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30분에 울리는 알람을 듣는다. 눈에 점안약을 떨어뜨린다. 세수하고 아침을 먹는다.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메고 방을 나선다. 도착지는 와이파이가 잘 뜨는 서재다.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세팅하고, 수업에 접속한다.
초등학생 때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에서 그렸던 ‘미래의 학교’는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온라인 개학을 했고, 나는 사이버 고등학교 학생이 되었다. EBS 강의를 활용하는 다른 많은 고등학교와 달리 우리 학교는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한 쌍방향 소통 수업을 한다. 노트북 카메라를 통해 내 모습이 비디오로 송출되고, 다른 친구들 모습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선생님 수업을 듣는다.
내 얼굴을 보며 수업하는 건 기이한 경험이다. 거울을 계속 보면서 수업하는 것과 같다. 김영하 작가의 산문 <여행의 이유>를 보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것을 회고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는 본인이 나오는 촬영분을 시청하면서 ‘여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삼인칭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아주 낯선 것으로 표현한다.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예상치 못하게 찍힌 자기 모습을 처음 보는 그 경험을. 내 경우, 원하는 각도에서 찍을 수 있는 셀프 카메라라는 점에서 삼인칭보다는 일인칭 시점으로 나를 지켜보니 김영하 작가의 경험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내가 보는 나’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경험은 나에게도 새롭고 무척이나 낯설다. 선택적이고 제한된 내 모습을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공유하는 것.
그래서 한편으로 ‘온라인 학교’는 내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현장보다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여유를 가지고 말이다. 학기 시작이니만큼 여러 번의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함’에 균열을 만들 게 확실한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주변인에게 내 병을 알리고 그들의 배려를 받아야 한다. 온라인으로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 언제 알려야 할지 시기를 재고 있었다. 우습지만, 나는 친구들을 두 번째 마주할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오히려 더 눈에 띄게 될 것을 알았지만, 마스크를 벗고 민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병을 드러내는 것과 동의어로 느껴졌다. 그런데 마스크 쓰는 게 너무 답답하기도 했고, 이 친구들은 복용하는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붓기 전의 내 모습을 모른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세 번째 자기소개 때 나는 마스크를 벗고, 나의 다른 특징들을 소개하듯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웹툰을 즐겨 본다는 것을 말하듯이- 나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오픈’했다.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병을 진단받고, 약을 먹고, 모습이 변해가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던 중학교 친구들에게 먼저 메신저로 응원을 부탁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하냐, 파이팅!” 등의 대답이 돌아왔다. 태연하고 진심 어린, 고마운 작은 격려를 모아서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서 내 이야기를 꺼내는 원동력으로 썼다.
새 고등학교 친구들은 “힘내!” 등의 반응을 보였다.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극적인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상보다 평범하고 무난한 반응에 묘한 허탈감이 들었다.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몰라 잔뜩 몸을 부풀린 채 경계 태세를 취하다가, 사실 그것이 지나가는 사람의 무해한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걸 알아버린 길고양이가 된 기분. 병을 진단받고 가장 걱정했던 것이 혹시라도 사람들이 ‘아픈 사람’ 이미지에 가려서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봐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 가능성을 가장 먼저 재단해버린 게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게도.
온라인 개학은 분명히 온전한 개학이 아니다. 나는 등교 수업을 간절히 기다린다. 몸이 힘들겠지만, 배려의 절실함을 느끼겠지만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배움을 흡수하는 날것의 공기가 그립다.
신채윤 학생
*‘노랑클로버’는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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