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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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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당했다는 거, 인정받고 싶어요”

5명 미만 회사 제외, 비전문적인 조사 과정에서 2차 가해, 처벌 규정 없어 유명무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
등록 2021-06-29 02:11 수정 2021-06-29 10:22
전남 진도군 장애인생활지원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박주연씨(왼쪽 넷째)가 2021년 6월17일, 서울 중구 삼일대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박씨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고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에게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한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다. 류우종 기자

전남 진도군 장애인생활지원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박주연씨(왼쪽 넷째)가 2021년 6월17일, 서울 중구 삼일대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박씨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고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에게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한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다. 류우종 기자

2021년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6장의 2) 시행 2주년이 다가온다. 2년간 일터는 바뀌었을까. 직장인 1277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취업포털 ‘사람인’ 2021년 6월)를 보면, 응답자 2명 중 1명(50.1%)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지만, 신고 등 직접적 대응은 절반(45.4%)에 그쳤다. 대응하지 않는 이유로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71.7%, 복수응답)가 가장 많이 꼽혔다. 그다음으로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54.4%),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30.1%), ‘다들 참고 있어서’(27.6%)가 뒤따랐다.
<한겨레21>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피해자 4명을 만나 신고와 조사 과정을 물었다. 그들은 2차 가해를 경험하고 피해자 보호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해 법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패배한 것일까.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인정받았음에도 퇴사한 정소희(27·가명)씨가 말한다. “문제를 말하고 떠난 사람과 아무 말도 못하고 떠난 사람은 다르다. ‘사이다’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후임자에게 괴롭힘이 대물림되는 것은 최소한 막을 수 있지 않았나.”
2019년 근로기준법에 ‘괴롭힘’을 최초로 정의해 직장 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됐다. 2021년에는 비밀유지의무 조항이나 과태료 부과 규정 등을 신설해 실효성을 높였다. 하지만 괴롭힘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피해자들은 여전히 있다. 이 글은 피해자를 위한 연대의 편지이자, 가해자가 될지 모르는 당신에게 보내는 각성의 편지다._편집자주

“5명 미만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요?”

사회복지사로 전남 진도군 산하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2015년부터 6년째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운전원으로 근무하는 박주연(48)씨 말이다. 박씨는 8살 어린 사무원 ㄱ씨에게서 ‘너’ ‘2호차’ ‘미친 ×’ ‘너는 사형감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또 자신이 휴가 중인 것을 이용해 필수 의무교육을 자신만 빼고 이수하도록 하고, 행정청에 취합해서 보내야 할 자료도 자신의 것만 빼고 보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고용노동부에 전화해 상담했지만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아 도와줄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괴롭힘 인정됐지만… 오히려 징계

어쩔 수 없이 전라남도 인권기구의 문을 두드렸다. 2021년 3월 전남 도민인권보호관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된다”는 결정을 받았다. 녹취록과 참고인 진술, 전자우편 등을 통해 발언과 부당한 업무 배제가 인정됐다. 도민인권보호관은 결정문에서 “이 센터의 운전원은 사무원을 통해 센터장에게 보고하는 조직 체계이기 때문에 ㄱ씨가 박씨를 지휘 감독할 권한은 없더라도 센터의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지위에 따른 관계의 우위성은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ㄱ씨는 관계의 우위성을 이용해 박씨에게 괴롭힘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정문이 주어지면 통상의 회사는 “예방 조치 계획 등을 제출하고 피해자에게 유급휴가 등을 쓰게 하는 데”(도민인권보호관) 비해 센터의 박씨 상황은 더 악화됐다.

박씨가 불안장애, 불면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치료를 위해 유급휴가를 요청했지만 센터는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6월18일 “근무태도가 불성실하고, 직무명령에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했다”며 박씨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센터는 더 나아가 도민인권보호관의 결정에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국민신문고에도 민원을 넣은 상태다. 공정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도민인권보호관은 ㄱ씨가 조사 자체에 비협조적이었다고 말한다. “조사 당시 ㄱ씨와 면담했고, ㄱ씨가 추후에 답변하겠다고 해서 기다림 끝에 서면으로 답을 받았다”고 말한다. 결정문에 기록된 ㄱ씨의 답변을 보면 ㄱ씨는 “박씨와 (지위)고하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무 배제를 할 권한이 없고 박씨가 주장하는 괴롭힘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민인권보호관은 “수차례 시정 권고문을 보냈지만 5명 미만 사업장이기 때문에 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6월17일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고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에게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변화 체감하지 못한다 77.8%

2019년 7월16일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당시 간호사 ‘태움’(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을 말함)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당시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사내 갑질 등의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법, 산업안전보건법, 고용보험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신설됐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다른 근로자에게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직장 내 괴롭힘)를 법률로 금지한 것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법이 시행된 뒤 현재까지(2021년 5월31일 기준) 노동부에 접수된 사건은 1만340건인데, 노동부가 개선 지도를 한 건은 1431건(13.83%)에 그친다. 검찰에 송치한 건(사용자가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했거나 폭행·모욕 등 처벌 규정이 있는 경우에 검찰 송치)은 1% 미만(101건)이다. 이 가운데 노동부의 기소 의견은 30건, 불기소 의견은 71건이었다(표 참조). 2021년 1~5월 노동부에 신고된 괴롭힘 유형(중복 신고 가능)을 보면 폭언(1054건·34%)이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부당인사(443건·14.3%)와 따돌림·험담(357건·11.5%)이 뒤이었다(표 참조).

