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46) 변호사의 마음을 결국 무너지게 한 것은 이란 출신의 한 난민이었다. 그는 이란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다가, 우여곡절 끝에 한국을 찾았다. 난민신청을 했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는 그에게 ‘난민으로서 한국 체류 자격이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제대로 변명조차 못한 채 구금됐다.
그렇게 무려 4년을 갇혀 살았다. 그는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UNHRC)에 개인 청원을 한 끝에 구금 상태에서 겨우 벗어났다. 난민에게 법률 지원을 하는 김 변호사와 만난 자리에서도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밖으로 나가더니, 사무실 앞 복도에서 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금된 기간 동안 그는 누군가와 제대로 대화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람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꺼내는 일이 낯설고 두려워서, 김 변호사와도 전화로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난 1월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공익법센터 ‘어필’ 사무실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머나먼 한국까지 찾아와 난민신청을 했는데, 오히려 수년간 구금당해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됐다는 이란 난민의 얘기를 듣고 마음이 주저앉았다. 신체를 구속하는 것은 법이 하는 가장 잔인한 일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서도 신체 구속에는 엄격한 영장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기본적 법 원칙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사람들이 바로 난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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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발표한 ‘난민보고서’를 보면, 2015년 전세계 난민은 6530만 명에 이른다. 세계 인구 대비로 보면, 113명마다 1명이 난민인 셈이다. 이 가운데 2011년 이후 한국을 찾은 난민신청자는 지난해 6월까지 1만6525명이었다.
난민은 정치적 의견이나 종교·민족적 차이로 차별받다가 자신의 나라를 떠나온 이들을 말한다. 유엔 난민협약에서 인정하는 박해 근거는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 차이 등 5가지다. 그 가운데는 여성이라서, 소수자이기 때문에 난민이 된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가 보호해줘야 하는 이들이다.
한국 정부의 태도는 각박하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난민심사가 종료된 8456명 가운데 실제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이들은 380명에 불과하다. 한 해 2천~3천 명이 한국에 난민신청을 하지만, 평균 난민인정률은 4%대에 불과하다. 유엔난민기구 조사에서 2015년 전세계 난민인정률은 평균 37%였다. 한국이 이들에게 얼마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 변호사가 처음 난민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6년 사법연수원 시절이다. 당시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난민들의 이야기에 ‘꽂혔다’. 이후 적당히 벌며 무난히 사는 흔한 법률가의 삶 대신, ‘핍박받는 난민’을 보호하는 변호사의 삶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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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의 덕목은 ‘무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러다가 난민들을 만났다. 이들의 삶은 국가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와 불의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드라마틱한 모험 같은 것이었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법률 지원을 하기로 했다.”
그는 2011년 공익법센터 ‘어필’을 세웠다. 국내에서 난민, 구금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고, 국외에선 한국 기업의 현지 외국인 노동자 인권 침해를 감시하는 법률가 단체다. 김 변호사를 포함해 현직 변호사 5명, 실무수습 변호사 1명, 인턴 5명 등 꽤 큰 진용을 갖췄다. 1월6일이면 어필을 설립한 지 7년째다.
허울뿐인 아시아 첫 ‘난민법’김종철 변호사가 공익법센터 ‘어필 ’을 설립한 지 햇수로 7년을 맞았다. 그는 “불의에 저항하고, 국가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를 지닌 난민들의 삶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1월4일 서울 종로구 어필 사무실에서 만난 김 변호사가 생각에 잠겨 있다.
그사이 한국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1992년 11월11일 국회 비준)한 지 25년이 됐다. 난민협약은 “인종·종교·국적·특정사회집단에 소속되거나 정치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자국 국적 밖에 있는 자, 또는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자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 자”를 ‘난민’으로 인정해 이들을 보호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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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한국은 2013년 7월1일부터 난민법을 전면 시행했다. 정부가 ‘아시아 최초의 난민법’이라고 자랑하는 대목이다. 난민법 역시 난민협약이 정한 기준에 따라 ‘난민’인정을 받으면 “대한민국에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국가(상주국)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무국적자인 외국인”을 보호하도록 했다.
그러나 법과 현실은 따로다. 난민법에 따르자면, 한국의 공항이나 항구까지 도착한 난민들은 “나는 고국으로 돌아가면 박해를 받는 난민입니다”라고 말하면 간단한 심사를 거쳐 입국 허가 여부가 결정된다. 이른바 ‘출입국항에서의 난민신청’이다. 정식 난민심사 기회도 부여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난민법 이후에도 대다수 난민들은 “당신의 주장은 난민인정 사유로 불충분하다”는 설명을 듣고 송환대기실에 구금되기 일쑤다.
