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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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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고?

나조차 내가 낯설어 쓰는 마스크
등록 2020-02-08 15:59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외출하기 전, 거울을 보기 전에 분홍색 마스크를 끼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된 지 두 달이 넘었다. 원래는 병원에서 갓 탈출한 환자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마스크였는데, 엄마가 “간호사 얼굴에 뽀샤시가 탑재됩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흥미로워하면서 분홍색 마스크로 바꿔 주문해주셨다. 이 마스크는 기본적인 ‘뽀샤시 탑재’ 외에 두 가지나 더 되는 효과가 있다. 다카야스동맥염 때문에 고용량 복용하는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 두 가지에 적용되는 효과다.

먼저 약해진 면역력의 대비책이다. 스테로이드제 때문에 면역력이 많이 약해졌다. 감기를 일주일 이상 앓아본 적 없는 나인데, 11월 중순 찾아온 가벼운 감기로 3주 동안 고생했다. 마지막에는 장염을 동반해서 화장실과의 내적 친밀도를 높이도록 도와주었다. 병으로 약해진 몸에다 복용 중인 스테로이드제에도 면역력 저하 부작용이 있으니, 한번 감기에 걸리면 고생은 예약된 수순이다. 마스크를 써서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나조차 낯설도록 부은 얼굴을 감춰주는 역할이다. 이 역시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인데, 얼굴과 온몸의 세포가 수분을 잔뜩 머금어서 퉁퉁하니 부풀어올랐다. 이마에도, 관자놀이에도, 볼과 턱에도 굳은 떡 같은 감촉의 낯선 살들이 붙었다.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에 나오는 무타 고양이가 생각나는 얼굴로 바뀌었다. 사실 외면적인 변화를 가장 낯설고 불편해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내가 그것을 의식하는 티를 낼 때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반응이 따라붙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도저히 거울 속 나를 멀쩡하게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누구세요?’ 하고 묻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시선을 아래쪽으로 떨어뜨리게 된다. 부은 얼굴이 못생겨서 싫은 게 아니라, 원치 않는 가면을 쓴 듯한 상황이 낯선 거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 유행하는 옷차림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신경 써서 직접 찾아 입는 친구가 확실히 늘어났다. 패션 아이템의 하나로 마스크를 쓰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주로 검은색, 얼굴의 반을 다 가리도록 큰 마스크를 사서 쓴다. 두 볼이 얼 만큼 날씨가 춥지 않아도, 기침하지 않아도 마스크를 꼭꼭 챙겨 쓰는 친구들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한 적이 많았다. 사춘기, 너와 나의 겉모습에 예민한 시기에 떨어지는 자존감, 마스크 뒤에 숨어서 자신이 감추어졌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 건가, 하고 지레짐작한 뒤 스스로의 냉철한 통찰력에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탄한 적도 있었다.

마스크를 긴 시간 동안 착용하면서 이제는 내 외형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는 요즘이다. 어떤 어른들은 나에게 다가와서 마스크를 벗으라며,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사랑할 줄 알아야지!” 하고 ‘진심 어린 애정이 담긴 인생의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마스크를 쓰는 것에 현재 내 모습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회피의 마음도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나에게 그 조언이 따스한 감동으로 와닿진 않았다. 그 말을 꺼낸 이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자기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하는 것’처럼 큰 용기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을 왜 오롯이 나에게 맡겨두지 않고 외부에서 함부로 왈가왈부하는가, 하는 원망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마스크를 쓰는 모습을 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쟤는 낮은 자존감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지, 하며 섣불리 헤집어 판단하려고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무지하고 배려가 부족했던 내 생각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신채윤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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