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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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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일해서 만든 ‘게임’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 강수돌·장석준 삼촌이 들려주는 경제와 사회 이야기
등록 2018-05-26 02:56 수정 2020-05-03 04:28
이 지면은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학부모를 위해 과 가 함께 만듭니다. 경제·철학·과학·역사·사회·생태·문화·언론 등 분야별 개념과 가치, 이슈를 다루는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와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고래토론’을 싣습니다

강수돌·장석준
그림 최연주·김근예

몸도 마음도 망가진 게임 개발자들■ 경제 강수돌_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삼촌이야.

오늘은 게임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삼촌과 해볼까? 서울에는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가 있어. 이곳에는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한 회사가 많아.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약 20만 명 정도인데, 주로 20~30대 청년들이야. 컴퓨터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2016년에서 2017년 사이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6명이 죽었어. 너무 많이 일해서 쓰러져 죽거나 일이 힘들어 견디기 어렵다며 자살을 하고 말았지. 현재 법으로 정해진 근무시간은 일주일에 52시간이야. 기본 40시간(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씩)에 연장 근무 12시간을 더한 거야.

하지만 디지털단지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60~70시간씩 일하는 게 예사라고 해. 이렇게 쉬지 않고 오랫동안 일하다보면, 당연히 건강이 좋지 않겠지? 뇌·심장·혈관·어깨·허리 등 몸이 상하거나 불면증·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도 생기게 되고 말이야.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는 건데 왜 죽도록 일하는 거지?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왜 이런 의문을 갖게 되었는지 하나씩 따져보자.

먼저, 게임 산업의 경쟁 상황은 게임 산업 노동자들을 힘들게 해. 예전에는 게임 하나를 개발하는 데 3~5년 정도가 걸렸어. 어떤 게임이 나오려면 최소한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고, 다음 게임을 하려면 다시 긴 시간을 기다렸지. 그런데 휴대전화로 하는 모바일 게임이 많이 나오면서 갈수록 그 간격이 짧아지기 시작했어. 3년에서 2년으로, 심할 경우 몇 달 만에 새 게임이 나오고 있어. 처음엔 한두 곳만 게임을 빨리 만들었지만 이제는 수많은 회사가 그래. 게다가 한국에만 게임 회사가 있는 게 아니잖아. 전세계 모든 게임 회사랑 다퉈야 하는 셈이니 경쟁이 더 치열하겠지? 새로운 게임이 빨리 나와야 소비자에게 인기를 얻으니까.

다음으로는 법으로 정해진 근무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거야. 일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52시간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새로운 게임을 내놓을 때가 되면 경영자는 일을 더 많이 시키려고 한단다. 이런 시기를 ‘크런치 모드’라고 해. 이때가 되면 일주일에 70시간 넘게 일한다고 해. 몇 주 동안 밤과 낮,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하거나 아예 집에 갈 엄두를 못 내기도 해. 모두 살려고 일하는 건데 일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지. 법으로 정해진 노동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

회사에서 사실과 다르게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52시간이 넘지 않는다고 기록해서야. 법을 피해 흔적 없이 일을 더 시키는 거지. 그나마 염치가 있는 사장은 더 일한 만큼 수당(돈)을 주지만, 어떤 곳은 5천원짜리 저녁식사 쿠폰만 달랑 준다고 해. ‘공짜 야근’인 거야. 게다가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계산해주지 않는 곳이 많아. 법대로 실제 일한 시간만큼 계산해서 돈을 주는 게 아니라 한 달 월급에 야근이나 주말에 일한 수당까지 포함해서 계약하는 거야. 이걸 ‘포괄임금제’라고 하는데, 사실은 불법이야.

