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선언으로 참담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시만 읽히거나 시라도 읽어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청명한 하늘을 맞아 자연의 신비와 세계의 경이를 다룬 시로 201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말똥가리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집을 펼쳤다. 웬만해서는 사회문제를 다루지 않던 그조차도 역사는 비켜갈 수 없어 ‘역사에 대하여’라는 시를 남겼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참담한 마음에 읽은 시, ‘역사에 대하여’</font></font><font color="#991900">삼월 어느 날 바다로 내려가 귀기울인다.얼음이 하늘처럼 푸르다. 태양 아래 부서지고 있다.
태양이 얼음 밑의 마이크에 대고 속삭인다.
거품이 일고 부글부글 들끓는다. 멀리서 시트를 잡아채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이 모든 것이 ‘역사’와 같다. 우리들의 ‘지금’. 우리들은 그 속으로 내려가 귀기울인다.</font>
시인은 우리가 자연의 침묵에서 삶의 무게를 재듯 역사에도 조심스럽게 ‘귀기울여’ 삶의 깊이를 더듬을 것을 고했다. 네 번째 연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font color="#991900">급진과 반동은 불행한 결혼 속에 동거한다.서로를 갉아먹으면서, 서로에게 기대면서.
하지만 그 자식들인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모든 문제는 자신의 언어로 소리치는 법!
진실의 흔적을 따라 탐정처럼 길을 가라.</font>
그렇게 ‘탐정처럼 길을 가’고 있던 한국의 역사가들은 권력자들에 의해 ‘종북 좌파’로 낙인찍혀 지적 테러를 당하고 있다. 역사가들이 ‘부글부글 들끓는다’. ‘진실의 흔적을 좇는 탐정’들이 국난을 알리는 봉수꾼이 되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에서 독일의 경험이 자주 등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한국식으로 국정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는 나라가 거의 없으니,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정화의 근거로 분단 상황을 앞세웠다.
이를테면, 교육부는 10월12일 국정 전환의 이유로 “남북 분단 등 특수한 상황”을 내세웠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도 지난 10월9일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계속되는데 국가관과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한 일”이라고 논평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갈등을 막고 국론을 모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분단을 겪었고 통일을 이뤄 유럽과 세계의 모범국가로 발전하고 있는 독일은 역사교육에서 독일 민족사의 파국과 국가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민주국가 서독은 과거의 잘못을 숨기지 않았으며, 학문적 연구와 비판적 검토를 거친 역사 해석을 전달하며 논쟁을 통해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1945년 패전 뒤 전승국 점령 통치가 끝나고 1949년 동·서독 분단이 확정된 뒤 서독은 한 번도 국정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적이 없다. 먼저, 서독은 교육과 문화 정책에서 연방주의 원칙을 지켜 중앙정부의 통제를 배제했다. 각 주가 독립위원회를 결성해 검정이나 인가제를 통과한 교과서 가운데 2~6개의 교과서를 채택하고 학교 현장의 역사 교사들이 그중 하나를 결정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동독 역사 교과서, 파국적 역사교육의 전범 </font></font>이미 잘 알려졌듯이, ‘올바른 역사’를 내세워 하나의 단일한 국정 역사 교과서를 관철한 나라는 서독이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인 동독이었다. 동독의 역사 교과서는 나치 시기의 역사 교과서와 함께 국정교과서를 통한 파국적 역사교육의 전범이었다.
동독의 역사 교과서는 공산주의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나치의 희생자 범주에 유대인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또 ‘영웅적 반파시즘’ 신화를 만들기 위해 공산주의 투사들을 미화하며 사회주의 동독의 ‘성공’과 ‘자랑’을 역사의 법칙적 발전에 조응하는 것으로 강변했다. ‘분단’ 상황을 내세워 통합적 국가의식을 강제하려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이나 하는 짓임은 북한 또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급진’이라는 이름의 ‘반동’(북한의 지배자)과 자신들 빼곤 다 ‘급진’이라는 ‘반동’(남한의 권력자들)은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갉아먹으면서’ ‘동거한다’.
