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땅 투기의 싹을 자르는 ‘법’

토지초과이득세법 심상정 발의… 토지공개념 다시 세울 수 있을까
등록 2021-05-01 14:05 수정 2021-05-04 07:15
2021년 4월2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열린 ‘토지초과이득세법 입법 청원’ 기자회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왼쪽 둘째)과 변호사들이 입법청원서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4월2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열린 ‘토지초과이득세법 입법 청원’ 기자회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왼쪽 둘째)과 변호사들이 입법청원서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명분으로 토지 투기를 조장했으니 정치권이야말로 부동산 투기 공화국의 공범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투기의 싹이 자라나지 않도록 땅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 출발점이 토지공개념이다. 토지는 공공자산이다. 토지로 인한 사익 추구는 조세를 통해 엄격히 통제되어야 한다. 다시 토지초과이득세법을 도입하자.”(2021년 4월29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 ‘토지초과이득세법 발의 기자회견’)

“부동산 투기 막을 불로소득 환수제 필요”

다시, 23년 만의 부활이다. 지나친 땅투기를 막을 제도적 방안으로 ‘토지초과이득세법’ 제정안(심상정 의원 대표안)이 발의됐다. 앞서 4월27일에는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토지초과이득세법을 제정해달라고 국회에 입법 청원했다. 이 법은 1990년부터 시행되다가 1998년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폐지된 바 있다. 땅값이 3년 전보다 급등했을 경우 정상적인 공시지가 상승분을 초과하는 이익의 상당 부분을 사회적으로 환수하는 것이 법의 뼈대다. 농지법을 어기고 취득한 농지나 자신이 경작하지 않는 농지, 거주나 사업과는 무관한 임야 등 개인이나 법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사용하지 않는 ‘유휴토지’가 세금 부과 대상이다. 투기가 의심되는 땅에서 불로소득(초과이득)이 발생하면 30~50% 세율을 적용해 세금(소득세)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토지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0.1~5%)보다 세율이 훨씬 높다.

다시, 죽은 법을 부활시킨 이유가 있다. “LH 사태는 공직자의 부패 및 이해 충돌 행위를 넘어선다. 기획부동산, 외지인의 토지 소유, 농지법 위반 등 개발 예정 지역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투기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박용대 변호사) 법안 검토에 참여한 박용대 변호사(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는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불로소득을 환수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동산 투기 공화국에는 LH 직원들과 고위 공직자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4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이 통과했다. 법안 발의 8년 만이다.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 등이 직무상 알게 된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재산상 이득을 취하면 형사처벌(7년 이하 징역형 또는 7천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땅을 사들인 LH 직원들에 대한 ‘분노 잠재우기’ 차원이다. 그러나 드러난 몇몇을 처벌한다고 투기 공화국 자체가 무너지지 않는다. 그곳에는 여전히 땅으로 돈을 벌려는 수많은 무명씨가 남아 있다.

토지초과이득세법은 그러한 무명씨들이 ‘대박을 기다리며 묻어둔 땅’(유휴토지)을 팔도록 등을 떠미는 법이다. 물론 지금도 땅값이 급등해 팔 때는 세금을 내야 한다(양도소득세).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는 대책의 하나로, 1년 미만 보유한 토지를 양도할 때의 세율을 현행 50%에서 2022년 1월부터 70%로 높이기로 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양도소득세가 내 통장에 꽂힌 돈(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라면, 토지초과이득세는 내 통장에 아직 꽂히지 않은 돈(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다. “세금을 내기 싫어서 땅을 팔지 않는 동결효과가 나타나는 양도소득세와 달리, 토지초과이득세는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다. 어차피 땅을 팔면 내야 할 양도소득세를 미리 토지초과이득세로 내고 나중에 공제받게 하면 납세의 어려움도 해결된다.”(4월12일 ‘토지공개념의 도입과 토지초과이득세 부활’ 토론회에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잠시, 32년 전으로 되돌아가보자. 1989년 노태우 정부는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택지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해 전국 평균 지가는 전년보다 32%나 올랐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주택 200만 채 건설 계획과 함께 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개발 광풍이 불었다. 부동산 투기를 막고자 급기야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 민간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토지공개념 연구위원회’가 꾸려졌고, 이 연구 결과에 기반한 법이 제정됐다.

