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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한 편의 부조리극 같았다”

2021년 6월 대법원 첫 무죄 확정판결 받은 ‘평화주의 병역거부자’ 시우씨 인터뷰
등록 2021-07-17 16:03 수정 2021-07-21 07:55
2021년 7월8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서 <한겨레21>과 만난 시우(33·활동명)씨. 마스크는 촬영할 때 잠시 벗었다. 박승화 기자

2021년 7월8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서 <한겨레21>과 만난 시우(33·활동명)씨. 마스크는 촬영할 때 잠시 벗었다. 박승화 기자

2021년 6월24일 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현역 입영 거부자의 첫 무죄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시우(33·활동명)씨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21년 2월 평화주의 신념에 의한 예비군 훈련 거부에 이어, 현역 입영 거부로 법원 판단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 의의와 남은 과제를 설명했다. ‘최초’ 제목을 단 기사도 100여 건 보도됐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시우씨는 기자회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7월8일 <한겨레21>과 만난 시우씨는 그날 기자회견에 “차마 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병역거부자들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감된 게 3~4년 전도 아니고 불과 몇 달 전인데 제가 (기자회견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대체복무제도를 시행한 지 1년이 흘렀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제5조 1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같은 해 11월 대법원도 판례를 바꿔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처벌을 면할 수 있는데, 진정한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가 이에 포함된다고 인정한 것이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돼 심사를 통과한 462명(2021년 7월13일 기준)이 대체복무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재판받는 이들이 있다.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 기소된 이들이다. 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형사재판에서 양심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인정받는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한다. 시우씨는 그런 재판 과정이 “한 편의 부조리극 같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 어려울 수 있겠네요”

시우씨가 ‘병역거부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건 2010년이다. 청소년기 획일적인 입시 교육과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 문화에 반감을 느꼈다.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에 의지하는 한편, 다양성과 평등을 존중하는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다. 한국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 반대 시위,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 등에 참여하며 반전과 비폭력에 대한 신념이 깊어졌다. 성소수자로서 사회의 지배적인 서사와 긴장 관계를 맺어온 것도 또 다른 배경이었다.

“입시-군대-취업-결혼-양육이라는 사회 주류 서사가 모두의 행복을 약속할 수 없다면 나에게 가치 있는 선택은 무엇인지 탐구해왔어요. 군대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고민한 것 같아요.”

그는 2017년 11월 입영통지서를 받고 입대하지 않았다. 경찰은 30분 만에 조사를 마쳤다. ‘조서 다섯 장짜리밖에 안 되는 쉬운 사건’이라고 했다. 실제로 1심 재판도 선고를 포함해 딱 두 번 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1년6개월의 ‘정찰제’ 판결을 받고 교도소로 직행하던 시절이다. 그러다 2018년 헌재와 대법원의 판단 이후 법원은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 즉 양심의 진정성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교리나 활동 내용이 있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 비해, 비종교적 병역거부는 명확한 기준도 객관적 증빙 자료도 없어 더 까다롭고 자의적인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 2020년 6월 항소심의 사실상 첫 재판이 열렸을 때 재판장이 말했다. “이 사건, 어려울 수 있겠네요.”

대법원은 헌법(제19조)에서 보호하는 양심이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설명하며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여야 한다”고 짚었다. 그 진위를 가려내려 재판에서 총쏘기 게임 가입 여부, 웹하드 다운로드 기록, 금융정보, 학력과 학교생활기록부 등이 현출된다.

-어떤 기록들이 재판에 제출됐나.

“웹하드 기록, 총쏘기 게임 가입 여부, 생활기록부가 제출됐어요. 검사는 신앙생활을 검증해야 한다며 1년 동안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조회하기도 했고요. 장래희망에 선생님이라 적은 생활기록부를 보고 ‘주류적 가치를 비판하다보니 병역거부하게 됐다면서 선생님은 너무 규범적인 직업 아닌가’ 질문하더라고요. 태어날 때부터 병역거부라는 목표를 갖고 삶의 스펙을 쌓아둬야 하는데 그런 서사에 어긋나면 어떻게든 문제제기하겠다는 거죠. 검사는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해야 피고인에게 유리하다’고 말하지만 특이사항 없으면 아예 언급도 하지 않더라고요.”

지인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면?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범죄행위를 가려내 처벌하는 절차다. 피고인의 말에서 거짓을 찾아내 신뢰를 떨어뜨리고 결국 병역거부 자격이 없다는 걸 밝혀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는 피고인의 진술을 직접 듣는 피고인신문에서 두드러지는 문제다. 검사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거나 과거 역사적 사건을 끌고 들어와 ‘그래도 총을 들지 않겠는가’ 묻는다.

