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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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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클로버] 누나 걱정하던 동생의 진심

너무 일찍 철든 동생, 나이답게 짜증 내고 투정 부리렴
등록 2020-11-07 23:57 수정 2020-11-10 09:08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지난여름 어느 일요일이었던 것 같다. 날은 눅눅하고 더웠고 책상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내 뒤 침대에 남동생이 누워 뒹굴고 있었다. 나보다 7살 어려 지난달 10살 생일을 맞은 남동생은 내가 다른 일을 하느라 관심을 못 쏟아도 내 뒤에서 종종 시간을 보낸다. 뒤에 동생이 있으면 일에 집중은 덜 돼도 외롭지 않다. “누나 누나” 몇 번쯤 의미 없이 부른 뒤, 자기 생각을 종알종알 늘어놓는다. 친구들과 오늘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 가장 좋아하는 팽이 장난감에 대한 설명…, ‘누난 이거랑 이거 중 뭐가 더 좋아?’라는 질문들이 수학 문제를 푸는 내 귀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 내 심장을 덜컥, 아래로 잡아끄는 말이 나왔다.

“누나, 나는 사실 누나가 아픈 게 좀 싫었다.”

아무리 다른 일을 하느라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라 천천히 되물었다. “왜? 왜 누나가 아픈 게 싫었어?”

동생은 우물거리다가 대답했다. “나는 누나가 아파 엄마가 병원에서 자는 거랑 누나가 집에 있을 때 내 친구들이 집에 못 놀러 오는 게 싫었어.”

자가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두 달에 한 번씩 주사로도 맞고 있다.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항체가 거의 생기지 않을 거라고 해서 독감백신도 맞지 않았다. 동생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지 못하게 한 건, 불특정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감염병 탓에 면역력 문제에 특히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난해부터 총 세 번 입원했고 오전에는 아빠가, 밤에는 퇴근한 엄마가 내 곁을 지켰다. 형제자매가 많은 나는 부모님 관심을 그렇게 독차지할 일이 잘 없었다. 부모님이 종일 내 옆을 떠나지 않는 게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관심이 내게 쏟아지는 일이 싫지만은 않았다. 집에 남겨진, 당시 고3이던 언니와 아직 한참 어린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병 때문에 내가 힘든 게 많아서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니나 동생이, 아픈 나를 원망할까봐 겁이 났다.

지난해부터 정신없이 이어진 내 병 때문에 생긴 변화에 동생이 큰 영향을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직접 불평을 이야기하는 횟수가 많아진 건 최근 일이다. 다정한 아이라서, 스스로 느끼는 불편함을 말하기에 앞서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약 부작용으로 부어서 겉모습이 한창 바뀔 때, 내가 “누나 부어서 낯설지?” 하고 묻자 동생은 “아니! 나는 누나 부은 게 귀엽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진단 초기 과호흡 증상으로 모두를 당황하게 했을 때는 용돈을 모아서 누나에게 산소캔을 사주겠다고 했다. 고맙고 기꺼우면서도 어린 동생이 자기보다 누나를 걱정하게 된 것이 미안해서 그 말이,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라도 동생이 솔직해져서, 나이답게 짜증 내고 투정을 부려서 다행이다. 칭얼거리는 게 귀찮을 때도 분명 있지만 너무 일찍 철든 동생을 보는 일은 슬프니까.

내가 아픈 게 싫었다는 동생에게 그날 나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잘못도 아니고,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의식적으로 사과하는 일을 줄이려고 한다. 배려받는 상황이 미안하다기보다는 고마운 일로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나에게 생긴 일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는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미안해해야 했을까. 그냥 “그랬구나.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겠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여덟 살 때 처음 만났던 가무잡잡하고 쫄깃한 피부를 가진 내 동생. 나와 언니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려준 그 아이가 향기롭고 생생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너는 너답게, 나이답게, 그렇게 가장 멋지게.

신채윤 고1 학생

*‘노랑클로버’는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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