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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큐레이터] ‘기분’이 ‘인권’보다 소중하다?

정부가 변 하사를 죽였다
등록 2021-04-17 09:45 수정 2021-04-18 01:54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을 없애버리겠다’던 변희수 하사. 그는 군의 강제 전역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내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중에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그런데 그가 숨지기 하루 전, 정부 입장이 담긴 답변서를 받아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가 복직 소송을 낸 지 7개월이 지나서야 나온 정부의 답변서엔 차별과 혐오가 얼룩져 있었다.

“고의에 의한 고환 결손으로 심신장애를 초래한 것”, 변 하사의 성전환수술에 대한 정부의 해석이다. 성별 정체성이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과 불일치할 경우 하는 성전환수술은, 의학적으로 검증된 수술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정신질환, 신체훼손과 연결지었다. 변 하사의 상태가 전투력 저하와 연관될 것이라는 서술도 있었다. 3주에 한 번씩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는 변 하사는 전차 조종수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성호르몬 치료가 문제가 된다면 여군의 출산과 보건휴가까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정부는 답변서에서 자가당착적 논리를 이어갔다. 현재 복무 중인 여군은 1만4천여 명에 이른다.

미국, 독일, 심지어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를 시행하는 이스라엘 등 20여 개국이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차별적 언어로 가득한 답변서를 변 하사의 손에 쥐여줬다. 답변서에 적힌 복직 거부 이유 중 하나는 변 하사의 존재가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급부대 지휘관들은 변 하사가 수술을 결정할 때부터 수술받고 올 때까지 꾸준히 ‘수술 잘 받고 건강히 돌아오라’고 응원했다. 군인권센터와 접촉한 여군들은 “남군과 생활하는 게 불편하면 남군들 다 전역할 거냐”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육군은 변 하사의 복직에 대해 “한 개인의 인권만을 위해 그 외 다수 인원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복직 거부’ 논리를 펼쳤다.

정부는 한 개인이 자신다운 모습으로 존재할 ‘권리’와, 많이 접해보지 못한 타인을 낯설어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기분’을 같은 차원으로 보는 오류를 범했다. 군이라는 정부 기관이 트랜스젠더를 배제한다는 메시지를 사회 전체에 주는 건, 사회 전체에서 ‘혐오’와 ‘폭력’을 용인하겠다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그는 떠났지만 정부에는 기회가 있다. 차별과 혐오 딱지를 떼고, ‘기분’ 대신 ‘인권’을 이해하고 보장할 기회 말이다.

천다민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

관심 분야 문화, 영화, 부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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