토지초과이득세 개인·법인이 소유한 유휴토지의 가격이 급등해 발생하는 초과이득(불로소득)의 일부를 환수하는 차원의 소득세. 1990년 토지초과이득세법이 시행됐다가 경기 활성화를 이유로 1998년 폐지됐다.
토지공개념 공공자산인 토지에 대해서는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더라도, 정부가 공익을 위해 토지 이용·개발을 제한하는 등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내용. 헌법에도 관련 의미가 담겨 있다.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 등이 대표적으로 토지공개념을 적용한 법이다.
유휴토지 토지 소유자가 장기간 방치해두거나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토지. 토지초과이득세법에서는 농지법을 위반해 취득한 토지, 거주·사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임야 등을 ‘유휴토지’로 규정한다.
1989년 제정, 1994년 개정, 1998년 폐지

토지는 노동이나 자본과는 다른 특성을 지닌다. 공급이 고정돼 있어 무한하지 않다. 주식·상품과 달리 토지에서 발생한 불로소득은 생산을 증가시키지도 않는다. 땅값이 치솟아 개발이익이 발생하더라도, 이익은 개인(법인)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토지 소유자가 토지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하는 일은 없다. 투기 정보를 알아내 개발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시장의 실패로 인한 지나친 땅값 상승을 막으려면 사회 내부의 상호 합의 아래 공공이 토지를 규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토지공개념의 논리다.

‘토지공개념’이란 용어는 1980년대 후반에만 해도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개입한다’는 정치적 선언에 가까웠다. ‘공익 확보라는 전제하에 (…) 시장 개입과 권리의 제한을 타당하고 정당한 것으로 수용하는 사회적 합의 내지 가치관을 바로 토지공개념이란 단어로써 표현’(토지공개념 연구위원회, 1989년)했다.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토지초과이득세법이 시행되자, 전국의 평균 지가상승률은 1990년 20.6%, 1991년 12.8%로 점차 낮아졌다. 3년간 전국 평균 지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해 땅값이 오른 토지에는 세금을 부과했다. 1993년 처음으로 세금 6466억원을 거뒀다. 그러나 이내 조세 불만이 커졌고, ‘토지공개념 법안에 대한 법적 정당성을 둘러싼 분쟁이 번졌다’(김명수, 2018). 1994년 헌법재판소가 토지초과이득세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토지 투기에 대한 공적 규제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보완 규정 미비 등을 지적했다. 이후 법이 개정돼 △토지초과이득이 없는 경우를 위한 보충 규정 △양도소득액에 공제 조항 등이 추가됐다.

토지공개념은 ‘사회주의 제도’라는 오해도 받지만, 이미 헌법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헌법 제122조) 헌법재판소는 이를 인정하는 판례를 여러 차례 내놨다. 이강훈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토지초과이득세법의 목적과 취지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가 위헌’이라는 괴담이 돌고 있다”며 “1994년 개정된 법은 그 뒤로 네 차례 합헌 결정(1997년 8월~1999년 8월)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이 법은 8년 만에 없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은 김대중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며 1998년 법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다시, 투기의 욕망이 땅값을 밀어올렸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기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던 연평균 지가상승률이 노무현 정부(2002~2006년)에선 4.5%로 출렁였다(이정우, 2007). 국민을 상대로 토지에 관한 의식 변화를 조사했더니, ‘기회가 되면 토지를 이용해서 자산을 증식시키겠다’는 응답이 67.5%에 이르렀다(2006년 국토연구원 성인 1800명 전화면담 조사). 1979년 토지를 자산 증식에 이용‘하겠다’(51.1%)와 ‘하지 않겠다’(48.9%)라는 응답이 팽팽했던 것(성인 1948명 방문조사)에서 ‘투기 공화국’ 쪽으로 성큼 옮겨간 셈이다. 김대중 정부가 규제의 빗장을 열어줬고, 노무현 정부는 규제의 우리 밖으로 나와 날뛰는 부동산 투기 욕망에 흔들렸다. 실거래가 신고 의무화, 종합부동산세 강화, 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과세 등 강한 처방도 통하지 않았다.

