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철학·과학·역사·사회·생태·문화·언론 등을 소개하는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와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고래토론’을 격주로 싣습니다.
참여_ 김도경 김가은 백종환 장준 이도현 (12)
진행_ 고래가그랬어
사진_ 양철모 삼촌(바라 스튜디오)</font>
안락사와 존엄사,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뜻이 조금 달라. 안락사는 죽음의 고통 속에 있는 환자에게 약물을 놔서 편안히 죽게 하는 걸 의미해. 쉽게 말하면 환자가 제 죽음을 선택하는 거야. 존엄사는 어떻게 해도 나을 수 없은 상태에서 의미 없는 치료(연명치료)를 그만두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는 걸 뜻해. ‘자연사’ ‘소극적인 안락사’라고도 하지. 안락사와 존엄사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회에서 논란이 돼왔어. 죽음을 선택할 권리, 인간답게 죽을 권리란 게 과연 있을까? 동무들의 생각이 궁금해. <font size="4"><font color="#008ABD">존엄사,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font></font>
준 자기 인생이니까 자기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도현 응, 그런 거 같아.
도경 나도 찬성이야.
종환 그런데 안락사나 존엄사나 결국 자살이야.
도현 난 자살하는 거 괜찮다고 생각해.
가은 음, 자살은 좀….
도현 자살은 아프게 죽는 거고 안락사는 안 아프게 고통 없이 죽는 거야.
종환 난 안 된다고 봐. 안락사는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는데, 자살은 모든 사람이 보잖아.
준 자살과 안락사의 차이는 아프고 안 아프고밖에 없어. 어떤 사람이 자기 인생을 계속하느냐 그만하느냐를 선택하는 건, 나쁜 게 아니야.
가은 자살이랑 안락사가 차이가 없다고? 자살은 누군가 고통을 줘서 그 괴로움 때문에 죽는 거고, 안락사는 병이 고통을 줘서 그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거잖아.
도현 죽으면 부모가 많이 슬퍼하겠지. 안락사는 동의를 하고 하니까 좀 덜할 거고.
준 기적이 있을 수 있잖아! 안락사하면 그 기회가 사라진다고.
가은 기적이 일어나 살아난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잖아. 이미 아팠기 때문에 몸도 약할 거고. 그럼 또 금방 병이 올 거고. 그게 큰 병이면 비슷한 상황이 될 거고…. 두 번의 기적은 오기 힘들어. 만약 기적이 온다고 해도 7~8년 뒤에 온다면, 그동안 가족에게 큰 짐이 되고 병원비도 많이 들 거야. 너무 힘들어서 나는 안락사가 나을 거 같아.
가은 의식불명에 수술이 안 되고 곧 죽을 듯한 상태면 결국 죽을 거야. 빨리 죽느냐 나중에 죽느냐의 차이뿐, 죽는 건 똑같아. 환자가 의식이 없고 수술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난 보호자가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
준 수술도 안 되는데 계속 그렇게 있는 건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봐.
가은 그럼 보호자가 대신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 선택을.
도현 응.
종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도현 만약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러니까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아들이 아버지의 존엄사를 결정하면 어떡해?
도경 너무 억울하겠다.
종환 그건 안 되겠지.
도현 뭐가?
종환 음…. 그러니까 가족이 말해서 치료를 멈추는 거.
가은 어떤 사람은, 환자가 아픈 상태라도 계속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가 떠나면 남은 사람은 고통스럽고 슬프니까. 하지만 살아 있으면 환자도 가족도 모두 고통스러워. 어떤 사람은 자기 삶을 다 포기하고 환자를 돌봐야 하잖아. 너무 힘들 거 같아.
준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도 언젠가 돌아가실 날이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랑 이별해. 고통의 순간을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가족이 환자에게 안락사를 설득해야 한다고 봐.
도경 살아 있을 때도 죽을 때도 고통이 있겠지만, 살아 있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는 것까지는 좀 아닌 거 같아. 그냥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종환 가족을 위해 스스로 안락사하는 게 낫다?
도경 응.
도경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종환 맞아, 죽는 것보다 살아 있는 게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고.
가은 꼭 그거 같네. 여름에 잠잘 때, 모기 안 물리고 에프킬라 냄새 맡는 게 낫나, 에프킬라 냄새 안 맡고 모기 물리는 게 낫나.
준 크크크, 비유가~.
<font size="4"><font color="#008ABD">그래도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font></font>도경 내가 살아 있으면 행복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을지 몰라.
도현 고통스러운 걸 알면서, 나는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가족도 슬퍼할 거고. 차라리 아픔 없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준 난 살아 있는 게 낫다고 봐. 괜히 죽음을 택했다가 나중에 땅 치고 후회할 일이 생기면 어떡해? 인생을 살다보면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가도 행복한 일이 오잖아. 그걸 누려야 하기 때문에 살아 있어야 한다고 봐.
가은 살아 있는 걸 선택했다가 계속 고통스러운 일만 일어나면 어떻게 해?
준 살다보면 여러 고통이 있잖아. 바늘에 찔려도 고통스럽고, 나보다 먼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고통스럽고. 이런 고통이 있을 때마다 죽어야 해?
가은 아니, 정말 심각한 고통일 때만이지. 장기가 파열될 만큼 엄청 아프거나 불치병·난치병 그런 병일 때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데, 누구랑 헤어졌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나. 그 정도는 솔직히…. 애인이랑 헤어져도 1~2년 지나면 다 잊어버리잖아. 그러니까 그 정도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준 내가 죽는 걸 가족이 판단한다면 살인과 뭐가 다르지?
