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발이 페달을 살짝 밟았다 뗀다. 실타래가 스르르 풀린다. 윗실은 흰색, 밑실은 옅은 회색이다. 바늘이 옷감 원단에 ‘자바라’(주름)를 박는다. 드륵 드륵 드르륵. 손가락으로 원단을 밀어올린다. 페달 윗부분을 지그시 밟는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륵. 고급스런 무늬가 새겨진다. 그녀의 왼손 검지와 중지 손가락이 노루발(바늘이 오르내릴 때 바느질감을 눌러주는 두 갈래로 갈라진 부속)을 따라 앞뒤로 빠르게 움직인다.
영자씨와 명자씨의 패션쇼실이 떨어졌다. 실을 교체하고 침에 연결한다. 1인치에 11땀을 박는다. 싸구려 옷은 다섯 땀만 박아서 후딱 만들지만, 블라우스 같은 고급 옷은 11~12땀을 새긴다. 다시 박음질이 시작된다. 밑단 작업을 끝내고 소매단을 박는다. 겨울용 여성 코트를 만드는 재봉사 강명자(53)씨의 작은 손이 ‘미싱’ 앞뒤로 숨가쁘게 움직인다. ‘미싱’은 바느질하는 기계라는 뜻의 소잉머신(sewing machine)의 일본말이다.
윗실과 밑실이 옷감 바깥쪽과 안쪽을 수놓는다. 재봉틀에 걸린 실은 ‘코아사’. 비단·운동복·스판(스판덱스) 등 고급 의류에 쓰이는 광택이 나는 실이다. 보통 면티나 청바지에는 폴리에스테르 실을 쓴다. 보통 두꺼울 땐 60수, 얇을 땐 40수를 쓴다. 실 두 개를 꼰 건 2합, 세 개는 3합이라고 한다. 가방이나 지갑엔 나일론을 사용한다.
드륵 드륵 드르르륵…. 공업용 ‘미싱’이 돌아간다. 발판을 밟는다. 원단이 쭉 앞으로 나가며 박음질을 한다. 발을 떼면 멈추고, 발판 뒷부분을 밟으면 실이 끊어진다. 코트의 어깨 부분. 직선으로 난 고속도로와 달리 꼬부랑 시골길은 발판을 밟았다 떼는 일을 반복한다. 명자씨가 쪽가위로 천을 끊는다. 끝단을 잘라 곡선을 만든다.
주변이 어수선하다. “에이 참, 나오시(불량)가 났네.” 그녀가 재봉틀을 멈춘다. 박음질한 원단을 뜯어낸다. 다시 재봉틀을 돌린다. 드르르르르르륵…. 밑단, 마이(앞판과 뒷판), 소매, 주머니까지 하프코트 하나에 8m71cm의 무늬가 새겨진다. 앞판과 등판이 만나고, 소매와 옷깃, 밑단과 주머니를 연결하면 옷이 완성된다. 단추 구멍을 뚫고 단추를 달고 다리미질까지 마치면, 가격표를 붙여 매장으로 나간다. 그녀의 손끝에서 올겨울 ‘신상’(신상품)이 완성된다.
명자씨의 작업대 오른쪽에 패턴(옷의 기본 모형)이 걸려 있다. 디자이너와 패턴사가 디자인한 옷을 재단사가 마름질하면 재봉사가 옷을 짓는다. 실과 실이 만난다. 윗실과 밑실이 재봉틀에서 만나 원단을 수놓는다. 수백의 색이 어우러져 수만의 무늬를 만들어낸다. 재봉은 만남의 향연이다.
9월9일 저녁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6번 출구. 명자씨가 지은 옷으로 꾸며진 패션쇼가 열렸다. ‘쇼미더봉제’(Show me the 봉제_ 자자[명자+영자]). 구로공단 대우어패럴 출신 강명자·권영자씨의 이야기와 봉제 기법을 활용한 패션쇼가 퇴근하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명자씨의 제안을 받아 김선민 감독이 패션쇼 기획 연출을, 구로문화공단 예술가들이 디자인을 맡았다. 서울직업전문학교 학생들은 모델로 참여했다. 예쁘고 잘생기고 날씬한 모델들이 멋진 옷을 입고 걷는 여느 패션쇼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한땀한땀 새겨진 옷의 디자인이 달랐다.
