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4일 한국 대통령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시도와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 통과 사실을 대대적으로 다룬 신문이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가판대에 빼곡하다. 연합뉴스
2024년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이 일으킨 ‘친위쿠데타’는 전세계로 생중계됐다. 중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창을 깨고 국회로 진입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타전됐다. ‘한국 같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계엄령이라니….’ 지구촌이 함께 경악했다. 연세대 교수를 지낸 존 델러리 이탈리아 존캐벗대학 방문교수는 2025년 1월27일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어페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이 자기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했다. (…) 정치 이론가 카를 슈미트의 ‘예외 상태’ 개념을 빌려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전복시키는 것이 곧 이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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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당 당원이자 핵심 법률가였던 슈미트는 나치 패망 뒤 수감 생활을 거쳐 석방된 뒤에도 독일 사회의 ‘탈나치화’ 작업을 비난하며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예외 상태’는 곧 아돌프 히틀러의 종신 집권을 위한 명분이었다. 21세기 한국에서 대통령 윤석열은 무엇을 꿈꾼 것인가?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 결의와 거리를 물들인 찬란한 응원봉 시위는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새삼 확인시켰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12월4일 “짧게 끝난 한국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정치적 전환의 모델로 추앙받던 나라에서조차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전세계에 보여준 경고”라며 “한국의 정치적 격변은 지구촌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함께 그 뛰어난 복원력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짚었다.
계엄은 해제됐고, 대통령은 탄핵소추됐다.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탄핵소추 당한 대통령은 수사를 거부했다. 경호원을 동원해 체포 시도도 막아냈다. 2025년 1월15일 탄핵소추 당한 대통령이 마침내 내란죄로 체포됐을 때 전세계의 눈과 귀가 다시 한국으로 쏠렸다. 그야말로 ‘케이(K)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월15일치 기사에서 “대통령 체포로 한국에서 지속돼온 당황스러운 대치 국면은 마무리됐다”며 “하지만 드라마의 마지막 회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썼다.
과연 그랬다. 체포된 대통령이 구속되자 폭도들이 법원을 유린했다. 때마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이 다가왔다. 집권당 의원들이 너나없이 미국을 향했다. 거리에서 ‘스톱 더 스틸’(도둑질을 멈춰라) 구호가 난무했다.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의 모든 권력이 무너졌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극우집단이 퍼뜨린 음모론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며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어떻게든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해 헌법재판소가 탄핵 사건을 기각하도록 만들 것이란 주장”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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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성 불면의 밤’은 계속됐다. 3월8일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과 검찰의 항고 포기로 구치소에 수감됐던 대통령이 석방돼 관저로 돌아갔다. 헌법재판소는 최종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에이든 포스터카터 영국 리즈대학 선임연구원은 3월12일 닛케이아시아에 보낸 기고문에서 “윤석열이 ‘브랜드 코리아’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탄핵당한 대통령이 한국의 명성을 산산조각 내고, 정치권에 독극물을 풀었다”라고 썼다.
“한국이 (계엄령 선포 전날인) 12월2일보다 나아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라 안팎을 막론하고 대통령 윤석열이 끼친 해악은 극심하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 탄핵당한 대통령 탓에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망가졌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대됐던 한국은 정식 회원국을 꿈꿨다. 다들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지난해엔 초대받지 못했고, 이제 대통령 윤석열 탓에 다시 초대받기조차 난망해졌다.”
국가적 위상 실추는 지표로도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2월27일 발표한 연례 민주주의 지수 결과 한국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전락했다. 포스터카터 연구원은 “앞서 탄핵됐던 대통령 박근혜와 달리 윤석열은 침묵하는 대신 반항하며 반성하지도 않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정치판이 새롭고도 불길한 방식으로 극단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앞서 외교·안보 전문매체 디플로맷도 3월7일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는 나쁜 일이었지만, 이후 그가 보인 행태는 더욱 나쁘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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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탄핵안을 성공적으로 통과시켰을 때, 한국인들은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가고 민주적 국가란 지위를 회복할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김씨 일가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북한과 한국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한국 사회는 정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소추 뒤에도 일상을 되찾지 못했다. 탄핵소추 당한 대통령은 반성할 줄 몰랐다.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 우두머리는 어느새 불의하게 핍박당한 순교자 행세를 하고 있다. 반역의 역풍이 갈수록 거세진다. 디플로맷은 “한국 사회가 극단적인 분열 상태로 치닫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대통령 윤석열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라며 “되레 변호사를 통해 편지를 공개하거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진술 등의 기회를 통해 극단적으로 극우세력을 선동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 매체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이 극우세력과 대통령 윤석열의 열혈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극단주의의 물결에 직면한 건 분명해 보인다. 이들 극단주의자는 이미 한국의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 여론을 조작해 영구적으로 권력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한국에서 벌어져선 안 된다. 한국은 평범한 시민들이 핏빛 희생을 통해 공고한 민주주의 체제를 일군 나라이기 때문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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