도현 안락사는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아프거나 어쩔 수 없는 사람이 스스로 죽겠다고 하는 거고, 살인은 복수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거니까 다르다고 생각해.
준 살인보다 자살이랑 비슷하다는 거야?
종환 살인은 나쁜 의미로 죽이는 거고, 안락사는 그래도 편안하게 해주려고 죽이는 거잖아.
가은 자살도 자신을 죽이는 거니까 살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살인과 자살은 나쁜 건데…. 안락사는 일종의 자살이고…. 어, 음….
준 살인은 어떤 사람이 남을 죽이는 거고, 안락사는 자신이 자기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생각해. 그런데 존엄사는 환자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나 의사가 대신 판단하는 거잖아.
도현 자유의지라고 생각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해도 되나?
가은 아니, 죽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어야 해.
도현 맞아.
가은 그렇지만 자살은 자기가 선택해서 죽는 것이긴 해.
준 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사형처럼 죄지어 어쩔 수 없이 죽는 경우도 있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어.
가은 죽음을 선택 못할 수도 있잖아. 만약 불치병이거나, 병에 걸리거나, 아무 일 없이 걸어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데? 그건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야.
준 그건 의도치 않은 죽음이지. 흔히 말하는 사고야.
가은 사고도 결국 죽는 건 마찬가지잖아.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니고.
종환 불치병에 걸린 건 아니지만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는 게 낫겠다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정당한 거야?
도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가은 정당하지 않아. 자살은 좋은 게 아니야.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이상 행복하게 사는데 갑자기 죽고 싶어서 죽을 이유는 없잖아. 괴로움 때문에 죽는 거니까 그것을 이겨내면 되지 않을까.
도현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해서 자살을 선택하잖아.
도경 모든 사람이 자살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도현 자살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자기가 하고 싶은데 남이 못하게 할 이유는 없다고 봐. 자유의지인 거지.
가은 자신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고통받아 충동적으로 할 수도 있어.
종환 부모님이나 괴롭히지 않은 친구들이 그리워할 수도 있잖아. 주위 사람들도 친구를 잃은 괴로움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가은 자살을 선택한 이유가 대부분 다른 사람이 괴롭혀서잖아. 괴롭힘을 당할 때 바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는 거야. 자기가 이겨내지 못한 거니까 그 사람 잘못 아닌가.
<font size="4"><font color="#008ABD">어떤 나라는 합법, 어떤 나라는 불법</font></font>도현 그 판단은 누가 해?
도경 주변 사람들.
종환 주변 사람들이 악용할 수도 있지. 의사가 하는 건 어때?
준 그럼 의사 힘이 너무 세지지 않나?
가은 의사는 자기 본업에 충실해야지. 사람을 살리고, 살리지 못하면 솔직히 말해야 해. 사람을 못 살리는데 살릴 수 있다고 말하거나, 불치병이 아닌데도 안락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 의사는 감옥에 가야 해.
준 아니, 난 그렇게 되면 미국 경찰과 같다고 생각해. 미국 경찰은 흑인을 흑인이란 이유로 총으로 쏘는 일이 있잖아.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도 살짝 혼란에 빠지게 될 거야.
도경 축구 심판처럼, 심사위원회 같은 걸 만들면 어때?
가은 그런 게 있다면 많은 사람이 이 사람을 고칠 수 있다 없다를 법정 토론회처럼 이야기할 수 있겠네. 아, 이건 어때? 자신이 건강할 때, 혼수상태가 되면 자신을 존엄사를 시키라고 미리 결정해놓는 거야. 만약 나중에 정말 그런 일이 생기면 미리 밝혀놓은 생각대로 하는 거지.
도현 아, 장기 기증처럼?
준 맞아, 장기 기증!
가은 우리나라에선 안락사가 불법이니까…. 치료도 못하고 계속 고통 속에 있다가 죽는 것보다 안락사로 편안하게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안락사가 합법이 되어도 괜찮아.
종환 나도.
준 자살보다 안락사가 더 나아. 우리나라도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 안락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도경 가은이 의견에 동의해.
도현 나도.
종환 안락사가 합법화됐을 때, 그걸 나쁘게 쓰는 사람은 없을까?
가은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본인은 안락사 않겠다고 했는데 가족이 안락사해도 된다고 잘못 말하거나, 보호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안락사해도 된다고 하거나. 그러니까 까다로운 조건을 만들어 그걸 다 지키게 해야 할 거 같아. 내가 불치병에 걸렸다면 어떤 선택을 할 거 같아?
종환 너무 먼 미래의 일을 생각하는 거 아니야?
준 진짜 생길 수도 있어.
종환 너무 무서워!
도현 만약 내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어. 내가 존엄사를 선택해서 죽으면 다들 슬퍼하지 않을까? 아닌가? 내가 죽고 나면 다 잊을까?
가은 나는 미련 없이 “세상을 잘 살았다” 하고 죽을 거야.
준 나라면 좀더 살아볼 거야. 정말 가능성 없고 무슨 방법을 써도 안 되면 그때 “세상아! 나는 미련 없다.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겠다” 이럴 거 같아. 크크.
종환 미국에 자전거 타는 사람이 있는데, 암에 걸렸어. 1년은커녕 1개월도 못 살 거라고 했는데 ‘한 걸음 더 내딛자’는 말을 하면서, 결국 2년 뒤 암을 이겨냈대. 이름이 암스트롱인가 그래. 나도 그 사람처럼 아픈 걸 이겨내고 계속 살 거야.
가은 나는 하루 살아보고 정말 고통스러우면 그 다음날부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을 거야.
도경 나도 가은이 말처럼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거, 엄마·아빠 돈을 빌려서라도 최대한 다 하고 저세상으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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