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성각·강수돌
그림 허지영
생태 최성각_ 시골에서 거위와 닭을 치고 풀 베어 거름을 만들며 글 쓰는 삼촌이야. 거칠고 험악한 힘에 맞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풀꽃세상’이라는 환경운동단체를 만들어서 새와 돌멩이, 지렁이에게 환경상을 주기도 했어. 쓴 책으로 가 있어.
지난해 늦가을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작된 촛불집회에 동무들도 나간 적 있니? 촛불 하나 들고, 사람들과 같이 구호를 외치고, 천천히 행진도 하고, 어깨를 흔들면서 노래도 부르고 말이야. 동무들은 아직 투표권이 없지만,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치의 주인으로서 참여한 거야.
삼촌은 1차 촛불집회 때부터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기 전인 6차 집회까지 매주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갔어. 그리고 막차를 타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오곤 했지. 터미널에서 삼촌이 사는 캄캄한 산촌인 툇골까지 돌아오면 늘 자정이 넘었어.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식지 않는 분노와 흥분으로 새벽녘까지 잠을 못 이루곤 했지.
4차 집회 때에는 춘천 지역 한 국회의원 녀석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말을 해서 춘천 시민들과 불 꺼진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같이 따졌어. 삼촌은 그 사람의 빈 사무실을 향해 함성을 외치는 게 너무 창피해서 혼났단다.
시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을 녀석이라 부르고, 가장 큰 권한을 허락한 대통령을 최소한의 존칭도 없이 마구 부르게 된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의 탓이야. 동무들도 나중에 배울 맹자라는 중국의 사상가가 있어. 그는 “못된 왕이 고약한 짓을 하면 잡아 죽여도 된다”고 말한 적이 있어. “그래도 명색이 왕인데 그래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맹자는 “우리가 죽인 것은 왕이 아니라 못된 녀석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답했지.
그때는 지금처럼 한 나라의 권력이 시민에게서 비롯되는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었어. 왕이 한 나라의 땅과 사람, 개와 염소, 벌레와 물고기 등 모든 것을 몽땅 소유하던 시대였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이상야릇하게 보이는 왕조시대에 맹자는 단호하고 이치에 맞는 생각을 분명하게 밝혔어. 그래서 사람들이 를 읽는 걸 금지하던 때도 있었단다.
동무들은 광장에서 뭘 느끼고 배웠니? 지금 당장은 잘 몰라도 괜찮아. 왜냐하면 2016년에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손에 촛불 하나 들고 거리로 나선 일의 의미는 여러 사람이 긴 시간 동안 꼼꼼하게 해석할 테니까. 감춰진 의미를 찾아내서 간직하기도 할 테고. 이번 집회 현장은 무언가 새로 시작되고,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곳이었어.
그리고 그곳은 엄청난 학교이기도 했어. 그보다 장엄한 민주주의 학교는 다시 없을 거야. 설립자도 없고 교장도 교사도 따로 없는 학교 말이야. 이 불행한 상황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의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겪었어. 대통령을 권력에서 끌어내리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한계였지. 하지만 촛불로 그가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든 것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이었단다.
이번 일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한 나라의 권력은 시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한 거야. 세금 내는 시민과 세금 받는 국가는 주인과 부하 관계가 아니라 계약관계라는 것도 차차 알게 되기 바라. 시민이 국가에 권력을 준 대신, 국가는 시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고 모두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해. 그런 일이 쉽지 않기에 시민은 국가에 큰 권한을 주었지만, 대통령은 국가의 목적이 뭔지 알려 하지 않고, 국가가 할 기본적인 일을 내팽개쳤어. 세월호 침몰 때도 그랬지.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해야 옳은지, 아니면 바로 내려와야 옳은지를 결정하는 일이 남았어. 참 지루하고 복잡한 과정이 아닐 수 없어. 그렇다고 다른 방법은 없어. 광장에서 사람들이 든 손팻말 중에 “이게 나라냐?”라는 게 있었어. 기억나는 동무도 있을 거야. 그래, 이건 나라도 아니지. 이건 나라가 아니었어.
이 나라는 참으로 오랫동안 ‘황금만능주의’라는 사고방식이 지배하던 나라였어. 부자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부정부패도, 살인적인 경쟁도, 법을 지키지 않는 것도 그냥 넘어갔지. 돈만 된다면 흐르는 강물을 시멘트로 막아도 괜찮고, 산을 마구 허물어도 괜찮고, 땅속의 지하자원을 다 끄집어내도, 멀쩡한 갯벌을 메우고 하늘·강·바다를 오염시켜도 괜찮고, 끔찍한 핵발전소를 지어대도 괜찮다고 생각했지. 돈이 곧 신이었단다.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보다는 비겁하고 잔인한 사람들이 활개를 치던 병든 나라였어.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오로지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고 부추겼어. 하지만 모두 부자가 되지 못했어.
