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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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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굴뚝에 긍지의 온기를

<한겨레21> 기획연재 ‘연장傳(전)’으로 1년간 노동의 땀·눈물·가치 담아낸 노순택·박점규
등록 2016-11-26 16:46 수정 2020-05-03 04:28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노동은 예술이다. 예술이어야 한다. 예술이 아니라면, 기술에 머문다면, 한 삶은 얼마나 억울한가. 노동자로 평생을 살면서 자신의 노동이 기계의 암나사·수나사 취급받는다면, 그것을 인용할 수 있을까. 누구든 사람은 부분이 아니요 전체인바, 한 삶은 한 우주이다. 삶의 위계, 그 비열한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한반도 남쪽 사람들이 더 뼈저리게 느끼는 민주주의, 그 본질 아닌가. 바로 평등. 가령 동일노동 동일임금.

여기 동갑내기 벗이 있다. 한 사람은 글을 썼고, 한 사람은 사진을 찍었다. 박점규와 노순택. 둘은 1971년생 돼지띠 동갑이다. 2015년 8월 에 연재를 시작한 노동자들 이야기 ‘연장傳(전)’. 2주마다 이어갔고 지난 8월, 24회를 끝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말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11월15일 서울 광화문광장 좁은 텐트에서 쭈그리고 앉아 두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할 말이 많았다. 말을 주고받는 사이, 지나가는 차량들이 바닥을 울렸다. 이들은 열흘 넘게 길바닥에서 오그리고 잠을 자며 지내고 있었다.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관련 기사 '캠핑의 혁명'). 이날까지 60개 가까운 텐트가 이곳에 입주했다. 찬 바닥에서 찬 세월을 이야기하면서 따뜻한 차를 나눠 마셨다. 차의 이름은 (박근혜)‘하야차’. 바야흐로 겨울, 바람이 거셌다.

열흘 넘게 광화문광장에서 노숙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은 누가 제안했는지.

노순택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기부터 광범위하고 집요하게 해먹은 게 문화예술계 쪽이다. 당사자인 문화예술인들이 무언가 발언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11월4일, ‘블랙리스트에 있건 없건 간에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라는 시국선언을 했다.

이곳이 문화예술인들만의 문제제기 공간이 아니라 길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공간으로 더 확장되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전면에 내걸고 싸우는 아고라(광장)로서 기능한다면 문화예술인들이 연대세력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박점규   지난주 금요일에는 현대·기아차 비정규 노동자들도 여기에 들어왔다.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고통과 억압,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광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연장傳(전)’ 연재를 기획한 계기는.

박점규   경기도 부천에 있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일일 부모 참여 교육’을 했다. 그런데 주로 의사·변호사나 은행·증권사 지점장 등이 나오는 거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대부분 될 수 있는 직업인을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한테 연락이 왔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쌍용자동차 정비사를 한 분 소개해줬다. 한 분 더 부탁하기에 철도 기관사를 소개했고 아이들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노동의 보람·가치·긍지를 다뤄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또 다른 계기는 지난해 한겨레신문사에 모여 을 만들면서, 노동 현장을 많이 다니는데 이 멋진 광경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순택씨와 이야기를 나눴고 같이 작업하게 됐다.

연재를 24회 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노순택   엊그제 구로동맹파업(1985년 6월)의 주역이었던 선배님들이 여기 오셨다. 재봉사 강명자(제1083호 ‘40년째 미싱은 잘도 도네’)씨도. ‘역전의 용사’들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어떤 분들은 거리에서 싸우는 중에 취재를 했다. 연재 첫 번째였던 요리사 고진수씨는 거리에서는 여러 번 만났지만 실제로 그분의 노동 현장이 어떠한지 취재하면서 처음 보았다. 해고되거나 사 쪽의 부당한 탄압으로 싸우는 노동자라고 뭉뚱그려서 생각했던 분들의 개인적인 노동 현장, 손에 쥔 노동의 도구들을 보게 됐다.