그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평화주의 신념 때문에 제2의 일본군 ‘위안부’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전쟁이 나서 여성 지인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면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질문지를 미리 받아본 변호인이 반발해 검사는 질문을 바꿔 물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도 있었다. ‘동성결혼이 법제화돼도 결혼하지 않을 건가요.’ ‘아이 입양할 생각은 없습니까.’ 1시간30분 동안 개인적 이력부터 신념까지 질문 60여 개가 이어졌다.

-검사의 질문에 어떻게 대응했나.

“답변을 기대하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답하든 부족하거나 공격받을 수밖에 없는, 사실은 피고인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질문으로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고 입증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재판이 한 편의 부조리극 같더라고요.”

그러나 피고인신문이 끝나갈 무렵, 그는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무너져내렸다고 했다. 질문 한 번 없던 재판부 배석판사가 입을 열었다. “단순히 병역을 이행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본인의 처지에 비추어 싫다는 게 아니라 내 존재 자체로서 병역을 거부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잖아요. 피고인은 그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요.”

-그 질문에 왜 절망했나.

“지난 재판 내내 내 양심과 신념을 거듭 설명해왔는데 재판부에는 존재론적 차원이 아니라 단순한 호불호 차원의 문제로 비쳤나 싶었어요. 더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 안되는구나.’ 그때 존재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순간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음으로 눈물 흘리며 그가 말했다. “같은 고민을 하는 분 중에 이미 수감돼 징역형을 받는 분도 계시고 사법부 판단을 기다리는 분도 계십니다. 저보다 조금 더 설득력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모이게 된다면 제가 아니어도 그 이후에라도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법정 분위기는 순간 가라앉았다.

2020년 11월26일 의정부지법 형사4-1부(재판장 이영환)는 원심을 뒤집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기뻤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낱낱이 전시하고 양심의 진위를 벼랑 끝까지 추궁당한 법정에서의 경험은 우울감을 남겼다고 했다. 2021년 6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양심도 ‘스펙’ 쌓아야 하나요

시우씨의 판결은 퀴어, 페미니즘, 평화주의 등으로 병역거부 사유를 확장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는 고등학교 종교 동아리와 대학교 선교단체 활동 내용, 대학교 교지편집위원으로 쓴 글, 학위 논문까지, 제출할 만한 증거가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신념이 반드시 외부 활동으로 표출되는 것도 아니고, 활동해도 기록으로 남기거나 증명하기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심을 논리정연하게 글과 말로 풀어내기도 어렵다. 학력과 계급,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병역거부는 과거 언어가 없는 선택이었어요. 사회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져서 재판까지 받게 된 건데 어떻게 모든 사람이 흡족해하는 답변을 할 수 있겠어요.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할 것도 아니고요. 조건과 자격을 묻다보면 탈락하고 실격되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요. 기본권으로 완전히 인정받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병역거부자들은 여전히 유죄판결을 받고 있다. 평화주의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홍정훈씨는 “(그의 양심이) 비폭력·평화주의보다는 주로 권위주의적 문화에 대한 반감에 기초하고 있다”며 유죄를 선고받았다. 오경택씨는 ‘5·18 민주화운동 때 시민들이 총을 든 것을 폭력 행위라 비판하기 어렵다’고 답한 게 유죄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이들은 2021년 2월25일 유죄가 확정돼 감옥에 갔다. 교정시설에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된 인원은 78명이다(2021년 7월12일 기준). 그중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몇 명인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남은 재판은 어떻게 해야 할까.

“헌재 결정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법적 절차는 모두 중단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형사재판은 양심과 신념을 다루기에 너무 가혹하고 공격적인 형식이에요. 유죄 입증이 목표인 검사와 병역거부가 생소한 재판부 앞에서 피고인만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어요. 헌법적 기본권에 해당한다면 자격과 조건 없이 모두에게 최대한으로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양심 심사하는 재판, 멈춰야

병무청에 따르면, 현재 재판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만 여호와의 증인 신도를 포함해 64명이다(2021년 6월30일 기준). 이들은 재판만 4년여 받고 있다. 재판이 중단된다고 해서 병역이 면제되지 않는다.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조사와 심사를 거쳐야 한다. 물론 교정시설에서 합숙하며 현역복무 기간의 2배에 달하는 36개월 대체복무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 진입 장벽은 높다. 그는 모든 법정 투쟁을 마무리했지만 대체복무를 앞두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들 한다. 그러나 변화의 선두에 섰던 이들은 지금 그 변화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 그 시대는 아직 다 가지 않았다. 시우씨는 말했다. “문이 열려도 왜 그 길로 가지 못하는 걸까요. 그걸 저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어요.”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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