빨간 원피스에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디자인을 넣었다. 또 다른 원피스의 밑단은 벽돌 모양이 그려졌다. 영자씨가 1980년대 빨간색 벽돌로 세워진 공장을 추억했다. 흰 원피스에는 디지털단지의 유리벽이 새겨졌다. 옷을 짓는 아름다운 손을 꽃으로 형상화했다.
“시집갈 밑천도 주겠다는데 거절했죠”여성 모델이 입은 붉은 원피스에 유명 상표들이 박음질되어 있다. 주제는 라벨. 수백만원짜리 브랜드에 가려진 노동을 표현한 디자인이다. 남성 모델이 입은 티셔츠와 바지 한 벌에는 1960~80년대 구로공단에서 옷을 만들었던 회사 이름과 천들이 조각되어 있다. ‘중고딩’ 나이에 공단에 들어와 타이밍(각성제) 먹고 졸린 눈을 비비며 시다와 미싱공으로 살다 떠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을 기억하는 옷이었다.
명자·영자씨 딸이 엄마가 만든 옷을 입고 모델로 출연했다. “해를 디자인한 원피스를 만들었어요. 그늘진 삶을 살았던 엄마와 달리 우리 아이들 앞날에는 서광이 비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우리 딸들은 조금 더 나은 공간에서 일했으면 좋겠는데….” 권영자씨가 패션쇼를 추억하며 밝게 웃는다.
명자씨가 봉제공장 대표 음료 박카스를 건넨다. 40년 전 그날을 떠올린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패션의 거리 W몰 자리에 있던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사무장이었던 그는 1985년 6월22일 경찰에 끌려갔다. 대우그룹 계열사인 대우어패럴에선 2천 명의 직공이 일하고 있었다. 주당 80시간을 일해서 받은 월급으로 쪽방 월세 3만원을 내면 3만원 남짓한 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했다. 노조를 만들어 파업을 했고, 월급을 올렸다.
여공들의 분노가 구로공단에 물결칠 것을 두려워한 정권은 노사 합의가 끝난 두 달 뒤 노조 간부들을 전격 구속시켰다. 당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노보를 발행해 언론기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6월24일 아침,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자, 효성물산·선일섬유·가리봉전자·부흥사 등 구로공단 노조로 연대파업이 들불처럼 번졌다. 구로동맹파업,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연대파업이었다. 35명 구속, 370명 연행, 2천 명 해고라는 아픔을 남겼지만,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시집갈 밑천을 주겠다고 했어요. 사무장만 포기하라고 했죠. 고민도 안 하고 단번에 거절했어요. 저는 그냥 노동조합이 좋았거든요. 그때 돈 받고 갔으면 지금의 나는 없겠죠.” 당시 회사가 제시한 금액은 2천만원. 지금으로 치면 5억원쯤 될까? 저들은 구로동맹파업의 상징 강명자를 지금도 유혹한다. “새누리당으로 가버린 당시 노조위원장이 저에게 너 언제까지 미싱 할래, 자리 하나 준다고 그만하라고 하는데, 전 불편한 옷을 입는 게 싫어요. 난 미싱이 그냥 좋아요.”
