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지난여름 어느 일요일이었던 것 같다. 날은 눅눅하고 더웠고 책상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내 뒤 침대에 남동생이 누워 뒹굴고 있었다. 나보다 7살 어려 지난달 10살 생일을 맞은 남동생은 내가 다른 일을 하느라 관심을 못 쏟아도 내 뒤에서 종종 시간을 보낸다. 뒤에 동생이 있으면 일에 집중은 덜 돼도 외롭지 않다. “누나 누나” 몇 번쯤 의미 없이 부른 뒤, 자기 생각을 종알종알 늘어놓는다. 친구들과 오늘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 가장 좋아하는 팽이 장난감에 대한 설명…, ‘누난 이거랑 이거 중 뭐가 더 좋아?’라는 질문들이 수학 문제를 푸는 내 귀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 내 심장을 덜컥, 아래로 잡아끄는 말이 나왔다.
“누나, 나는 사실 누나가 아픈 게 좀 싫었다.”
아무리 다른 일을 하느라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라 천천히 되물었다. “왜? 왜 누나가 아픈 게 싫었어?”
동생은 우물거리다가 대답했다. “나는 누나가 아파 엄마가 병원에서 자는 거랑 누나가 집에 있을 때 내 친구들이 집에 못 놀러 오는 게 싫었어.”
자가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두 달에 한 번씩 주사로도 맞고 있다.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항체가 거의 생기지 않을 거라고 해서 독감백신도 맞지 않았다. 동생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지 못하게 한 건, 불특정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감염병 탓에 면역력 문제에 특히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난해부터 총 세 번 입원했고 오전에는 아빠가, 밤에는 퇴근한 엄마가 내 곁을 지켰다. 형제자매가 많은 나는 부모님 관심을 그렇게 독차지할 일이 잘 없었다. 부모님이 종일 내 옆을 떠나지 않는 게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관심이 내게 쏟아지는 일이 싫지만은 않았다. 집에 남겨진, 당시 고3이던 언니와 아직 한참 어린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병 때문에 내가 힘든 게 많아서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니나 동생이, 아픈 나를 원망할까봐 겁이 났다.
지난해부터 정신없이 이어진 내 병 때문에 생긴 변화에 동생이 큰 영향을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직접 불평을 이야기하는 횟수가 많아진 건 최근 일이다. 다정한 아이라서, 스스로 느끼는 불편함을 말하기에 앞서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약 부작용으로 부어서 겉모습이 한창 바뀔 때, 내가 “누나 부어서 낯설지?” 하고 묻자 동생은 “아니! 나는 누나 부은 게 귀엽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진단 초기 과호흡 증상으로 모두를 당황하게 했을 때는 용돈을 모아서 누나에게 산소캔을 사주겠다고 했다. 고맙고 기꺼우면서도 어린 동생이 자기보다 누나를 걱정하게 된 것이 미안해서 그 말이,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라도 동생이 솔직해져서, 나이답게 짜증 내고 투정을 부려서 다행이다. 칭얼거리는 게 귀찮을 때도 분명 있지만 너무 일찍 철든 동생을 보는 일은 슬프니까.
내가 아픈 게 싫었다는 동생에게 그날 나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잘못도 아니고,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의식적으로 사과하는 일을 줄이려고 한다. 배려받는 상황이 미안하다기보다는 고마운 일로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나에게 생긴 일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는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미안해해야 했을까. 그냥 “그랬구나.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겠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여덟 살 때 처음 만났던 가무잡잡하고 쫄깃한 피부를 가진 내 동생. 나와 언니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려준 그 아이가 향기롭고 생생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너는 너답게, 나이답게, 그렇게 가장 멋지게.
신채윤 고1 학생
*‘노랑클로버’는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장동혁에 발끈한 전한길, 야밤 탈당 대소동 “윤석열 변호인단이 말려”

김어준 방송 ‘정부-검찰 공소취소 거래설’에…민주 “황당함, 기 막혀”
![[영상] 트럼프 “기뢰선 10척 완파”…CBS “이란 최대 6천개 보유” [영상] 트럼프 “기뢰선 10척 완파”…CBS “이란 최대 6천개 보유”](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311/53_17731951174124_1517731949679662.jpg)
[영상] 트럼프 “기뢰선 10척 완파”…CBS “이란 최대 6천개 보유”

‘친윤’ 김민수 “장동혁 ‘절윤 결의문’ 논의 사실 아냐…시간 달라 읍소했다”

한국 사회와 자존심 싸움…쿠팡 김범석은 ‘필패’ 한다

이란 안보수장 “트럼프, 제거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비밀 경호원이랑 왔어” 전쟁 잊은 트럼프 손녀, 초고가 마트 쇼핑

장동혁, 절윤 결의문이 “국힘 입장”이라면서…인적쇄신 질문엔 침묵

트럼프, ‘이란 종전’ 기준 낮췄나…‘정권 붕괴→군사력 약화’에 무게

트럼프 ‘종전’ 말하지만…전문가들 “이란 전쟁, 장기 소모전 될 것”

![길 뒤의 길, 글 뒤에 글 [노랑클로버-마지막회]](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child/2023/0212/53_16762087769399_2023020350002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