법 시행 2년이 다가오지만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이 법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6월,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발표한 자료(직장인 1277명 조사)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변화를 체감하는가’에 77.8%가 여전히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0.1%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와 제도 속 허점이 존재하기에 직장 내 괴롭힘은 지속되고 변화는 더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법이 적용되지 않는 5명 미만 사업장부터 조사-처벌-감독(흐름도 참조)에 걸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의 사각지대를 짚어본다.

1. 5명 미만 사업장 제외

근로기준법(제76조의 3)은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된 때는 △피해자가 요청하면 유급휴가를 쓸 수 있고 △가해자는 징계 등을 해야 하며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지만, 박씨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박씨의 직장은 센터장과 직원 3명으로 이뤄진 5명 미만 사업장이어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수는 약 455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28%를 차지한다. 10명 중 3명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문제는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6월20일 공개한 설문조사(2021년 3월17∼23일 직장인 1천 명 대상)를 보면, 5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36.0%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평균(32.5%)을 웃도는 수치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모른다’는 응답도 5명 미만 사업장(43.4%)이 공공기관(25%)과 대기업(27.9%)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근로기준법(제11조)은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시행령을 만들어 일부 규정만 적용하게 돼 있다. 근로기준법을 제한적으로 적용한 것에 헌법재판소는 1999년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과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고려한 것”이라고 판단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관계자는 “5명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 현황 등을 실태 조사 중이고, 전문가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며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성우 노무사는 “사람을 괴롭히지 말자는 것과 영세성은 관련이 없고 인권의 문제일 뿐”이라며 “시행령에 5명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는 근로기준법 규정을 명시하는데, 여기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을 추가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조현주 변호사는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제11조 1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제32조 3항)고 돼 있다. 5명 이상 사업장과 5명 미만 사업장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 위반이자 국민의 평등권 침해다”라고 지적했다.

2. 불공정 조사와 피해자 보호 소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먼저 피해자 등이 사용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 신고가 접수되면 사내 인사팀이나 감사팀 등에서 조사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그 조사 과정에서 2차 가해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2018년부터 정부 부처에서 전문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한 김미혜(41·가명)씨는 2019년 6월 감사담당관실에 팀장을 신고했다. 팀장이 소리 지르거나 휴대전화·책 등을 던지고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업무 타박 끝에 ‘책상을 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밤늦게 전화해 “아이를 키즈카페에서 데려와달라”는 사적인 심부름도 시켰다. 김씨는 “업무 성과 등에 따라 재계약이 판가름 나니까 사직 권유성 발언에 위축됐다. 키즈카페 심부름은 하지 않았지만 눈치가 보였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자, 김씨는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조사관은 “내가 보기엔 사람 좋던데 당신이 예민한 거 아니냐” “차라리 한 대 맞았으면 확실한데 이건 모호하다”고 했다. 이후 팀장은 ‘경고’를 받았다. 김씨는 내부 조사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사내 조사위원회(신고처)는 회사 주도 또는 노사 동수로 조사하는데, 회사 주도 조사는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경징계가 나올 가능성이 크고 노사 동수라고 해도 노조원과 가해자의 친분에 따라 불공정해질 수 있다”며 “인권단체 등 외부 위원이 조사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3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보호를 조처하도록 규정한다. 예컨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야 하고 피해자에게 유급휴가를 명령하는 등 적절한 조처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사이에 공석 둔 것이 ‘공간 분리’?

정소희(27·가명)씨는 한 구청 주민센터에서 2020년부터 행정도우미로 일했다. 상사는 짜증을 자주 냈고, 참다 못해 정씨가 문제제기하자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고 ×× 짜증 난다. 꼴 보기 싫으니 관두라”라고까지 했다. 정씨는 구청에 신고하고 공간 분리 요청을 했다. “가해자와 나 사이에 책상 하나를 공석으로 두도록 했다. 이게 무슨 공간 분리인가 싶었다. 이후 구청에서 ‘경미한 괴롭힘이 인정되니 가해자를 훈계했다’는 결과를 받았다. 남은 건 퇴사밖에 없었다.”

앞서 김미혜씨의 경우도 괴롭힘 조사를 받으며 가해자인 팀장과 근무 장소를 분리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겨우 칸막이 하나를 설치해줬을 뿐, 같은 공간에서 8개월이나 계속 일해야 했다. 게다가 괴롭힘 신고를 하자마자 사내에 소문이 퍼졌다. 일면식도 없는 한 간부가 다가와 “이분이 (신고한) 그 사람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2020년 3월, 김씨는 재계약을 하지 않고 퇴사했다.