2021년 4월22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본청 앞에서 정의당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부동산 정책 후퇴’를 조장하는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21년 4월22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본청 앞에서 정의당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부동산 정책 후퇴’를 조장하는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류우종 기자

문 대통령 토지공개념 개헌 발의했지만

2018년 3월 다시, 토지공개념이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토지공개념을 구체화하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 헌법 제122조에다 ‘국가는 토지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2항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확히 못박자는 취지다. 하지만 헌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의결 정족수 미달로 사실상 부결됐다.

그 뒤 3년이 흘렸다. 자산 불평등은 심해졌다. 자산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는 2017년 0.584에서 2020년 0.602가 됐다. 그런데도 다시, 부동산 불패 신화가 부활했다. 급등한 집값, LH 직원들의 투기 논란, 공시지가 인상 등 부동산 이슈 탓에 4·7 재보선에서 패배했다고 판단한 여당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규제 완화 등을 저울질하고 있다. 종부세 부과 대상을 공시가격 9억원 초과에서 12억원 초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납부 대상은 전체의 3.8%(52만 가구)에서 1.9%(26만 가구)로 줄어든다.

‘부동산 정책 역주행’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4월27일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는 첫 회의를 열어 ‘종부세 논의는 후순위’라고 한발 물러섰다. 대신에 위원회는 결정고지일(6월1일)을 앞둔 재산세 감면 방안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등 민주당은 우왕좌왕하는 분위기다.

여론도 엇갈린다. 엠브레인퍼블릭 등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4월26~28일 전국 성인 1001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종부세 대상을 공시가격 12억원 초과로 상향 조정하는 것에 대해 ‘공감한다’(44%)와 ‘공감하지 않는다’(45%)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나왔다. 1주택자 재산세 감면 기준을 공시가격 6억원 초과에서 9억원 초과로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공감’(64%) 응답률이 ‘비공감’(26%)을 크게 앞섰다.

다시, 2004년으로 돌아간 듯하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10월29일 종부세 도입을 발표하는 등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부터 정부·여당 안에서는 종부세 부과 대상을 애초 6억원 이상에서 9억원 이상으로 높이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거품은 불신을 먹고 산다

‘부동산 정책의 생명은 신뢰다. 신뢰가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 그것이 정책 효과에 미치는 악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정부·여당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어찌 정책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한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가 2007년 펴낸 논문의 마지막 단락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부동산 투기의 거품은 불신을 먹고 살고, 신뢰 속에서는 설 땅이 없다.’

정부와 여당은 다시, 시험대 위에 서 있다. 부동산 투기 거품을 어떻게 꺼뜨리고, 부동산 투기 공화국의 땅을 어떻게 갈아엎을 것인가. 무엇보다 신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참고 문헌
‘토지공개념의 도입과 토지초과이득세 부활’ 토론회 자료집, 정의당·참여연대 공동주최, 2021
‘토지공개념 논의와 정책 설계-개발이익 공유화 관점에서’, 이석희·변창흠, <국토계획> 54권 2호, 2019
‘토지공개념 헌법 명기에 내포된 가능성과 한계-제도사적 고찰’, 김명수, <경제와 사회> 119호, 2018
‘한국 부동산 문제의 진단-토지공개념 접근방법’, 이정우, <응용경제> 9권 2호, 2007
<대한민국 부동산 40년: 1967년부터 2007년까지 부동산 정책의 과거와 현재>, 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 지음, 한스미디어, 2007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