는 이가 늘고 있다. 박승화 기자

대한민국에서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1인 가구다. 이들에게 무연고 죽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죽은 뒤 어떻게 하면 무연고 공영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 ‘나눔과나눔’에 문의하는 이가 늘고 있다. 박승화 기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509-20, 회색빛 1층 건물. 이곳은 ‘무연고 추모의 집’이다.
무연고 사망자 중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장례를 치르고 난 유골함을 봉안하는 장소다. 혹시라도 뒤늦게 나타날지 모를 연고자를 유골함이 5년 동안 기다리는 장소다. 2021년 10월20일 현재, 이곳에 봉안된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은 모두 3087기. 연평균 200여 기의 유골함이 봉안된다.
이곳엔 아무런 안내판도, 표지판도 없다. 무연고 사망자라는 글씨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무연고 사망자는 살아 있을 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는데, 죽어서도 마찬가지다.
10월15일 이곳에서 ‘제5회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 위령제’가 열렸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동자동사랑방,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등의 사회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다.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10월17일)에 맞춰 매년 열린다.
‘추모의 집’ 문은 평소에는 늘 굳게 닫혀 있다. 유골함 봉안 때와 연고자가 나타나 유골함 반환 요청을 할 때, 단 두 경우에만 열린다. 그리고 1년에 딱 하루 더 열린다. 바로 ‘합동 추모 위령제’가 열리는 날이다. 봉안된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이나 지인 등은 이날만 기다렸다가 ‘추모의 집’ 안으로 들어가 유골함을 만난다. 하지만 올해는 위령제가 열리는 날에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곳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은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이유로 들었다. 위령제 참석자 40여 명은 행사만 치른 뒤 떠나야 했다. 후드득 떨어지던 가을비가 위령제 시작 직전에 그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난과 관계 단절, 질병으로 인해 투명인간의 삶을 살았던 무연고 사망자들의 사연을 전한 제1384호(‘투명인간의 죽음’)에 이어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 리포트’ 2부를 이어간다. 이번호에서는 ‘우리 곁의 무연고사’를 집중조명했다. 무연고 사망자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 지인이었다. 우리와 다르지 않다.
1216명을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60대(370명)가 3명 중 1명꼴(30.4%)로 가장 많지만, 3살 이하 어린 아기 6명, 20~30대 청년 22명 등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전통적 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무연고사 또는 고독사는 우리 곁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죽음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무연고 사망자의 생애를 따라가봤다. 다음호(제1386호)에서는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제도적 대안을 살펴볼 예정이다._편집자주

2021년 7월 ‘푸하’는 2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동성 파트너 ‘난새’의 장례식에 상주로 섰다. 난새의 유언장에는 ‘장례를 최소화하면 좋겠다’며 ‘모든 권한을 푸하에게 위임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난새의 원가족은 장례를 치르지 않으려 고민했지만 푸하는 빈소를 차리고 싶었다. 난새와 함께 인권운동을 했던 친구들과 인사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결국 빈소가 마련됐고, 푸하는 자신의 이름을 상주로 올려달라고 장례지도사에게 요청했다.

장례지도사는 “가족관계가 아닌데 누구시기에 (상주로 올려달라고) 그러냐”고 물었다. 푸하는 자신이 난새와 함께 오랫동안 살았으며, 고인과 빈소를 찾을 조문객 대부분을 가장 잘 안다는 점 등을 상세히 설명한 뒤에야 난새의 동생과 함께 공동 상주가 될 수 있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빈소를 차리기 위해) 함께 갔던 친구들이 오랫동안 저와 난새의 관계를 깊이 이해시켜야 했어요. 제가 난새의 상황과 정보를 모두 갖고 있는 걸 본 뒤에야 장례지도사도 우리 관계를 이해하셨죠. 난새의 친족도 제가 상주가 되는 걸 반대하지 않았고요.”

동성 파트너, 장례 과정에 배제되기 일쑤

푸하는 이러한 장례식이 “특수한 경우”라고 말했다. 그와 난새는 사회가 규정한 이른바 ‘정상 가족’이 아니다. 생전에 생계와 돌봄을 얼마나 공유했는지 관계없이, 비정상 가족은 장례 과정에서 배제되기 일쑤다. “원가족이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하면 파트너가 장례식장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파트너에게 유산을 남겨달라’고 유서에 적혀 있어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푸하는 말했다.

삶의 마지막 기로에서 ‘가족이지만 가족이 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사실혼이나 생활동반자 관계로 오랫동안 삶을 함께 꾸렸다. 하지만 법적으로 인정받는 연고자가 되지 못해, 한쪽이 숨지면 무연고 장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현행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규정하는 연고자는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의 직계비속 △부모 외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순서로 오로지 ‘혈연’ 중심이다.

