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더 무서워지는 세상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연쇄 감염은 2차 대유행의 현실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8월27일)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격상은 논쟁의 영역에 있다. 코로나19 종식의 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수준의 봉쇄를 감행할 경우 경제 파탄으로 이어져 이중적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감염 확산을 그저 내버려둘 수도 없다. 어떻게 보면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의 문제 같기도 하다. 방역과 경제의 제로섬게임은 어느 나라도 피해가지 못한 딜레마이다. ‘K방역’으로 이 딜레마를 극복하고 있다고 봤으나 이젠 그렇게 말하기도 어려워졌다.
의사들의 진료 거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처음에 사람들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의 정치적 편향이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간다고 봤지만,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강경론을 주도한 것은 의협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역 근무를 강제하더라도 10년을 채우고 나면 비급여 진료가 가능한 과목으로 수도권에서 개업하는 등 민간으로 흡수되는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의사들의 주장은 타당하다. 의사들의 진료 거부가 부당하다고 보는 의료단체들도 이 대목에선 같은 의견이다. 이들의 대안은 공공병원 확충과 교육 수련 환경의 질적 향상이다. 지역의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의사에게도 미래가 있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병원을 더 만들거나 여건을 개선하는 일에 정부가 소극적 태도를 보여온 것은 사실이다. 홍준표 의원이 경남도지사 시절 진주의료원을 폐업시킨 것에서 보듯 돈이 들어가는 공공의료는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서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이건 돈이 된다”고 할 수 있어야 그나마 뭐라도 된다. 지자체들이 공공병원보다 의대 신설과 정원 확대에 더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이번 대책에 포함된 의과학자 양성이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등 일부 산업을 위한 것이라고 본다. 정부가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의지가 실려 있다. ‘K방역’의 진단키트 수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 ‘돈이 돼야 한다’는 전제를 바꾸지 않으면 공공의료 중심의 시스템 변화는 어려울 것이다.
일부 전공의와 의대생의 강경한 태도는 이런 세계관을 내면화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수험 생활과 혹독한 수련 기간은 밝은 내일을 위한 ‘투자’이고, 부와 명예를 추구할 수 있는 ‘자격’이다. 정부 정책은 이 ‘투자’ 효과를 반감하고 ‘자격’의 희소성을 흐린다. 사직서 제출과 국시 응시 취소로 정부 정책에 항의하고 의대생 선발에 지자체장이나 시민단체가 관여할 수 있다는 우려에 특히 민감한 건 이런 세계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팩트체크 카드 뉴스’는 이해 못할 내용(공공 의대 후보 학생 추천은 전문가·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시도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진행)이지만 사태의 핵심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이해관계를 달리하지만 같은 세계관 위에 선 이들이 잠복해 있던 체제의 균열을 드러낸 걸 목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의사협회는 4월 코로나19 사태에 민간병원이 많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칼럼을 <한겨레>에 쓴 김윤 교수를 징계하려고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돌발적인 일이 아니었던 거다. 스스로 세계관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정치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뉴노멀의 시대라면 더 그렇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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