서독이 역사 교과서를 검정 내지 인가제로 발행한 이유는 단순히 공산주의 동독과의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치 시기 국정 역사 교과서의 범죄적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였다. 역사교육의 출발은 교과서 발행제다. 그렇기에 서독은 나치 이데올로기의 비판이나 민주적 정치제도의 확립만이 아니라 국가의 ‘통합적’ 질서, 특히 교육에 대한 중앙 통제 자체를 파시즘의 연속이자 민주주의의 적으로 보았던 것이다. 아울러 서독이 정치와 교육에서 ‘민주적 기본 질서’를 내세울 때 그 대상은 단순히 동독에 동조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주로는 나치 범죄를 변호하거나 다원성을 부정하는 극우 정당들과 파시즘적 민족주의 세력들이었다.
물론 검인정으로 발행된 서독의 역사 교과서가 초기부터 다원주의적 관점의 역사 해석과 비판적 서술을 충분히 담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 또한 1950~60년대 냉전적 대결의 분위기 속에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여전히 민족정체성을 강조하는 인습적인 역사 서술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가진다고 해서 곧장 다원주의적 역사 인식과 비판적 역사교육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초기 서독의 역사 교과서도 지배 엘리트 중심의 정치사나 독일인 정체성을 강화해 공동의 역사 의식을 창출하려는 내용이 압도했다. 즉, 서독의 역사 교과서도 초기에는 역사적 사실의 표준을 강조했기에 해석상의 논쟁이 있는 것은 피하는 등 단일한 ‘올바른 역사상’의 일방적 전승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은 권력으로부터의 압박이나 강제가 아니었다. 다만, 아직 독일 역사학계에서는 학문적 성과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고 교과서 집필자들의 한계가 극복되지 못했던 이유 때문이다. 다양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권력의 개입과 정치적 횡포가 아니라 연구와 토론을 위한 시간과 인내다.
그리하여 1968년의 교육개혁과 1969년 사민당으로의 정권 교체 뒤 서독의 역사교육은 1970년대 초반부터 성찰적인 역사 인식과 다양성, 인권과 민주주의 존중, 평화와 화해를 내용으로 하는 민주적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발전했다. 그 흐름은 1976년 보이텔스바흐 합의로 이어졌다.
당시 좌파는 ‘극좌 테러주의를 용인하며 지나치게 좌파적인 내용을 정치교육에 삽입했다’고 비판받았고, 우파는 ‘민족주의나 반공주의에 갇혀 민주주의 규범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민족의 과거사에 변호적이어서 민주적 시민교육을 방해한다’고 비판받았다. 정치적 갈등과 상호 비방이 심화되었다.
그러자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정치교육센터 대표인 지크프리트 실레 교수는 정치교육과 역사교육 담당자들을 보이텔스바흐라는 소도시로 초청해 일주일간 치열하게 토론하게 했다. 그 지난한 회의 끝에 원칙적인 내용상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1년 뒤인 1977년 한스게오르크 벨링 박사가 그 결과를 정리해 발표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논쟁은 학교에서도 재현되어야 한다’는 원칙 </font></font>먼저, 이 합의는 강압성의 금지를 선언했다. 학생들을 ‘올바른 견해’라는 이름으로 제압하려 하거나 학생들의 자립적인 판단 능력을 방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특정 견해를 강압하는 교조화는 민주주의 사회 교사의 자율적 역할과 학생들의 정신적 성숙에 모순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논쟁 재현 원칙이다.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쟁점들은 학교의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재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독일인들은 역사와 정치의 논쟁점들이 교육 현장에서 배제되고 선택과 대안적 사유의 가능성이 사라지면 특정 이념의 교조화로 가는 길이 더 열리는 것으로 보았다.
