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고, 사업에서 사회적 가치를 따지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돈을 쓰는 일일까, 돈을 버는 일일까? 세계 최대의 낙농제품 생산업체인 다농은 이 질문을 새롭게 실험해보기 시작했다.
기업 사회적책임의 경제 효과2017년 초 주주총회에서 다농은 ‘비콥’(B Corporation) 인증을 받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다. 비콥은 미국의 비영리단체 ‘비랩’(B Lab)이 자체 평가 기준에 따라 사회적책임을 다한다고 인정되는 기업에 주는 일종의 인증 마크로 2007년 시작됐다. 현재 50개국 2천여 기업이 인증에 도전해 비콥으로 인정받았다. 북미 시장의 선도적 아웃도어 의류업체 파타고니아, 미국의 아이스크림 회사 벤앤드제리가 잘 알려진 인증 비콥이며, 다국적기업 유니레버, 브라질의 최대 화장품 회사 나투라, 네덜란드 트리오도스 은행도 비콥 인증을 준비 중이다.
다농은 주주총회에서 공언한 계획을 1년 동안 차근차근 실행했고, 그 결과 2017년 말 현재 자회사 중 4개가 비콥 인증을 받았다. 2017년 4월에는 다농 전체 매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북미 지역 자회사 다농웨이브가 비콥이 되기 위한 법적 구조 전환을 마쳤다. 법적 구조를 바꾸었다는 것은 비콥 인증으로 가기 위한, 되돌릴 수 없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뜻이다. 다농그룹은 2020년까지 전세계 80개 계열사 전부가 비콥 인증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다농그룹 전체가 비콥을 향한 여정을 꾸준히 가는 가운데 올해 2월에는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발표가 있었다. 12개 주요 글로벌 은행이 다농에 제공하는 20억달러(약 2조1600억원) 한도 대출의 이자율을 다농의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실적에 연동해 움직이도록 합의했다는 소식이었다. 풀어 말하자면, 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 긍정적 성과를 거두었고 제3자 기구가 공인하면, 다농은 그만큼 금융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금리가 ESG 성과에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연동되는 대출이 이 정도 규모로 제공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조건에 합의한 12개 은행에는 BNP파리바, 소시에테제네랄, HSBC, 시티은행, JP모건 등 모두들 한 번은 들어봤음직한 글로벌 은행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이런 은행이 이자율 조정에 단순한 선의로 합의했을 리 없다. ESG 측면의 성과가 기업의 장기적 리스크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거래에 깔려 있다. 이 대출 거래를 이끈 BNP파리바 쪽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대출 계약이 지속가능성 측면의 성과가 결국 경제적 성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냐고요? 맞습니다. 이게 바로 은행업의 미래입니다.”
얼마 전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투자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적책임을 다하기를 요구하는 서신을 보내 화제가 됐다. 서신에서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주주만이 아니라 고객, 직원,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의무가 기업에 있다고 명시하며,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임팩트를 관리하고 좋은 거버넌스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이 기업의 장기적 경제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며, 블랙록에 돈을 맡긴 수많은 개인투자자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래리 핑크는 이 편지에서 블랙록이 수많은 기업의 주주로서 그 과정을 직접 독려하고 참여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새로운 해답 찾아나선 자본블랙록의 서신, 그리고 다농과 12개 글로벌 은행의 합의는 사회적 임팩트가 비즈니스 리스크와 함께 움직인다는 관점이 금융시장에 실재하는 원칙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회적 차원과 경제적 차원은 반대로 움직이는가, 함께 움직이는가? 그 답은 두 차원의 접점을 얼마나 발견하고 거기에 가치를 매겨줄 것인가에 달렸다. 새로운 답을 쓰겠다고 나서는 자본은 분명히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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