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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요? [노땡큐]

등록 2021-05-08 17:13 수정 2021-05-10 04:3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매일매일 새로운 사건을 만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논쟁의 초점이 바뀌고,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또 다른 사태를 맞닥뜨린다. ‘현안’이 너무 많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그런데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에 시달린다. 책임 없이 그저 ‘누구나 말하는 것’만으로 공론장이 형성됐다고 오인되는 사회에서, 말의 무게는 새털처럼 가볍거나 반대로 이유 없이 무게감을 갖는다. ‘다이내믹 코리아’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그래서 냉소하기 쉬운 사회다. 이런다고 뭐가 바뀌나?

새로운 현실, 지루한 요구?

한국은 근 150년 동안 언제나 “격동의 시기” “급변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모든 세대가 자신을 ‘낀세대’라고 느낀다. 나의 아버지는 유년기에 소 여물 주기를 거들었고, 노년이 된 지금은 유튜브로 교회 예배를 본다. 아무도 이전 세대를 참조점 삼을 수 없는 속도의 사회에서 ‘따라잡기’는 과정이 아니라 목표가 돼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얼마나 쉽게 ‘뻔해’ 보이는가.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구호는 너무 쉽게 지루해진다. 압축적 근대화와 성장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 속도, 여기에 “구독과 좋아요” 경제의 문법까지 자리잡고 나니, 이제 중요한 건 ‘새로운가 새롭지 않은가’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21세기에 사람이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고, 떨어져 죽는다.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디지털성범죄는 ‘5G 속도’로 증식 중이며, 밤길도 낮길도 심지어 자신의 집조차 안전하지 않다. ‘누구나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다’ ‘혐오는 용인돼서는 안 된다’ ‘폭력은 분명히 제재돼야 한다’….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이 최소한의 믿음들은, 각자 알아서 돈으로 해결하라는 가책 없이 자유로운 말들 앞에 할 말을 잃는다. ‘법을 지키라’ ‘약속을 지키라’ ‘진상을 규명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재발을 방지하라’ ‘그릇된 결정을 바로잡으라’ ‘제대로 사과하라’…. 이 처절하게 간명한 요구들의 힘은 바스러지기 쉽다. 다른 속도, 다른 시간성을 적극적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없다면 말이다.

때론 끈질김이 모든 것이다

‘맞다, 그 사건 지금은 어떻게 됐지?’ 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할 때가 있다. 계속 싸우는 사람들, 이어서 싸우는 사람들 덕분에 말이다. ‘엔(n)번방’ 전에 있었던 ‘소라넷’을 폐지하는 데 17년이 걸렸다. 스토킹처벌법은 22년 만에야 제정됐다. 성별 임금 격차가 얼마나 견고한 구조의 산물인지 분석하고 문제제기하는 여성운동의 목소리는 반세기째 이어진다. 고 변희수 하사의 복직 소송은 유가족이 이어받아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하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첫 발의 뒤 13년이 지난 지금도 뜨거운 목표다.

그래서 힘내어 검색해본다. 2년 전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집회에서 총 20개 죄목으로 1만3640년 형량을 받아 마땅하다고 봤던 웹하드 카르텔 양진호는,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첫 공판에서 그는 “웹하드에 대해서도 편견 없이 살펴달라”고 했단다. 최근 대법원 판결에서 그는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판결이 끝나도 불법촬영 피해자들의 삶은 계속되며, 디지털성착취를 근절하려는 노력도 지속된다. 최근 ‘박사방’ 주범 조주빈의 2심 판결을 앞두고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공범인 남경읍, 이원호, ‘부따’ 강훈의 재판도 진행 중이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끝내지 않고 이어가는 사람들,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렇다. 그 끈질김이, 더 긴 시간을 감각할 이유를 알게 하고, 다른 속도로 살 용기를 내게 한다. 최근 오스카상 수상과 함께 재조명되는 윤여정의 ‘어록’ 중 ‘오래 버티면 이긴다’는 말이 있다. 맞다. 때론 새로움이 아니라 끈질김이 모든 것이다.

전희경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옥희살롱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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