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멈추면 절망이 엄습한다고 배웠지만 절망의 한 끝이 또 다른 절망의 시작일 줄은 몰랐다. 지난 수년 동안 한반도 남단의 극우적 권력이 만들어낸 ‘비극의 날들’은 공동체 성원들을 끝없는 절망의 늪으로 내몰고 있다. 한국 지배 엘리트들의 기괴한 언설들과 초현실주의적 행위들은 ‘중단 없이 전진’할 뿐만 아니라 상승하고 증폭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막장 드라마 같은 국정화 비극</font></font>지난 11월5일 85살로 사망한 ‘독일의 양심’이자 대표적 비판 역사가인 한스 몸젠은 오래전에 홀로코스트의 파국을 설명하면서 ‘누적적 과격화’라는 말을 초들었다. 그는 나치 억압과 폭력의 정점인 홀로코스트를 히틀러의 ‘의도’로만 설명하기가 어렵고 ‘제3제국’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 관료와 상층 엘리트들의 집단적 동참이 낳은 결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몸젠은 지배 체제의 기능 담지자들이 앞선 단계와 시점부터 계속 누적했던 행위들의 가속화, 그리고 그런 역동적 행위들을 낳게 만들었던 상황과 논리의 상승 압박에 주목할 것을 권고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비극과 절망의 시간들이 파국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지옥의 묵시록’을 말하는 것은 섣부르다. 다만 한국 사회 지배 엘리트들의 언행이 무언가 고유한 과격화의 가속 장치를 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에 청명한 가을의 한 소극으로 끝났어야 할 역사 교과서 국정화 소동은 이제 거대한 비극적 서사시가 되고 있다. 마치 대하소설에서 보듯, 새로운 행위자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희극처럼 보이는 비극의 사건들이 꼬리를 문다. 절대다수의 역사가들과 시민들이 반대하고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국정화를 강행하는 권력자들을 빼고도 이 무대는 다양한 출연진으로 가득하다.
극우의 ‘잔다르크’로 등극한 자유경제원의 전투적 궤변가, 가스통은 두고 왔지만 역사학대회에 난입해 여전한 모습을 보인 정치깡패 할배와 할매들, 오랜만에 맛본 대중의 관심에 어쩔 줄 모르다 망신당하며 학문 인생을 종친 고고학자, 파괴와 폭력의 전통을 자랑하며 교과서 저술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군. 마치 쪽대본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에서 보듯, 역사 교과서 국정화 서사시는 막장에 대한 충격을 또 다른 막장으로 막으며 많은 사람들의 인내를 재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애초 권력이 전체 역사가들을 ‘종북좌파’로 몰며 진행되더니 급기야 국민 전체를 유아로 간주하는 데 이르렀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 ‘작자 미상’의 교과서를 통해 청소년과 국민이 ‘올바른 역사’로 훈육되어야 한다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 영국 역사가 마이클 하워드의 말대로, “자유주의 사회는 국민을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대하는 반면 전체주의 사회는 그러지 않는다”. 하워드는 국가가 국민을 ‘보육원 역사’에 가두는 것을 비판하며 역사가들의 올바른 역할은 국가의 신화에 도전해 그것을 타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font></font>지배 권력이 주입하려는 ‘보육원 역사’가 이데올로기로 물든 역사 신화라고 비판하며 학문의 자유와 해석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인식과 해석의 다양성 이전에 역사, 특히 현대사가 지니는 특수성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역사 교과서 논쟁이 주로 현대사를 놓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현대사는 역사 일반이 그런 것처럼 인식과 해석이라는 주관적 측면과 현실적 실재라는 객관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런데 객관적 실재로서 현대사는 여타 시기의 역사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
동양과 서양 모두 역사 서술의 출발은 애초 현대사였다. ‘역사의 조물주’ 사마천은 전국시대를 넘어 진과 한의 역사를 서술하며 당대사로 돌진했고,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에 대한 긴 서술 끝에 페르시아전쟁의 당대사에 매달렸다. 역사가가 자신의 시대, 즉 현대사를 서술하는 전통은 18세기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다 프랑스혁명을 비롯한 근대의 격변을 겪으며 역사 서술은 현대사와 멀어졌다. 삶의 변화 속도가 너무도 빨라 전통적인 현대사 서술로는 시대와 현실을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울러 19세기 중반 이른바 ‘과학적 역사학’이 정립된 뒤 문헌 사료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구술 자료 수집에 의거했던 기왕의 당대사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사료는 국가나 지배 엘리트들의 공식 문서라고 간주되면서 당대 문헌을 쉽게 확보할 수 없었던 현대사는 객관성을 의심받는 처지에 내몰렸다. 