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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쿠팡 플레이와 저울위의 삶

제1383호
등록 : 2021-10-13 23:30 수정 : 2021-10-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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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9월 초 새 시즌을 시작한 tvN SNL 코리아의 간판스타는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의 인턴기자 주.현.영.이다.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열망으로 똘똘 뭉쳤지만 불안한 눈빛과 어수선한 신체언어로 미숙함을 드러내고, 모르는 게 있어도 애써 웃으며 “생각 중입니다”라고 둘러대는 사회초년생의 ‘웃픈’ 모습을 완성한 것은 배우 주현영의 탁월한 연기다. 주 기자가 앵커 안영미의 질문 공세에 울먹이다 뛰쳐나간 1화 공개 후 젊은 여성에게 무능과 무책임이라는 고정관념을 씌워 희화화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다행히 주 기자는 계속 성장 중이다. 최근 방영된 4화에서 제법 의기양양한 태도로 등장한 주 기자가 앵커에게 여유롭게 질문까지 던지는 순간의 신선한 쾌감은 짜릿할 정도였다.

체중이 15㎏ 빠진 뒤 근육 파괴…
그런 주 기자의 활약을 본 것은 사실 유튜브에서였다. 넷플릭스, 왓챠, 티빙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사용하지만 SNL 코리아가 방영되는 ‘쿠팡플레이’에는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팡플레이는 쿠팡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인 ‘로켓와우’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다. 그런데 지난 6월 쿠팡 물류센터 화재사건을 기점으로 그동안 쿠팡 배송 및 물류센터에서 다수의 노동자가 숨진 문제가 다시 떠오르며 불매운동이 벌어졌을 때 나는 쿠팡을 탈퇴했다. 그러나 이만한 화제작이 나온다면 역시 쿠팡플레이에 가입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던 중,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에서 2020년 10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로 사망한 20대 노동자 장덕준씨의 부모 인터뷰를 보았다.

저녁 7시에서 새벽 4시까지 1년4개월 동안 물류센터 야간조로 근무하던 장씨는 어느 날 퇴근 후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하며 체중이 15㎏이나 줄어든 그는 근육이 급성으로 파괴되는 ‘횡문근융해증’이 의심된다는 의학적 소견을 받았다. 그의 죽음은 코로나19 이후 쿠팡에서 일하다 사망한 여섯 명의 노동자 사례 중 유일하게 산업재해로 인정받았고, 장씨의 부모는 쿠팡에 연속 야간근무 일수 제한과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건강조사 시행 등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어머니 박미숙씨에 따르면 ‘그냥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던 장씨는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쯤 말했다고 한다. “저울의 한쪽에 무언가 올라가면 다른 한쪽이 기울듯, 내가 편안할 때는 누군가 나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이것은 이념 아닌 삶에 관한 이야기
SNL 코리아의 성공과 함께 지난 한 달 사이 쿠팡플레이 이용자 수는 크게 늘어 국내 OTT 5위에 올라섰다. 쿠팡플레이 콘텐츠의 인기는 ‘록인(Lock-in·자물쇠) 효과’를 가져와 쿠팡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쿠팡의 비윤리적 경영에 대한 책임을 쿠팡과 쿠팡플레이 이용자에게 돌릴 수는 없다. 노동환경 개선은 기업 책임이고 노동착취 산업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것은 국가 책임이다. 다만 나는 코미디 한 편을 즐기면서 이렇게까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원하기에 쿠팡으로 돌아가기를 망설이고 있다. ‘소비를 이념으로 하느냐’는 어느 재벌 3세의 말처럼 ‘콘텐츠를 이념으로 보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이념이 아니라 삶에 관한 얘기다.

최지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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