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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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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IMF세대 될 ‘상흔’ 효과 막으려면

IMF 취업난이 당시 대학 졸업자에게 이후 12년간 영향 끼쳐,
록다운 세대 ‘상흔효과’ 막으려면
등록 2021-03-06 12:04 수정 2021-03-10 01:14
2020년 4월 미국 아칸소주 페이엣빌에 있는 주정부 기관 아칸소 인력센터 앞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두 여성이 실업자 구제를 위한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0년 4월 미국 아칸소주 페이엣빌에 있는 주정부 기관 아칸소 인력센터 앞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두 여성이 실업자 구제를 위한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지구촌을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이 1년3개월째 접어들었다. 2021년 3월4일 기준, 전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억1586만 명, 사망자는 257만 명을 넘어섰다. 감염 뒤 완치자는 9155만 명에 이른다. 많은 나라에서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바이러스 기세는 수그러들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친구를 잃었고, 어른들은 일상을 잃었으며, 세계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많은 나라에서 2020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실업률 1% 높아지자 첫 10년 수입은 2.6% 감소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팬데믹 사태의 사회·경제적 파장은 계층과 빈부 격차를 아프게 파고든다. 고등교육을 마치고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체감하는 고용난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특히 심각하다. 경제활동의 주력층이자 한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2030세대가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현실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악영향으로 이어진다. 이는 1997년 우리가 겪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당시의 고용 악화와 파급 효과를 20년 뒤까지 추적 분석한 실증연구로 뒷받침된다.

2020년 2월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업존고용연구소는 ‘불황 속 노동시장 진입의 장기적 영향: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도출한 증거’라는 조사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경제 위축을 경험한 한국의 사례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우리나라는 기업의 무분별한 차입과 은행 부실, 정경유착이 맞물리면서 나랏빚이 급증했다. 졸지에 IMF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 국제 금융기관과 외국에서 총 550억달러의 외환을 긴급 수혈받은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구제금융의 대가는 혹독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강요당하면서 기업 파산이 잇따르고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극심한 경제 불황은 20대 청년에게 직격탄이 됐다.

업존고용연구서는 조사 보고서에서, 대규모 불황기에 취업난을 겪은 대학 졸업자들이 이후 길게는 12년까지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고용·수입 감소에 시달리고, 자산 형성이 늦어졌으며, 가족 구성에도 영향받았다고 분석했다. 대학 졸업 시점에 실업률이 1%만 높아져도 청년 남성의 취업률이 1.9%, 첫 10년 동안 수입이 2.6% 줄었다. 결혼율과 출산율은 각각 3% 안팎 감소했다. “남성 미혼 청년들이 생계비를 아끼려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한 사례도 늘었다. 여성 역시 취업률과 수입이 급감하면서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남성을 배우자로 찾는 경향이 커졌다. 그 결과 첫 출산 시기가 0.36년 빨라지고 합계출산도 0.05명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보고서는 특히 대규모 불황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 세대의 고용과 수입 감소가 생애 전반에 악영향을 준 사실에 주목했다. 이른바 ‘상흔효과’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코로나19 대유행이 강요한 ‘록다운(Lockdown·집회와 이동의 제한)과 기업활동 위축, 그에 따른 경제 불황이 전세계 청년 세대에 또다시 암운을 드리웠다. 이들에겐 ‘록다운 세대’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이 붙었다. 2020년 5월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와 세계의 노동’이라는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청년들이 코로나19 위기로 불균형한(더 가혹한) 영향을 받는다”고 짚었다. 코로나19 위기가 지속하는 동안 “청년 실업이 (윗세대와 견줘) 더 빠르고 큰 규모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된 뒤 전세계 젊은이(18~29살) 중 17.1%가 경제활동을 중단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제활동을 하던 젊은이 6명 중 1명이 ‘코로나19 실업자’가 된 셈이다. 2020년 상반기 한때 캐나다에선 16~24살 남성의 실업률이 무려 27.1%까지 치솟았으며, 미국도 24%로 급증했다. “청년 실업의 차별적 증가는 한국, 중국, 네덜란드, 스위스 등 다른 경제 대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세계 1억7800만 명 록다운 취약산업에 종사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의 질 저하, 직업훈련 실종도 청년 세대의 수입 감소에 큰 몫을 한다. ILO는 2020년 2분기 세계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이 10.7% 줄어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주 48시간 정규직 일자리 3억500만 개에 해당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한 시점에 세계에서 청년 1억7800만 명이 록다운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큰 취약산업 부문에 종사하고 있었다. 청년 세대의 고용난과 비정규직 확대 추세는 바이러스에 더 치명적 충격을 받는 기저질환이었다.

코로나19 봉쇄 조처에 따른 경제 불황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21년 2월 통계청이 발표한 ‘1월 고용동향’을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3월 이후 11개월 연속 취업자 수가 줄었다. 특히 2021년 1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98만2천 명이 줄었다. 이는 IMF 구제금융으로 연명해야 했던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2월(-128만3천 명)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반면 실업률은 5.7%로 21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15~29살 청년 실업률은 9.5%로 전체 연령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이 추세는 코로나19 대유행의 록다운 세대가 20여 년 전 아시아발 금융위기 때 IMF 세대의 ‘상흔효과’를 되풀이해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앞서 본 것처럼, 청년층이 처음 일자리에 진입할 때 취업이 늦어지거나 비정규직 등으로 취업하면, 이후 노동생애에서 임금 손실과 취업·이직 기회 감소 같은 ‘이력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악순환 이어지면 정부도 사회적 비용 급증

서복경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학업에서 취업으로 옮기는) 이행기에 청년 실업이 늘고 장기화할 경우 신기술과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취업준비생들의 교육·훈련이 일치하지 않는 ‘미스 매칭’ 현상이 일어나는 등의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몇 년을 투자한 기회비용을 활용하지 못한 채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하고, 중장년이 되어서도 삶의 질이 당초 기대보다 훨씬 낮아지며, 노후 준비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럴 경우 국가 전체로도 사회보장을 비롯해 사회적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만큼, 지금 당장 적절한 지원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서 교수는 강조했다.

앞서 ILO도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각국 정부에 코로나19 시대 경제위기 대응책으로 “노동자와 기업에 대한 전례 없는 규모의 즉각 지원”을 촉구했다. ILO는 △적극적 재정을 통한 경제와 고용 촉진 △세제·금융 혜택을 통한 기업과 일자리 지원 △유급휴가와 고용안정 등을 통한 노동자 보호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해법 마련 등 4대 정책 프레임을 제시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1353호 표지이야기 - 여행업계 청년 코로나 실업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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