게다가 사건에 시간적으로 가깝다는 현대사의 장점이 이제는 시간적 간격이 부족해 비판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 양차 대전과 홀로코스트의 문명 단절을 겪고 그 뒤 냉전과 열전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역사가들은 현실에 대한 역사적 진단의 요구를 받았다. 1950년대부터 새롭게 등장한 ‘현대사’는 대중의 질문, 즉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등의 물음에 답해야 했다.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급격한 사회 변화가 20세기 들어 전쟁과 갈등, 또는 불안과 혼란을 유발하기에 정체성과 삶의 방향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폭발한 것이다. 아울러 이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시대를 특별하다고 간주하며 ‘위기’ ‘격동’ ‘전환’ ‘새로운 출발’ ‘이행’ 또는 ‘종말’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 특별한 파국과 위기, 또는 전환과 격동의 시대는 동시대인들에게 너무도 짙은 그림자를 남겨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과거’가 되었다. 현대사는 ‘역사가 되기 어려운 역사’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괴하고 일면적인 뉴라이트식 역사 </font></font>역사가들은 먼저 현대사 개념부터 명확히 정의해야 했다. 독일 역사가 한스 로트펠스는 현대사를 현재 생존하는 세대가 ‘공동으로 체험한 시기의 역사’로 규정했다. 현대사는 ‘우리 자신들에게 가장 가까운 시기의 역사’라는 의미의 당대사다. 모든 과거는 각 시기마다 당대사를 지니고 있고 우리 시대는 우리 자신의 당대사를 가지며 우리 시대의 (최소한 일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고 기억하는 역사가 현대사다.
그런데 현대사가 ‘사라지지 않는 과거’이자 ‘역사가 되기 어려운 역사’인 이유는 현대사의 기본적인 성격에서 기인한다. 현대사는 아직 종결되지 않은 복합적 과정의 역사이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시대사이기 때문이다. 현대사는 그 분기와 경계, 즉 시작과 전환과 종결의 시기 구분이 확정적일 수 없다. 같은 시대 서로 다른 세대에 따라 ‘가장 가까운 시기’도 조금씩 다르고 ‘공동으로 체험’한 내용도 꼭 일치하지만은 않고 스스로 규정한 ‘자신들의 시기’도 차이가 난다.
지역과 국가마다 근대와 현대의 구분 및 현대사로의 전환에 대해서도 고유하고 특수한 인식이 생겨났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1789년 프랑스혁명을 현대사의 기점으로 보았다. 영국은 오랫동안 1830년대 자유주의 개혁을 현대사의 시작으로 간주해왔고, 독일은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또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을 현대사의 출발로 본다.
일국 내에서도 관점에 따라 역사가들은 현대사의 분기점과 성격에 대해 다양한 이견을 드러낸다. 또 젠더적 관점이나 생태적 관심 및 소수자의 시각을 갖게 되면 주류 지배적 역사의 시기 구분과 성격 규정에 또 다른 결로 틈을 낼 수 있다. 20세기 주요한 역사적 현상인 파시즘과 공산주의 및 식민주의와 냉전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도 단선적이지 않아 현대사의 성격을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역사 전쟁의 참호에서 이탈한 듯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대사의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성격에 주목하면 뉴라이트식 역사 서사가 얼마나 기괴하고 일면적인지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일부 극우 지식인들은 세계 현대사를 ‘전체주의 대 자유’의 대결로 환원해 역사 십자군을 결성하려 한다. 그런 이데올로기적 선악의 도식으로 그들은 20세기 제국주의와 탈식민화의 역사를 지워버리려 한다. ‘전체주의 대 자유’의 이데올로기 대결로 현대사를 보면 제국주의에 대항한 저항 운동도 선별해서 재단할 수밖에 없고 탈식민의 과제 내지 ‘친일 부역’의 문제도 반공주의로 덮어버리게 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민주주의를 달성했다’라는 말의 허구 </font></font>현대사의 유동성 및 복합성을 은폐하는 또 다른 인식 틀은 ‘민주화와 산업화의 두 마리 토끼’론이다. ‘대한민국은 전후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유일한 국가’라는 신화는 흡인력이 세다. 정치적 경계를 넘어 사실상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왜 ‘토끼’는 딱 ‘두 마리’여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또 민주화와 산업화가 왜 같은 ‘토끼’인지는 더 가늠할 수 없다.
