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같은 삶이었다. 1923년, 제주 한림읍 금능리 출생. 제주 해녀 홍석낭. 살아서 그를 만난 것은 3년 전, 일본 지바현의 바다에서였다. 아흔한 살. 조그마한 몸체에 별처럼 초롱초롱하던 눈동자. 그가 힘줬던 대목이다. “나는 자기 맘대로 일본 온 할망 아니야. 전쟁, 전쟁이 팡팡할 때 저 감태하고 우뭇가사리 채취해달라고 해서 폭탄 화약 만드니까 일본서 높은 사람이 가서 데리고 왔어. 징용으로 왔어. 스무 살에.” 일본어와 우리말이 버무려진 말들이 바다 물결 소리에 섞여 출렁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든든한 지바의 어머니 같다</font></font>물빛 고운 비양도를 오가다 구룡포까지 출가물질 갔다온 ‘애기해녀’였다. 언니 따라 가난한 고향집을 떠날 때 스무 살. 제주 오사카 정기연락선 기미가요마루(군대환)를 타고 도착한 곳은 시즈오카. 너풀너풀 우뭇가사리가 무성한 바다였다. 합숙하면서 이것만 채취했으나 돈은 벌지 못했다. 겉으론 돈 벌러 떠난 출가물질이었으나 속은 일본 군수산업에 동원된 징용물질이었다. 제주에서도 이 시기 해녀들이 감태 공출에 진을 빼기도 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은 해녀까지 동원해 군수용 화학연료가 되는 칼륨이 풍부한 우뭇가사리·감태 같은 해초를 채취하게 했다.
전쟁이 끝났으나 그는 돌아가지 못했다. 함께 왔던 언니는 고향으로 갔으나 그는 그 바다에 있었다. 첩첩 파도 타는 삶. 고향으로 간 언니는 4·3의 광풍에 희생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에겐 어디든 전쟁이었다. 전쟁은 다 같았다. 무섭고 징그럽다. 아이 낳고 지바로 이동한 뒤, 홀로 이곳에 남겨졌다. 이후, 지바의 바다 바로 앞에 작은 집 하나 지어놓고, 한시도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적적할 때마다 바다와 벗했다. 작업하다 손짓해도 알아채지 못한 배로 자칫 죽을 뻔한 순간 수차례. 그래도 그는 바다가 고맙다.
“이녁 숨 끊어져가면 올라와야지 욕심내다간 죽어. 전복 욕심내다가 친구 할망도 죽었지.” 해녀 세계에서 가장 냉정한 것은 ‘숨’이다. 욕심은 금물이란 것. 해녀들에게 숨비소리는 생명의 또 다른 신호다. 삶의 철학이다. 살기 위해 물의 생을 택했으나, 목숨은 그 숨과의 안 보이는 대결이다. 그 숨은 인생이다. 우리네 삶이라고 다르겠는가. 이 시대 권력자들이 안 보여야 할 바닥을 보이는 현실에서 해녀들은 자신의 숨을 조절하며 살라고 한다. 숨비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해녀들은 산소 장비 없이 숨을 참고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사투를 벌인다. 인간이 보여주는 극한의 생이다. 그들의 가장 큰 미덕은 공동체 정신이다. 함께 바다로 가고, 함께 망망대해에서 서로의 이름을 불러준다. 지바에 뿌리내린 제주의 한 젊은 해녀는 작은 체구의 그가 늘 많은 물건을 해오면 나눠주고, 늘 배려해주는 든든한 지바의 어머니 같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거친 파도와 싸우며 살아낸 역사 </font></font>며칠 전 지인에게서 고향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의 부음을 들어야 했다. 9월, 여름의 끝자락에서 폭풍 같던 삶을 그만 접었다. 아흔넷. 바다에 들 때는 당당하고, 거침없었던 해녀. 가족의 생계를 등에 져야 했고, 징용물질을 증언하던 마지막 해녀이기도 했다. 살아서 역사에 묻혔으나 그는 이제 역사가 됐다.
잊을 수 없다. 지바의 바다에서 그녀가 부르던 노래를. 눈동자에 가득 맺혔던 눈물방울을. 39년 만에 찾았던 고향 버스에서 처음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는 자작곡 노래를. “스무 살에 일본 나와서/ 남들처럼 못 살아보고/ 칠성판을 등에다 지고/ 바닷물을 집밭 삼아 갈매기들 벗을 삼고/ 손을 꼽고 해를 세니 70년이 지나가고…” 그의 노래에서 본 것은 삶의 비의만이 아니었다. 먼 나라에서 거친 파도와 싸우고 차별과 편견의 쓸쓸한 시간을 홀로 당당하게 살아낸 여인의 뜨거운 인생이었다. 전쟁터에서 거친 파도와 싸우며 살아낸 여성들의 역사였다. 정치권력자들이 이렇게 절절한 노래를 부른 적 있던가.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숭례문 일대 메운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포토]
‘윤 정권 퇴진 집회’ 경찰·시민 충돌…“연행자 석방하라” [영상]
“대통령이 김건희인지 명태균인지 묻는다”…세종대로 메운 시민들
“자존심 무너져, 나라 망해가”…야당 ‘김건희 특검’ 집회도 [영상]
이시영, 아들 업고 해발 4천미터 히말라야 등반
“비혼·비연애·비섹스·비출산”…한국 ‘4비 운동’ 배우는 반트럼프 여성들
“잘못 딱 집으시면 사과 드린다”…윤, 운명은 어디로 [논썰]
불과 반세기 만에…장대한 북극 빙하 사라지고 맨땅 드러났다
금성호, 고등어 너무 많이 잡았나…해경 “평소보다 3∼5배 추정”
‘머스크 딸’이지만…제나 윌슨 “미국에 내 미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