세 번째, 학습자 이익 상관성 원칙이다. 다시 말해, 학생들과 피교육자들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의 상황을 분석할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최대한의 합의가 아니라 최소한의 합의가 마련되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독일의 정치교육과 역사교육은 전통적인 훈육과 교훈 전달 수업이 아니라 비판적 분석과 다원적 관점의 소통 능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정치교육과 역사교육이 학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고(“학생 중심의 역사교육”) 민주적 시민의 비판적 능력을 전제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역사적 선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독재자이거나 민주주의자가 아니고 민주주의는 강제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기에 민주교육은 다양한 견해 속에서 비판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합의는 한편으로 교육학, 특히 역사교육과 정치교육에 대한 학문적 논의의 성과에 기초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좌우 진영의 이념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이루어진 정치적 합의였다. 그러나 그것은 학문적 합의의 선언도 아니었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정치적 결정도 아니었다. 다만 정치교육의 종사자들이 모두 참여해 가슴을 열고 토론한 민주적 토론 문화의 찬연한 성취였다.
그러니 정치나 교육의 소수 엘리트들에 의한 법적 협약보다도 더 큰 공명을 얻었다. 청소년 교육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분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토론이 전문가들의 성숙한 논쟁과 합의 문화를 통해 민주주의 정치 문화에 기여한 모범으로 간주된다.
한편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원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면 학생들은 서로 대립되는 역사 서술에 대해서도 더욱 개방적이 되고 ‘관점을 변화’시키는 훈련을 경험함으로써 비판적 능력을 함양하게 된다. 이런 교육 원칙에 따르면, 인식과 서술에서 논쟁적인 현대사의 주제들은 오히려 역사교육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그리하여 통일 전에도 서독 역사 교과서들은 현대사 비중이 대략 40%를 차지했고 근대사를 합치면 그 비중은 60%가 넘을 정도였다. 당연히 그것에는 동독 체제에 대한 설명도 많았다. 이때 일방적인 반공주의 체제 교육은 극복되었다. 서독의 교과서는 동독과 동유럽 공산주의를 다룰 때 특정 사건과 현상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그것의 과정을 다층적 연관관계 속에서 이해하도록 안내되었다. 그런 것이 민주사회의 힘이다. 아울러 바로 그것이 단일한 역사상을 주입한 동독을 이겨내고 통일 뒤 여러 곤경을 극복한 문명적 도구였다.
지금도 독일 연방정부는 정치와 사회 교육 그리고 역사교육에서 다원주의와 학습자 중심 원칙을 따른다. 그런 독일의 성과와 경험은 계속 퍼졌고, 많은 문명적 민주국가에서 차용되고 발전되었다. 2013년 8월 유엔에 발표된 ‘역사 교과서와 역사교육에 관한 보고서’의 권고는 이런 발전의 중간 결과다.
‘과거를 갖고 장난치는 것은 지식을 통제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면서 현재와 미래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가장 전형적인 술수다. 20세기 모든 종류의 독재는 역사를 조작하고자 역사 서술과 역사교육의 통제에 나섰다. 물론 권력이 곧장 독재로 빠지지 않더라도 역사의 정치적 악용과 오용의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 비판적 자유주의 역사가 토니 주트는 “상대적으로 많은 역사 지식을 갖춘 시민은 과거를 악용하여 현재의 실수를 가리려는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과거를 악용해 현재의 실수를 가리는 속임수 </font></font>그런데 그는 다른 곳에서 역사 인식이 “다른 이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은 곧 자신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전 글과 이번 글에서 나는 뉴라이트 교과서와 국정화 추진에 대해 ‘친일’과 ‘독재’ 딱지를 붙이지 않았다. 그런 위험을 부정하거나 몰라서가 아니다. 10년째 진영 간 대결로 묻힌 역사 인식과 역사교육의 쟁점이 너무도 많다. 정부의 국정화에 대해서는 완강히 맞서지만 현재의 역사 교과서들이 지닌 수많은 문제점에 마냥 눈감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엔의 역사교육 보고서를 다시 읽어보면, 현재의 검정 역사 교과서가 지닌 한계도 무수하다. 유엔 권고안은 자국사와 세계사와 지방사의 균형을 강조하지만 현행 검정교과서는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사나 시대별 배치를 넘는 다원적 관점의 서술이 전면적으로 도입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어림없다. 그것과 관련된 토론을 진행하려면 우리 역사가들은 다시 ‘탐정’이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봉수대에서 내려오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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