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차관급 기관장과 기초지자체장, 시·군 의원,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까지 여러 공직자들이 내부정보를 활용해 토지를 매입한 혐의를 확인했습니다. 국무총리로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사죄드립니다.”
2021년 6월2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민 앞에 머리 숙였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투기 조사 및 수사 중간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였다. 3월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이 내부정보를 바탕으로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된 이후, 전국 곳곳에서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불법·탈법 부동산 투기 사실이 드러났다. 불씨는 점점 커졌다. 정부는 대대적인 단속과 수사·조사에 나섰다. 공직자 9명을 포함해 모두 34명이 구속됐다. 부동산 투기 수익 총 908억원이 몰수 또는 추징 보전(형 확정 전까지 재산 처분 금지) 조치됐다. 세금 탈루 의혹이 밝혀진 94건(534억원)에 대해서는 세금을 추징하고, 불법대출이 의심되는 금융회사 임직원 67명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투기 불씨를 아예 없애기 위한 제도적 변화도 뒤따랐다. 공직자가 직무 수행 중에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재산상 이득을 얻는 것을 금지하고, 직무와 관련된 사적 이해관계를 신고하도록 하는 ‘이해충돌방지법’이 4월 제정됐다. 공무원 아파트 특별공급 제도는 폐지됐다. LH 기능을 대폭 축소하는 체제 전환 방안도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급한 불 끄기’에 불과하다. “투기 수사는 하책(가장 나쁜 대책)이고 보유세 강화가 상책(가장 좋은 정책)인데, 지금 정부·여당은 근본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으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도입을 주도했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분노의 밑바닥에는 최근 몇 년간 급등한 집값, 이를 야기한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4월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의 완패,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하락이 그 증거다.
“(선거 패배)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부동산 부분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그런 상황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10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으며 “부동산 정책의 성과는 부동산 가격의 안정이라는 결과로 집약되는 것인데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겹쳐지는 장면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취임 4년 무렵인 2007년 1월 신년연설에서 부동산 문제를 거듭 사과했다. “부동산, 죄송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올라서 미안하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번에 잡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 모두 집권 후반기에 부동산 문제가 아킬레스건이 됐다.
정부와 여당의 균열 양상도 두 정부가 비슷하다. 보유세 강화 같은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에 대해 보수언론과 야당뿐 아니라 여당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특위)는 5월27일 1가구 1주택자 재산세 부담을 완화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종부세와 양도소득세도 완화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현재 공시지가 9억원 이상인 종부세 부과 기준을 ‘공시지가 상위 2%’(대략 11억5천만원) 또는 12억원 이상으로 높여 납세 인원을 줄이자는 게 여당 고민의 핵심이다. 1주택자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완화해주는 안을 검토 중이다.
참여정부 “끝까지 보유세 강화”한쪽으로 부동산 투기를 단속하겠다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투기성 부동산 보유를 억제하는 구실을 하던 빗장(종부세와 양도소득세)을 슬며시 열어주는 꼴이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세제 개편 추진”(5월27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논평)이다.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다. 2003년 10·29 대책으로 발표한 종부세 도입안은 6억원 이상 고가주택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자 ‘세금폭탄’이라는 공격이 시작됐다. “주택에 대한 정부의 무차별 ‘세금폭격’이 도를 넘어선 듯한 느낌이다. 투기 억제와 주택시장 안정이라는 목표가 주택 보유와 거래 자체를 죄악시하고 응징하겠다는 쪽으로 바뀐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조선일보> 2003년 12월5일치 사설) 정부·여당 내부까지도 공격했다. 재정경제부(현재 기획재정부)는 건설 경기 침체를 이유로 ‘종부세 도입 연기’를 주장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까지 국민 여론을 명분으로 ‘종부세 완화’ 편에 섰다. 결국 2004년 최종 확정된 종부세 방안에선 적용 대상이 6억원 이상에서 9억원 이상으로 완화됐다. 시민단체들은 ‘종합부동산세가 종합구멍세가 됐다’고 비판했다. 2005년 들어 집값이 다시 오르자 종부세 대상은 6억원 이상 주택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부터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거센 공격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유세 강화’라는 정책 기조를 확실히 끌고 나갔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제금융부동산학)는 “반면 문재인 정부는 애초부터 뚜렷한 철학이나 강한 의지 없이 사후약방문식 대책만 내놨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막대한 부동산 불로소득, 갈수록 커지는 자산 격차… 우리는 손대지 못했다”(2021년 3월29일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 머리발언)고 고백한 바 있다.
이정우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 초반 1년 내내 ‘보유세 강화’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투기 좀 해도 되겠네’라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야금야금 (투기에) 불이 붙은 거다. 부동산 정책 효과는 2년가량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에, 초반에 부동산 정책의 원칙을 명확히 했더라면 (집값도) 잡혔을 것”이라며 “만시지탄”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처럼 청와대 의중이 확실하지 않다보니 여당의 입김은 더 커지는 분위기다. 민주당 특위가 내놓은 ‘상위 2% 종부세안’과 관련해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6월1일 “내가 만들었고 ‘부자 감세’가 아니라 2% 이상 해당되는 분에게 실제로 세금 부과가 더 늘어난다”고, 김진표 특위 위원장 역시 “종부세를 상위 2%에만 과세하는 게, (과세 기준을) 12억원으로 올리는 것보다 훨씬 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전강수 교수는 “부동산 세금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부동산값을 못 잡아서 4·7 재보궐선거에서 졌는데, 여당은 세금 때문에 졌다는 엉뚱한 인식을 한다”며 “국민 절반 가까이가 무주택자인데 여론을 반영하는 데 대단히 심한 비대칭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집 없는 서민이 ‘죽비’를 내리쳤는데, 정부·여당은 ‘세금을 수백만원씩 더 내야 한다’고 불평하는 시가 20억원 이상 주택 소유자, 다주택자에게만 머리를 숙이는 꼴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참고 문헌
<대한민국 부동산 40년: 1967년부터 2007년까지 부동산 정책의 과거와 현재>, 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 지음, 한스미디어,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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