예외 조항이 있긴 하다. 장사법 제2조 16항 ‘아’목에는 직계혈족이 아니더라도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가 연고자가 될 수 있다고 규정됐다. 보건복지부는 이 조항을 더 구체적으로 해석해 2020년부터 행정처리지침인 ‘장사 업무 안내’를 통해 △사실혼 관계 △조카·며느리 △장기간 지속적으로 동거하며 생계나 주거를 같이한 경우 △사망자가 생전에 공증문서나 유언장을 통해 사후 자신의 장례주관자로 지정한 경우 등을 연고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혼자 사는 30~40대, 공영장례 문의 늘어

하지만 이는 행정지침에 불과해 법적 구속력이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따를 의무도 없다. 이렇다보니 지자체 공무원이나 장례지도사의 개별 판단에 따라 들쑥날쑥 다르게 적용된다. 2020년 4월 나눔과나눔이 지원하는 공영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김영성(가명)씨 지인들은 이 조항을 토대로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르고 싶어 했으나, 담당 구청과 경찰서에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그해 11월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신덕옥(가명)씨의 10년 지기들도 “병원, 장례식장, 주민센터, 구청에서 ‘가족 대신 장례’를 안내하지 않았다. 만약 미리 알았다면 직접 장례를 치렀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1인 가구 등 홀로 삶을 꾸려가는 이들에게도 역시 무연고 죽음은 당면한 문제다. 무연고 사망자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은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 사무실에는 최근 ‘공영장례를 예약할 수 있냐’는 문의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은 “30대 중후반 되는 분들이 상담센터로 전화해서 ‘혼자 살고 가족이 없거나 관계가 단절됐다’며 공영장례를 미리 신청하거나 준비하는 방법을 묻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자신이 거주하는 주민센터에 미리 돈을 내놓고 계약하면 안 되냐는 상당히 구체적인 문의도 있다. 하지만 공영장례는 개인 신청을 받아 진행되지 않기에, 현재 이런 요청이 실행되기는 불가능하다.

20대에 원가족에게서 독립해 1인 가구로 사는 장애인 여성 ㄱ씨는 “제 장례식을 가끔 생각하는데, 원가족이 장례를 주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곁에 있어준 친구들이 장례를 맡아주길 바란다. 원가족에게서 벗어나 애써 독립해 살고 있는데도, 법적 보호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순간에 자신이 원가족에게 다시 맡겨질 것을 생각하면 절망스럽다고 ㄱ씨는 밝혔다.1

연고 없는 죽음을 걱정하는 이들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법적 연고자로 인정받는 기준인 ‘혈연’이나 ‘혼인’ 관계에 포함되지 않는 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세 가구 중 한 가구(31.7%, 통계청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는 1인 가구다. 2020년 인구 1천 명당 혼인 건수는 4.2건(통계청 ‘2020년 혼인·이혼 통계’)으로 역대 최저치다. 혼인율은 2012년 이후 줄곧 감소 추세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법에 규정된 가족과 연고자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인 가구, 비혼·동거 가족, 비혈연 생활공동체가 ‘혈족’ 또는 ‘정상 가족’ 밖에서 맺는 다양한 관계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푸하는 “가족관계증명서가 없으면 고인의 주검을 확인하는 등 ‘관’과 연계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가족의 경계 자체가 재구성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족 조건은 강한 정서적 유대감”

하지만 인식과 제도 사이에 괴리는 여전히 크다. 2020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서울에 거주하는 비혼·비혈연 가구 생활자 298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가족의 조건으로 ‘강한 정서적 유대감’(50.3%)을 가장 많이 꼽았다. 2019년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만 19~79살 성인 1009명 대상)에서도 응답자의 66.3%는 ‘혼인·혈연과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할 경우 가족으로 인정한다’고 답했다. 이런 인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2021년 9월 서울시의회에 상정된 ‘서울시 사회적 가족 지원을 위한 기본 조례안’은 ‘시기상조’ 등의 이유로 심사가 보류된 상황이다. 이 조례안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꾸린 개인을 제도권 안으로 포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종걸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장사법상)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가 되려면 친족 범위에 해당하는 연고자들이 연고자 지위를 포기해야 가능하다”며 “다양한 가족형태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생계와 돌봄을 같이한 이들이 연고자 지위를 갖지 못하는 건 배제이자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참고 문헌
1. ‘서울시 사회적 가족의 지위 보장 및 지원방안 연구’, 가족구성권연구소,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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