박점규   신발 만드는 분들. 그분들 연장이 몇 개 안 된다. 망치 들고 뚝딱뚝딱 신발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았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대받아야 할 분들이고 장인이기도 하다. 기능이 쌓일수록 삶이 점점 나아져야 하는데,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속이 상하고 안타까웠다.

1년 동안 많은 노동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재밌는 일들도 있었겠다.

박점규   빨간 오토바이 집배원. 경기도 양평이었다. 순택씨는 작은딸하고 아내랑 같이 왔다. 집배원이니까 이분은 계속 배달을 가야 하고 우리는 쫓아가야 하는 상황. 골목길 다니는 오토바이를 승용차가 어떻게 쫓아가나. 이분이 오토바이에서 내리면 뛰어다니며 물건을 배달한다. 순택씨도 막 뛰게 된다. 그걸 보고 순택씨 아내가 ‘실내에서 편하게 사진 찍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고생하는지 처음 알았다’고 하더라.

처음 본 노동의 연장들
박점규·노순택이 <한겨레21>에 1년간 연재한 ‘연장傳(전)’은 칼로 시작해 불꽃으로 마감했다. 내년 봄 원고와 사진을 깁고 보태어 단행본으로 낼 참이다. 노순택

박점규·노순택이 <한겨레21>에 1년간 연재한 ‘연장傳(전)’은 칼로 시작해 불꽃으로 마감했다. 내년 봄 원고와 사진을 깁고 보태어 단행본으로 낼 참이다. 노순택

노순택은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르포르타주 사진가다. 갈등과 대립, 투쟁 현장에 가면 어김없이 그를 만날 수 있다. 스스로 “길바닥에서 사진을 배웠다”고 말한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2014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사진 못지않게 글도 빼어나다.

박점규는 1998년 민주노총에서 홍보·투쟁을 담당했고 2003년부터 금속노조에서 선전홍보·단체교섭·비정규직 사업을 맡았다. 기륭전자·쌍용자동차·현대자동차·삼성전자서비스 등에서 노동자들과 현장을 지켜왔다. 지금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으로 일한다. 막걸리를 사랑한다.

사진 촬영이 쉽지만은 않았겠다.

노순택   이분들의 연장이 값비싸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소박하고 조그만 망치나 드라이버다. 글로 풀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도 어려웠다. 너무 근사하게 찍는 것도 이분들의 노동을 왜곡하는 것이 된다. 이분들의 이야기가 지면에 실렸을 때 자신의 노동에 대해 사진으로도 글로도 자긍심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늘 있었다.

연재 원고를 거의 밤을 새워가며 쓰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은데.

박점규   맨 처음 연재 시작한다고 했을 때 제가 잘 아는 문학가가 ‘되게 어려운 작업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전에 내가 낸 책 (2015)나 써왔던 글은 노동 현장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연장전’이라는 이름을 달았기 때문에 연장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연장과 관련해 삶을 투영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초반에 특히 힘들었고 어느 정도 틀이 잡혔더라도 연장을 통해서 그 사람의 삶과 노동,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했다. 노순택 작가가 아니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같이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장 묘사, 특히 원고 앞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박점규   많은 경우에 좋은 표현은 순택씨가 같이 취재할 때 건네준 이야기다. 순택씨는 카메라 앵글에 잡힌 연장으로 본 것을 수시로 얘기해줬고 메모했다.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도 순택씨와 많이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지켜보았기 때문에 같은 마음으로, 협동으로 만든 글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흔한 연장의 임무는 특별하다”

문장은 현실을 압축한다. 압축하므로 대부분의 현실은 문장에 올라타지 못하고 탈락한다. 박점규는 악착같이 현실을 문장에 담으려고 고투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십(十)자드라이버. 가장 흔한 연장의 임무는 특별하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전동차, 조여놓은 나사도 쉽게 헐거워진다. 누군가의 삶이 흔들리지 않게 나사를 조이고, 누군가의 인생이 풀어져버리지 않게 볼트를 돌린다. 안전을 조인다.”(제1080호 ‘안전 조이는 매의 손’)

꼭 취재하고 싶었는데 여러 이유로 못한 경우도 많겠다.