소수의 부자는 더욱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한 사람이 되어 비참하게 버림받는 나라였어. 그래서 시민들이 이런 짓은 이제 그만하자고 외쳤지. 이제 우리가 새로 만들 나라는 예전과는 ‘다른 나라’여야 할 거야. 각자 잘 먹고 잘사는 것만이 목적인 나라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거든. 환경 문제도 다른 이유로 생긴 게 아니야. 돈만 되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난 거지. 지구온난화도 바로 그 생각 때문에 진행되고 있지. 돈이면 모든 게 괜찮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가 잃어버린 귀한 것이 너무나 많단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까? 최소한 돈이 전부가 아닌 나라, 너무 큰 부자도 지나치게 가난한 사람도 없는 나라,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하는 나라, 이 땅의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존중받는 나라, 누구도 다른 사람을 차별하거나 지배하지 않는 나라, 욕심 많고 사악한 사람이 처벌받고 의롭고 정직한 사람들이 존경받는 나라가 아닐까?
꿈같은 이야기라고? 아냐. 설사 꿈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이게 옳다는 것을 알게 됐잖아. 삼촌은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저성장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경제 강수돌_ 대학에서 경제를 가르치면서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삼촌이야.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돈벌이 경제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살림살이 경제’를 되살리려고 노력해. 쓴 책으로 이 있어.
오늘은 삼촌이랑 저성장 문제를 생각해보자. 저성장은 말 그대로 성장이 낮게 이뤄진다는 말이야. 고성장은 그 반대겠지. 동무들의 키도 초등학생 때는 천천히 자라다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빠르게 자라지? 그러다가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 아주 천천히 자라거나 멈춰버리지. 키가 크는 거로 비유하면 중고생 때가 고성장할 때이고, 어른이 되면 저성장하는 거로 보면 돼.
경제도 마찬가지란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경제는 돈 버는 경제를 말해. 돈벌이가 잘되면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말하고, 돈벌이가 잘 안 되면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지.
그럼 돈벌이가 아주 잘되는 고성장의 시기란 무엇일까? 생산과 소비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그 규모도 갈수록 커지는 때를 말해. 그걸 숫자로 표시한 게 보통 말하는 지엔피(GNP)나 지디피(GDP)야.
GNP는 시민총생산으로 한 해 동안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과 기업들이 나라 안팎에서 만들어낸 부가가치를 모두 더한 걸 말해. GDP는 국내총생산으로, 한 해 동안 한국 안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를 합친 거야. 국내에서 생산된 것이라면 한국인이나 외국인,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모두 계산하는 셈이야. 여기서 부가가치란 생산과정에서 만들어낸 가치를 말해. 말하자면, 텔레비전의 판매 가격에서 텔레비전을 만들 때까지 든 모든 비용을 빼고 남은 돈이지.
요즘엔 GNP보다 GDP를 많이 쓴단다. 아무튼 두 지표는 부가가치가 얼마나 더 만들어졌는지 재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어.
한국은 GNP 성장률이 1980년대 말까지 12%를 기록했어. 전형적인 고성장 시기였지. 그러나 1990년대 뒤로 점차 낮아져서 2015년과 2016년에는 3% 정도야. 이제 한국도 저성장 시기에 접어든 셈이야. 좋게 말하면 선진국형 성장률을 보이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성장 잠재력이 한계에 왔다고 할 수도 있지.
선진국형 성장률이란 이미 커질 만큼 커진 경제에서는 더 성장할 가능성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거야. 설탕물을 탈 때, 설탕이 어느 정도 녹고 나면 잘 녹지 않는 것과 비슷해. 이걸 포화 상태라고 하는데, 경제도 마찬가지란다. 이제는 경제에도 포화 상태가 왔어. 우리는 이를 ‘저성장 시대’라고 불러.
이 말만 들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지?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동무들 숙제나 공부를 생각해봐. 처음에 아무것도 모를 때는 공부할 게 많지만, 어느 정도 배우고 나면 더 할 게 별로 없어지잖아. 그러면 큰일이 벌어질까? 아니야. 오히려 밖에 나가 재미있게 뛰어놀 수 있지. 경제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을 만드느라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부터는 좀 놀면서 천천히 가도 좋지 않을까?
물론 가게나 공장이 계속 잘 돌지 않으면 큰일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아서 걱정되기는 해. 그렇다고 모든 가게와 공장이 무한정 커질 수는 없지 않을까?
왜냐하면 지구 자원이 점차 없어지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에도 충분한 정도가 있기 때문이지. 그래, 이 충분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아닐까?
* 스스로 생각하는 힘,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이 교양입니다. 하나뿐인 어린이 교양지 와 만나세요. 구독 문의 031-955-9131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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