2021년 10월14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근로기준법에는 비밀유지의무 조항(제76조의 3 7항)이 있다. 괴롭힘을 인정받은 뒤 피해자 보호조치를 적절하지 않게 하거나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사용자에게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제116조 2항)이 포함됐다. 윤지영 변호사는 “지난 2년간 현장의 노력으로 법이 개정됐지만 피해자 보호가 꼭 필요한 조사 단계에서 보호 조치가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빠진 점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3. 고용노동부의 소극적 근로감독

만약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줬다면 노동부에 진정할 수 있고 근로감독관이 조사에 나선다. 노동부 조사는 사내 신고와 동시에 이뤄질 수도 있다. 피해자는 그 과정에서도 고통을 호소했다.

2019년부터 한 정보기술(IT) 기업에서 근무한 서이수(31·가명)씨. 그의 팀장은 전임자가 하루에 30∼50건 처리하던 일을 서씨에게 120건씩 배정해 업무를 독촉했다. 10분 이상 자리를 비울 땐 허락받으라고 했고, 서씨에게만 ‘오늘 할 일 리스트’를 만들어 제출하라고도 했다. 서씨가 일하는데 팀장이 컴퓨터 선을 뽑아버리기도 했다.

2020년 6월 서씨가 팀장이 자신을 괴롭혔다며 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조사하러 들어가자, 근로감독관은 팀장을 불러 대면조사를 하려고 했다. 서씨가 항의하자, 근로감독관은 팀장에게 밖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조사 과정에서 겪은 괴로움은 이뿐이 아니었다. “가해자의 폭언이 담긴 음성파일도 제출했는데 들을 시간이 없으니 직접 녹취록을 만들어오라고 했다. 팀장에게 가스라이팅(심리적 조작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했다고 하자, 가스라이팅이 대체 뭐냐고 묻기도 했다.” 결국 담당 근로감독관이 바뀌어 또다시 진술해야 했다.

전은주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조사 과정에서 전문성과 공감능력이 특히 요구되는데, 근로감독관의 무관심한 태도 탓에 피해자들이 상처받는다. 이들은 조사 의지 없이 사건 하나를 떼어내려고만 한다. 고용노동부는 교육과 업무처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문제 돼야 특별감독 들어가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을 보면 ‘폭언, 폭행,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등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에 대해선 특별감독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2020년 오리온 전북 익산 공장의 노동자가 괴롭힘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첫 특별감독이 이루어졌다. 2021년 5월 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과 과도한 업무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자 노동부가 네이버에 대한 특별감독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괴롭힘이 발생한 사업장에 특별감독이 이뤄진 경우는 지난 2년간 6건(2020년 2곳, 2021년 4곳)이다. 네이버처럼 사회문제로 떠오르지 않으면 특별감독을 하지 않는 셈이다. 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는 “‘사회적 물의’를 해석하는 내부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 많이 보도되거나 다수가 괴롭힘을 호소하거나, 위반 사항이 중대하거나 심각할 경우 특별 감독한다”고 밝혔다.

4. 가해자 처벌 한계

현행법으로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를 처벌할 규정이 없다. 다만 사용자가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했을 때, 사용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서이수씨가 다니던 IT 회사는 직원 20명의 소규모인데다, 가해자인 팀장은 사장의 아들이었다. 서씨가 사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자, 사장은 도리어 서씨를 협박했다. “IT 업계 좁은데, 이직할 때 나쁜 소문 낼 거라고 했다. 권고사직을 시키면 고용지원금이 줄어드니 자진 퇴사하라고도 했다. 거절하니 회사 분위기를 망쳤다며 정직 징계를 내리겠다고 했다.”

결국 서씨는 사장도 함께 가해자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고용부는 퇴사하라며 협박한 사장의 행위는 괴롭힘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노동부는 시정을 ‘권고’했을 뿐이다. 정직을 하겠다고 협박했지만 실행하진 않아 ‘불리한 처우’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괴롭힘을 어렵게 인정받았는데, 회사는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허탈했다. 사장이 나쁜 소문을 낼까봐 아예 다른 업계로 이직했다.”

10월14일 시행되는 개정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와 사용자 친족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인 경우 1천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근로기준법 제116조 1항)하도록 바뀐다. 그러나 여전히 근로자가 가해자일 경우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전문가들은 가해자 처벌로 실효성을 높일 수 있으나 그만큼 부작용도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형벌권을 발동하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인정할 범위가 좁아질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를 규율하는 법이기에 가해자인 노동자를 처벌하는 규정은 입법 체계상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이 일터 떠나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일터를 떠났다. 박주연씨는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고, 김미혜·서이수·정소희씨는 상처를 안고 퇴사했다. 그러나 낙담하기에는 이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그 피해자들의 문제제기로 개정을 거듭하면 성장 중이기 때문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9년 법 제정으로) 음지에 숨어 있던 직장 내 괴롭힘을 양지에 꺼내놓았다. 봉건적이고 후진적인 조직문화를 바꾸는 시작점이다”라고 평가했다. 앞으로의 과제도 분명하다. “현행법은 사후 구제 조처만 규정한데다 그것마저 사용자에게 맡겨놓았다. 성희롱 예방 교육이 의무이듯 괴롭힘 예방 교육도 의무화해야 한다. ‘괴롭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세대별로 해석이 다르고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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