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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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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당신을 모욕할 때

모욕당할까 두려워 모욕하는 사람들,

그 뒤에 숨은 미친 법칙
등록 2018-12-28 14:14 수정 2020-05-02 04:29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이 양반이!” 1시간째 기다리는 중이었다. 10여 년 전엔 미국에 관광만 가려 해도 대사관에서 비자 발급용 인터뷰를 해야 했다. 기다리는 줄이 미국대사관 담을 둘렀다. 온갖 서류 다 내고 약속을 잡아도 그랬다. 학다리로 서 한쪽 발로 종아리를 찼다. 사람들 얼굴에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한 아저씨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나보다. 끼어들려다 뒤에 선 아저씨 심기를 건드렸다. 모든 논쟁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너 몇 살이냐”까지 갔다. 멱살잡이를 몇 번 한 뒤 끼어든 아저씨가 몸통 반쪽을 줄에 밀어넣었다. 쌍욕을 나누고 싸움은 흐지부지 끝났다.

왜 우리는 쌍욕을 나누었을까

주야장천 기다렸는데 인터뷰는 5분도 안 돼 끝났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영사가 앞에 앉았다. 불법체류 할지 말지 관상이라도 볼 줄 아는 걸까? 애초에 왜 줄을 서야 했나? 두 아저씨 성질이 더러워 드잡이까지 벌인 걸까? 아니면 그 줄을 섰던 모두, 제도에 모욕당하고 서로에게 화풀이를 해댔던 걸까? 관광비자 인터뷰가 없어지자 미국대사관 옆에 늘어섰던 줄도 사라졌다.

‘그때 그렇게 말해줄걸.’ 여전히 곱씹는 모멸감이 있다. 다 지난 일에 손톱을 바짝 세운다. 사소한 기억인데 떨어지지 않는다. 옛 직장에 주차장이 없어 옆 아파트에 몰래 차를 댔다. 옆구리에 긴 상처가 난 늙은 소 같은 차다. 야근에 회식에 며칠을 잊다 가보니 자동차 바퀴를 사슬로 감아뒀다. 입주민 대표가 사과를 받으러 나왔다. 보기만 해도 기가 죽는다. 위아래로 나를 훑는 눈길이 느껴졌다.

“차에 붙은 거 보니까, ○○동 살던데….” 그 순간 내 마음속 풍경이 ‘불법 주차 가해자’에서 ‘거주지 차별 피해자’로 바뀌었다. ‘동네는 왜 물어. 자기보다 없이 산다고 얕보나. 대치동, 신사동 이런 데 딱지 붙어 있으면 이 사람이 날 이렇게 대할까?’ 자가발전 중이다. 내 마음에 거주지에 따른 순위가 자리잡고 그에 따라 입주민 대표의 반응을 내 맘대로 해석했다고 인정한다. 그러니 이 모멸감의 책임은 내가 져야 할 거다. 내 꼬라지가 그렇다. 그런데 정말, 이 모멸감의 책임은 내게만 있나? 내가 어디 주민이건 입주자 대표의 반응이 같았을까? 나는 그걸 믿을 수 없다.

일상이 신분의 전쟁터 같을 때가 있다. 사소하고 짧은 순간에 신분의 증표를 꺼내들어 권력관계를 확인한다. 모욕은 그 수단이다. 회사에선 ‘참조’(CC)에도 정치가 있다. “이게 예의가 없는 거야?” 친구가 울먹였다. 학교 후배가 타 부서 상관이 됐다. 업무 당사자가 아니기에 참조로 전자우편을 보냈다 한 소리 들었다. 직접 보고하지 않았다고 자기를 무시하느냐 성질을 부렸단다. 응당 받을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거다. 누가 누구를 모욕하고 있나. ‘모욕의 전투장’에서 확인하고 싶은 것은 권력의 순위다.

방어하기 위해 공격하는 사람들

언제 어떻게 모멸감의 화살이 날아올지 몰라 불안한 사람이, 자존감이라고는 통장 잔고만큼 부족한 나만은 아니다. 등 2018년 잘나간 책들 제목을 보면 그렇다. 모욕에 맞서는 실전 기술을 쌓거나, 찔러도 하나 안 아플 만큼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키우거나, 베스트셀러가 된 곰돌이 푸 시리즈에서 ‘다 괜찮다’고 위로를 받으며 모멸감과 불안의 지뢰밭을 건너는 중이다. 그런데 나만, 우리 각자 그렇게 수련하면 행복해지는 걸까?

김승섭의 에 소득불평등과 ‘지위 불안’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리처드 레이트 교수의 연구 결과가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내 직업이나 소득 때문에 나를 무시한다”는 질문에 응답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에 1점, ‘매우 그렇다’엔 5점을 줬다. 유럽 31개국 3만4천 명에게 설문해보니, 소득불평등이 높은 나라일수록 ‘지위 불안’이 높았다. “소득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일수록, 상대방이 나를 무시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에 나온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득불평등 정도가 높은 나라 사람일수록 남이 나를 이용할 거라는 의심이 크고 상대를 신뢰하지 않았다. 프랭크 엘가 교수가 발표한 연구에선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나라일수록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늘어났다. 한국은 어떨까? 소득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1990년 0.256에서 2016년 0.278로 커졌다. 한국노동연구원 홍민기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소득 상위 10% 소득집중도가 1965년 19.8%에서 2016년 45.5%까지 늘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42%, 영국 39.1%, 프랑스는 30.5%다.(김승섭 에서 인용)

모욕은 어쩌면 자기 불안을 감추는 수단인지도 모른다. 내가 너보다 높은 신분임을 매 순간 확인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 아닐까. 왜냐면, 이곳에선 ‘신분’에 따라 ‘목숨’도 모욕당하기 때문이다. 2016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비정규직 청년이 숨지고,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제도가 모욕하는 이곳에서 내 자존감만 키우면 나는 괜찮아지는 걸까? 전 국민이 도가 터 공중부양이라도 해야 모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미친 세상, 레벨업은 답이 아니다

tvN 드라마 속 주인공 진우는 증강현실 게임에 강제 로그인돼 일생의 적이자 친구인 형석을 죽이고 또 죽여야 한다. 아니면 자기가 죽는다. “그만하면 안 될까” 하소연해도 소용없다. 게임 속 형석은 나타나고 또 나타나니까. “미친 사람에게도 논리가 있고 미친 세상에도 법칙이 있어.” 진우는 그 법칙대로 게임 속 레벨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택한다. 고수가 돼 총을 쥐니 형석이 나타나도 무섭지 않지만, 여전히 술과 약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삶이다.

모멸감 지뢰가 깔린 세상으로 우리도 강제 로그인된다. 죽도록 아이템을 끌어모아 레벨업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내공을 쌓아 ‘그까짓 모욕쯤이야 네 입만 더럽지’라며 자존감 만렙(최대 레벨)으로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형석’은 또 나오고 나온다. 우리가 게임의 법칙을 바꿀 때까지.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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