지난해 한국난민지원네트워크와 유엔난민기구 등이 공동 조사해 발표한 ‘공항난민신청 실태보고서’를 보면, 공항 송환대기실은 햇빛이 보이는 창조차 없는 협소한 공간, 신체 자유의 제약, 열악한 음식, 세면도구·의복·침구 등 미제공, 의료접근권 제약, 용역 직원들의 협박 등 가혹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난민들은 법적으로 난민신청을 다툴 방법을 숙고하기 전에 가혹한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송환된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난민들의 경우, 법원의 개입 없이 행정청인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의 명령으로 구금된다. 구금 기간의 상한이나 정기적인 사법 심사, 자기 잘못만큼만 구금한다는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야만적인 것은 ‘이주 아동 구금’ 문제다. 김 변호사가 2011년 외국인보호소에서 처음 만난 ‘구금 아동’은 4살이었다.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다 쫓겨난 엄마를 따라왔다. 지난해에는 1살, 4살 아이들이 구금된 경우도 확인했다. 엄마와 함께 20일간 갇혔다가 풀려났는데, 아이가 대소변을 못 가리고 사람을 보면 소리 지르는 ‘퇴행’을 보였다. ‘보호소’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상 구금시설이다. 영어로도 ‘강제수용소’를 뜻하는 ‘디텐션센터’라는 말을 쓴다.
김 변호사는 “어린아이가 구금시설에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조사를 해보니, 무시하지 못할 수의 구금 아동들이 있었고 이후에도 그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송환대기실에선 18살 미만 미성년자들이 성인과 똑같은 기준으로 구금되고 있었다”며 “이주자 구금 자체가 위헌적 태도이지만, 특히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아동을 구금하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에도 두 차례나 문제제기를 해봤다. 난민신청자를 우선 구금하는 것은 야만적일뿐더러, 이를 허용하는 출입국관리법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두 차례 모두 각하했다. 김 변호사는 “헌재가 국내 정서에 견줘 예민한 문제에 대해 비겁하게 판단을 회피한 것”이라며 “난민임을 주장하는 모든 이들이 구금 없이 일반적인 난민 절차를 밟도록 법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기업의 해외 노동자 인권침해도 주시김 변호사가 난민 문제와 함께 천착하는 것이 다국적기업의 현지 노동자 인권침해 문제다. 난민과 다국적기업 문제는 어쩌면 꽤 이질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여러 국가에서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 원주민을 정치적으로 핍박하고 원주민이 난민이 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하는 상황인데, 힘이 세진 다국적기업을 견제할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국외 공장에서 현지인들 인권을 침해하는 일을 감시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다국적기업들이 현지 정부와 결탁해 원주민에게 내린 ‘자원의 저주’ 같은 것이다.
최근 김 변호사는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와 함께 발표한 ‘2016 해외 한국 기업 인권실태 조사’에서, 삼성물산이 인도네시아 PT 간디에라 팜오일 농장을 합작 운영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생활 환경을 파괴했다거나, 삼성물산을 상대로 생존권 투쟁을 벌이는 원주민들을 돈으로 회유·매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팜오일 농장 운영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무리한 ‘타깃’을 정하고, 노동자가 어린아이들을 동원해 할당량을 채우는 일을 묵인했다는 현지인들의 주장도 공개했다.
“삼성물산의 합작 농장이 정한 할당량이 너무 높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토요일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일을 시키는 것이다. 3~4살 어린이를 데리고 와서 일한다는 노동자의 진술도 확인했다. 어린아이들이 위험한 농장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고, 안전장비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팜오일 농장에서 ‘그라목손’이란 약품을 쓰는데, 이미 한국에선 2012년 위험물질로 사용이 금지된 제품이다. 저개발국 주민을 상대로 다국적기업이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최근엔 한국에서 벌어지는 외국인 여성 성매매 강요나 원양어선의 강제노동·인신매매도 주요한 이슈로 삼고 있다. 연예·흥행 비자로 한국에 왔다가 외인 클럽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하거나, 거액을 내고 어렵게 원양어선을 탔는데 한 달 20만~30만원을 받으며 하루 20시간 이상 근로에 시달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리고 이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김 변호사와 ‘어필’은 지난해 대한변호사협회와 대한변협인권재단이 공동으로 주는 변호사공익대상을 받았다. 난민, 인신매매 피해자, 구금 이주민, 다국적기업에 의한 현지인 인권침해 피해자 등을 돕는 데 전력을 기울여온 점을 칭찬받은 것이다.
지속 가능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김 변호사는 “처음에 난민을 비롯한 ‘외국인 인권’을 다룬다고 너무 비장하게 문을 열었다. (웃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했는데, 덕분에 내 인생이 더 좋은 길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어필(APIL)의 첫 글자 에이(A)가 변호사란 뜻의 ‘아드보카트’(Advocaat)인데, 어원이 ‘대신 말해주다’이다.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의미 있는 일을 했기 때문에 ‘무난한 법률가의 삶’을 포기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어필은 후원자 500여 명의 도움으로 운영된다. 김 변호사는 “어필을 만든 지 7년이 지나는 시점인데, 더 지속 가능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동료들이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력을 늘려서 한 사람이 너무 일을 많이 하지 못하도록 후원자 확대에도 더 힘쓰려 한다”고 말했다.
글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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