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1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옆 은행나무의 수관 상당 부분이 갈색으로 변해 있다. 주변 나무들이 초록을 유지한 것과 달리, 이 은행나무는 가지 끝 잎들이 마른 채 매달려 있다.
미술관 옆에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한 사실이 드러나 거센 비판을 받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이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주민 민원과 행정 절차 탓만 앞세운 변명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환기미술관은 2026년 6월1일 저녁 미술관 담벼락과 누리집에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미술관은 “은행나무와 관련하여 부암동과 환기미술관을 아끼는 분들께 심려를 끼쳐 깊이 사과드린다”며 “은행나무의 회복과 포괄적인 관련 상황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필요한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다각도로 접근하는 과정 중이니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겨레는 5월23일 환기미술관 쪽이 이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한 사실이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을 통해 확인됐고, 최근까지 건강했던 해당 은행나무에서 누렇게 변한 잎이 대량으로 떨어지는 등 급격한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후 인근 주민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거센 비판이 제기되자 보도가 나간지 8일 만에 사과문을 게재한 것이다.
미술관은 사과문에서 10여 년 전부터 은행나무와 관련한 안전 민원이 있었고, 나무뿌리가 도로 위로 튀어나와 주민 통행 때 안전사고 가능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2018년 7월에도 태풍·폭설 때 나무가 크게 휘청거리거나 낙엽·악취 문제가 생겨 민원이 계속 접수됐고, 나무뿌리 때문에 미술관 담장이 훼손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 당시 14명이던 토지 소유주가 2025년에는 45명으로 늘어났고, 이들에게 개별 연락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2026년 6월1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옆 은행나무의 수관 상당 부분이 갈색으로 변해 있다. 주변 나무들이 초록을 유지한 것과 달리, 이 은행나무는 가지 끝 잎들이 마른 채 매달려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환기미술관의 사과문 내용이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민 민원, 구청 절차, 소유주 연락 난항 사실은 길게 설명했지만, 정작 나무를 죽이려 한 행위에 대한 명확한 인정과 약제명 공개, 치료 협조, 주민 공동체에 대한 직접 사과는 빠져 있어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책임을 흐리고 있다고 얘기다.
부암동 주민 54명이 참여한 단체대화방에서 주민 ㄱ씨는 “환기미술관 말이 사실이라면 부암동에서 오래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설사 주민 민원이 있다고 해도 나무를 죽이는 것만 ‘해결책’이 된다는 식이다.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ㄴ씨도 “이 정도 수령의 은행나무를 제거하려 했다면 주민들과 소통하거나 주민센터를 통해 주민회의라도 거치는 절차가 있었어야 했다”고 했다. 주민 홍세진씨는 “미술관은 주민들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하지만, 정작 주민들에게 설명하거나 함께 논의하려 한 적은 없었다”며 “공동체와 상의하지 않고 나무를 죽이는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나무를 죽이려고 독극물을 주입한 것이 핵심인데, 사과문에는 그 행위에 대한 명확한 인정도, 무엇을 얼마나 넣었는지도 없다”고 했다.
환기미술관은 사과문에서 “부암동 주민 및 대규모 사용자가 내왕하는 대중시설 기관으로서 중대한 안전사고가 야기될 심각한 문제 현황을 인지하고도 (관할 행정기관 및 소유주와의 소통 등) ‘절차상의 난관’ 때문에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설명은 구청 쪽 설명과 배치된다. 종로구청 도시녹지과 담당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2025년 12월 나무의사 등 전문가들과 현장을 확인한 결과 은행나무와 담벼락 훼손 사이의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미술관 쪽과 구청이 소통한 적이 없다. 현장을 확인한 것도 토지 소유주 쪽에서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구청에 물어보기라도 했다면 제대로 설명했을 테고, 이렇게 제초제를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초제 피해를 입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옆 은행나무에 주민들이 손말을 세워두었다.
미술관 사과문에 적힌 ‘악취’ 주장도 논란이다.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전문위원은 “이 은행나무는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나무”라며 “열매도 없는데 악취를 문제 삼은 것은 사실관계부터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은행나무 악취는 주로 암나무 열매의 외종피에서 나는 냄새인데, 문제의 은행나무는 수나무라 열매 악취와 연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 전문위원은 “제초제를 투입해 나무를 죽이려고 한 행위에 관한 반성은커녕 제초제 투입 사실 언급조차 없다”며 “이를 비판하는 주민들에 대한 사과도 없고, 주민 민원에 의한 조치였다는 기만적인 변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골든타임을 넘어서고 있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제초제의 성분과 투입량 정보 공개를 요청했는데 이를 밝히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설명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말했다.
국가유산수리기술자인 우종영 나무의사가 서울환경연합 의뢰로 5월26일 작성한 진단서에는 이 은행나무가 제초제로 의심되는 독극물 피해를 입었고, 전체 잎의 90% 가까이가 탈색 또는 변색됐다고 적혀 있다. 또 나무 밑동 주변에서 천공이 15개 이상 발견됐고, “은행나무를 확실히 고사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독극물 항목은 “미상”으로 남았다. 진단서에는 그 이유로 “가해 주체인 환기미술관에서 밝히지 않음”이라고 적혀 있다.
주민들은 “지금 필요한 것은 미술관의 변명이 아니라 나무를 살릴 수 있는 정보와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글·사진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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