그런데 왜 사람들은 회사를 뛰쳐나오지 않고 비인간적인 조건 속에서 계속 일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이 필요해. 하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아. 왜냐면 회사를 나가도 다른 일자리를 찾기 어렵잖아. 요즘은 대학 ‘졸업식이 곧 실업식’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해. 그만큼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야. 그래서 많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직장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고 있어. 지금 당장 죽을 지경인데 억지로 버티다가는 진짜 죽지 않을까? 한 게임 개발자가 이렇게 말했어. “맨날 야근에 야근을 반복하다 보면, 내 자존감은 회사에 있고, 내가 만드는 목표가 내 자존감이 된다. 회사를 제외하면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없어지는 때가 온다. 일 말고 하는 게 없으면 나는 무엇으로 평가를 받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고 없다. 그래서 무리하면 그런 사달(쓰러지거나 죽음)이 난다.”

삼촌은 해결의 실마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 자존감,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말이야. 어릴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을 잘 찾아나간다면, 잘못된 일을 말할 수 있다면 지금 같은 상황은 없겠지. 삼촌은 법이나 제도를 제대로 만들고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런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낸다면 노동조합도 만들고 죽음을 부르는 노동조건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회라면 민주주의가 잘 실현되고, 사람들은 자존감을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지식은 우리 모두의 것

■장석준_ 삼촌은 진보정당에서 정책을 만들고 교육을 하는 정당 활동가야.

몇 년 전부터 그리스 경제가 안 좋아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거나 월급이 깎이면서 과거보다 살기 힘들어졌어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그리스를 도와야 한다는 쪽도 있고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요. 그때 유명한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서양철학이 시작된 곳이 그리스다. 어떻게 하면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지 따지는 논리학이라는 학문도 그리스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러나’ ‘따라서’ 같은 말이 다 이 논리학 덕분에 발전했다. 그러니 서양 사람들은 ‘그리고’나 ‘그러나’라고 말할 때마다 그리스에 돈을 내야 한다. 기업도 자신들이 발명한 기술에 특허권을 갖고 있다며 사용료를 물리지 않나. 그렇다면 서양에서 가장 많은 사용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이다.”

그가 말한 대로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혹은 ‘그러나’라고 말할 때마다 그리스에 돈을 내야 한다면 말이에요. 그리고 숫자 ‘0’을 사용할 때는요? 0을 처음 생각한 나라가 인도니까, 인도에 돈을 내야 할까요? 종이나 화약을 쓸 때는 중국에 돈을 내고요. 그렇게 되면 아마 그리스나 이집트·인도·중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가 될 거예요. 동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대부분은 수천 년 전 저 나라들에서 처음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정말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아마 다들 이렇게 말하겠죠. “논리학이나 수학, 종이나 화약은 이미 인류 모두의 것이다. 특별히 누구한테 특허권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요.

그런데 최근에 생긴 지식이나 기술은 왜 다를까요? 어느 미국 기업이 만든 컴퓨터 부품이나 유럽 기업이 개발한 새 의약품에는 왜 엄청난 돈을 줘야 할까요? 그리스에서 생겨난 논리학이나 인도에서 시작된 숫자에 비하면 그들이 더한 지식은 정말 보잘것없이 작은데 말이에요.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쌓아온 지식의 거대한 산에 먼지 하나를 더했을 뿐이죠. 논리학이나 수학은 인류의 것이라고 하면서 컴퓨터와 의약품 기업에는 비싼 사용료를 주고 있어요.

그렇다면 고다르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리스나 인도에 많은 지식 사용료를 주든가 아니면 모든 지식은 인류의 것이니 최근에 발명한 기술까지 마음껏 나눠 쓰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동무들은 어느 쪽이 옳은 것 같나요?

삼촌은 지식이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두의 것, 어려운 말로는 ‘공유’라고 해요.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내 것, 네 것으로 나눌 수 있는 것보다 그럴 수 없는 게 훨씬 더 많아요. 모두의 것이라는 우주에 내 것과 네 것이 먼지처럼 떠다닐 뿐이에요. 그 우주에는 지식도 있고 기술도 있고 문화도 있고 자연도 있어요. 그러니 지식에 특허권이나 재산권이라는 울타리를 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미래가 다가올수록 지식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해요.

*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와 ‘고래토론’ 연재를 마칩니다. 함께 지면을 만든 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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