노순택   광고판 만드는 노동자들을 다뤄보고 싶었다. 광고를 흔히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얘기한다. 도심의 대형 광고판에 들어가는 화려한 상품들, 새로운 스마트폰, 텔레비전, 자동차… 그런 화려한 광고를 만드는 데 비정규 노동자가 많이 일한다. 자기가 처한 노동 환경과 설치하는 내용물의 괴리라고 할까.

박점규   소방관을 하지 못한 게 아쉽다.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사진 중에서 유럽 소방관들의 장갑이 있다. 장갑에 엄청 센 불을 쏘는데도 가만히 있는 사진. 프랑스에서는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하다 돌아가시면 인원 충원하고 시설 확충하라고 파업한다. 우리는 동네방네 돈 걷어서 하는 식이고…. 이런 문제점을 진지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글과 사진, 두 사람의 협업도 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노순택   특히 외국의 경우 예전부터 사진 찍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이 짝꿍이 돼서 어떤 풍경을 함께 보고 같이 만들어가는 게 부러웠다. 또 다른 외부 필진이 사진가과 함께 만들어보고 싶다고 할 때 지난번 박점규·노순택 선례가 있지 않느냐 해서 긍정적으로 검토되는 사례가 되면 좋지 않을까.

연재를 마친 느낌은 어떤가.

박점규   내가 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연재 끝나고 몇 주 지났는데, 마치 직장 다니다 실직한 것처럼 흘러갔다. 이렇게 놀아도 되나 하는 생각. 또 하나는 개인적으로 뭔가 고갈된다는 느낌. 조금 쉼이 필요한 것 같았다. 사유가 깊어지고 안목이 넓어질 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글을 또 쓸 수 있지 않을까.

노순택   연재하는 1년 동안 늘 가슴에 돌덩어리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엔 또 어떻게 할까, 늘 근심거리였다.

우리 사회는 거꾸로 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여전히 개선 안 되고 있다.

노순택   지하철 정비 노동자 취재하러 가니 마스크를 하나 보여주더라. 동일노동을 하는데 노동조건이 달랐다. 정규직 노동자는 얼굴에 전면 마스크를 쓰는데 비정규 노동자는 반쪽 마스크였다. 당사자한테도 너무 모욕적이지만 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모욕적이라고 생각했다. 직장 안에서 더 우월적인 조건에 있는 분들이 이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게 안타깝고 슬펐다.

박점규   누구든 직업을 갖는다. 자신의 재능과 끼, 좋아하는 일을 통해 평생 노동하며 살고, 그 과정에서 일이 능숙해지고 형편이 나아져야 한다.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게 노동이다. 그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나 대우는 어떤가.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존중하는 사회가 우리가 만드려는 사회 아닌가. 정당한 대가를 주는 사회. 우리는 거꾸로 온 거다. 더 싸구려로 만들고 더 바닥으로 내몰고. 그게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것 아닌가. 노순택 작가의 앵글에 담긴 손과 연장이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도록 하는 게 우리 모두의 일, 역할 아닐까.

광화문 캠핑촌. 노순택 작가의 텐트 이름은 ‘노숙택’이다. 돌아보건대 한국 사회 노동자들은 몇 세대를 거치며 줄곧 풍찬노숙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박점규·노순택 두 사람은 인터뷰 마지막에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이야기를 했다. 상경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쉼터, 빨래하고 잠자고 노동·법률 상담도 받는 곳. 모금 목표액은 10억원. 현재 6억원 정도 모였단다. 올해 안에 꿀잠 터를 정할 참이다(후원 문의 010-6317-3460).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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