대신 기륭전자를 비롯해 열심히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명자씨 곁에 있다. 그는 최근 박근혜의 노동정책이 노동개혁인지 노동재앙인지를 묻는 국민투표 제안위원으로 참여했다. 단 한 번도 남의 밑에서 월급 받으며 일한 적 없는 대통령이 우리 딸·아들을 평생 비정규직 만든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동네에도 국민투표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요꼬’ 공장의 막내는 65살최근까지 명자씨는 작은 봉제공장에서 9년을 일했다. 그가 만든 옷은 미샤, CC, 리바이스, EXR 같은 브랜드를 달고 백화점과 유명 쇼핑몰에서 팔려나갔다. 지금은 ‘일당쟁이’로 일한다. 주휴수당이나 4대 보험은 언감생심.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7시까지 10시간 일하고 7만5천원을 받는다. 일감이 없으면 쉬고 돈을 못 받는다. 특1급 재봉사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우다. 얼마 전 그는 스웨터 짜는 공장에 다녀왔다. 고급 스웨터를 만드는 ‘요꼬’ 공장의 막내는 65살이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누가 와서 봉제를 배우겠어요? 기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닌데, 이렇게 가다가는 누가 옷을 만들지 모르겠어요.”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의 의복제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27만 명, 의류봉제업 종사자는 23만 명이다. 7월21일 서울노동권익센터는 ‘봉제산업 노동자 건강안전 실태와 작업환경: 현황과 대안’ 토론회를 열었다. 서울 지역 봉제산업 종사자 46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지난 2014년 봉제 일을 하면서 호흡기 증상(숨막힘·가래·비염 등)으로 불편을 느낀 적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63%에 달했다. 방광염 진단을 받은 사람은 21.2%, 피부염을 앓고 있는 노동자도 22.3%나 됐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당사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월급이 아니라 작업한 수량만큼 급여를 받는 ‘객공’들이 하루 평균 11.2시간, 주 6일 근무로 주당 노동시간은 67시간이나 되는데, 휴일 노동의 심각성을 묻는 설문에 ‘별로 심각하지 않다’ ‘전혀 심각하지 않다’는 응답이 70%였다. 피부염이나 방광염 같은 직업병에 대해 ‘별로 혹은 전혀 심각하지 않다’는 응답이 60.3%에 이르렀다. 임금 체불도 ‘다소 심각하다’ ‘매우 심각하다’는 응답이 14.7%였다.
돈만 아는 대기업은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공장을 이전하고, 하청의 하청 재봉사들, 객공들이 만드는 ‘메이드 인 코리아’는 고가의 브랜드를 달고 서울 동대문과 가산동 패션거리에서 팔려나간다. 타이밍 대신 박카스를 마시지만 ‘전태일 시절’은 계속된다.
명자씨가 검지 손가락을 보여준다. 흉터가 선명하다. 얼마 전 바늘이 손톱을 뚫고 들어갔다. 그럴 땐 펜치로 바늘을 뽑고 재봉틀 뚜껑을 열어 ‘미싱 기름’에 손을 담근다. 어릴 때부터 해오던 일인데, 신기하게도 염증이 생기지 않는다.
봉제공장의 형광등이 지그재그로 재봉틀을 비춘다. 재봉틀 옆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전구가 달려 노루발을 비춘다. 마지막 박음질을 마친 명자씨가 앞치마를 벗는다. 11시간, 긴 하루의 노동이 끝났다. 그녀가 와인 컬러 블라우스를 든다. 목에 세련된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예쁜 블라우스를 입지 못한다.
그녀는 방송에서 연예인이나 아나운서가 나오면 얼굴이 아니라 옷을 본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상상하고 머릿속으로 옷을 만들어본다. 재봉사라는, 옷을 짓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누구보다 강하다. 스스로 ‘재봉박사’라고 부른다.
“재봉사 셋이 모이면 경력이 100년이라고 해요. 기술과 노하우가 없으면 고급 옷을 만들 수 없어요. 그런 기술을 우리 사회가 무시하는 거죠.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우리 딸도 이 일을 하게 하고 싶어요.”
윗실과 밑실이 만나듯 더불어 사는 세상그녀의 큰딸은 어린이집 교사, 작은딸은 대학생이다. 지리학과에 다니는 딸이 ‘엄마가 거닐던 가리봉 5거리와 내가 거닌 지(G)밸리’라는 제목으로 리포트를 냈는데 교수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우리 사회가 힘들게 일하는 사람을 멸시하고 미싱사라는 직업을 무시하는데, 내 딸이 내가 만든 옷을 입고 거리를 걷고, 내 엄마가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엄마라고 얘기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그녀의 재봉틀은 오늘도 돌아간다. 윗실과 밑실이 만나듯,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그녀의 박음질은 오늘도 계속된다.
글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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