1945년 전후 파시즘과 식민주의를 극복한 국가들은 단순히 민주화와 산업화의 과제만 안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더 많은) 민주주의’의 과제는 널려 있었고 제도적 차원의 민주화도 후퇴하고 되치기 당하기 일쑤였다. 의회와 선거라는 민주제도의 일정한 확립 외에도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유와 권리의 확대 요구에 직면해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달성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허구인지는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도 충분히 확인된다. 더욱이 민주주의 정치문화의 과제는 종착점이 없다.
산업화의 역사 또한 경제성장으로 환원되면 일면적이고 기만적일 뿐이다. 산업화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다층적이고 비판적인 인식은 현대사에 필수불가결하다. 최근의 만성적 경제위기와 청년 실업의 문제가 1970년대 경제성장의 역사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불평등과 갈등 및 생태 문제 그리고 노동자들의 삶을 담지 못한다면 산업화의 역사는 아직 반쪽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다룬 산업화의 역사를 민주화 역사의 대축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일방적이고 오만하다. 그 대신 그것은 경제정책사와 기업사 및 노동사의 관점에서 다시 서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한편, 현대사에서 양성 (불)평등의 역사와 이주민들의 역사를 빼면서 ‘두 마리 토끼’론을 내세우면 다른 ‘토끼’들은 정말 슬프다. 독일의 역사 교과서는 심지어 청소년들의 역사도 빠트리지 않고 한 장에 걸쳐 따로 다루고 있다.
현대사를 단선적이고 선별적인 기준으로 서술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항상 역사 체험자의 경험, 기억과 접하기 때문이다. 현대사는 동시대를 체험한 시대의 증인들이 간직한 기억과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당대를 체험한 증인들의 기억과 경험은 현대사 인식의 ‘축복이자 저주’다. ‘축복’인 이유는 역사적 사건과 현상을 직접 경험한 이들의 고유한 기억과 인지는 그 자체로 중요한 자료와 정보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술적 역사 연구를 보조하며 새로운 관점과 연관관계에 대한 관심 및 방법론에 대한 숙고를 자극한다. 하지만 ‘저주’인 이유는 증인들은 사건의 ‘당사자’이자 ‘체험자’로서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을 드러내며 역사 해석을 둘러싼 ‘기억투쟁’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역사의 진리가 상대화되고 모든 인식이 그저 ‘당파적 입장의 차이’로 전락하기도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역사를 소통 가능한 언어로 서술하는 일 </font></font>그런 상황에서 현대사는 비전문적인 정치적 지식인이나 정치 지도자들, 특히 권력자들에 의해 너무도 쉽게 오용되고 악용된다. 이에 맞서 역사가들은 대중에게 그들의 역사적 경험이 지닌 연관관계를 해명해주며 생애사 인식을 보조해주어야 한다. 역사가들이 인습적인 정치적 역사 서사(비판적이라고 하더라도)에 갇혀 개별 인간들의 주관적 기억이 지닌 역사적 맥락을 쉽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소통 가능한 언어와 서술의 방식을 찾지 못하면 곧장 그 공백을 메우려 정치적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이 몰려든다.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 횡포를 통해 우리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적극 옹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현대사가 지닌 본래의 유동성과 복합성을 감당하고 살피는 법을 함께 배워야 한다. 그런데 역사가로서 나는 국정화 추진 세력들의 주관적 역사 인지의 맥락을 이해하고 드러내려고 노력하겠지만,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 나는 그들을 용서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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