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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테러에 반대한다

역사교과서 논란은 진보·보수 갈등도, 기억투쟁도 아니야… 국정화는 다양성의 억압을 넘어 역사학계의 존재 부정
등록 2015-09-19 17:12 수정 2020-05-03 04:28
9월7일 역사교육연대회의가 주최한 ‘<초등 5-2 사회> 교과서 분석 결과 중간발표’ 기자회견에서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가운데)이 교과서의 오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9월7일 역사교육연대회의가 주최한 ‘<초등 5-2 사회> 교과서 분석 결과 중간발표’ 기자회견에서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가운데)이 교과서의 오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국가가 나서서 교육을 일괄 통제하는 것은 사람들을 똑같은 하나의 틀에 맞춰서 길러내려는 방편에 불과하다. 국가가 교육을 통해 효과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사람들을 그 틀 속으로 집어넣으면 넣을수록 국가 최고권력자들의 기쁨은 커진다. 그 결과 권력이 사람들의 정신을 장악하고 그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신체까지 지배하게 된다.” 영국의 근대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에서 국가가 권력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밀은 국가가 시민들 스스로 의견과 입장을 정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통해 보조해야지 직접 내용을 통제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1859년의 일이었다.

틀 속에 집어넣으면 권력자의 기쁨은 커진다

경고는 무시되었다. 독일의 나치 정권은 1933년 초 권력을 잡자마자 이미 5월에 ‘국민교육’을 위한 지침서를 학교 현장으로 내려보냈다. 가장 먼저 역사와 생물 과목이 나치의 칼끝에 섰다. 히틀러와 그의 부하들은 통합적인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을 강화하고 인종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독일인의 생물학적 우월성을 역사교육의 핵심으로 삼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역사교육을 위한 정권의 지침과 교안들이 무시로 학교 현장에 전달됐다. 그들은 아리아 인종의 우수성을 부각하기 위해 독일인 영웅들을 신화화했다. 억압적 지배는 정당화됐고 전쟁과 파국을 위한 정신적 준비가 마련됐다.

19세기 중반 영국 자유주의 사상가의 경고와 20세기 전반 독일 파시스트들의 실천을 21세기 한국에서 다시 끄집어올려야 하는 것은 슬프고 괴롭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는 이미 비판이 높다. 심지어 일부 보수 우파 언론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우물거리고 있다. 과연 국가 최고권력자가 그 ‘기쁨’을 포기할까?

마지막 기대까지 저버리고 정부가 결국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도입하면 그 뒤는 어떨까? 아마 다음 단계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성실히 가르치지 않는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감시와 처벌일 것이다. 사실 1930년대 나치들도 교과 치침과 보조 자료를 통해 역사교육을 옥죄며 역사의식을 ‘통합’했지만 단일한 국정교과서를 전국적으로 도입하지는 못했다. 1939년부터 독일 전역에는 앞에서 말한 지침에 기초한 역사교과서들이 발간됐다. 그럼에도 그것은 각 지역과 지방의 고유한 역사를 반영한 여러 판본의 교과서였다. 그러나 나치는 이미 그 전후에 체제에 동조하지 않는 교사들과 유대인 교사들을 학교에서 쫓아내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했다. ‘통합’을 지향하며 단일한 관제적 역사상을 강제하는 논리가 교과서 도입에서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전국의 대다수 역사 교수들과 교사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고 하니 국정화가 도입되면 권력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까?

물론 권력자들이 국정 교과서를 도입하는 ‘기쁨’을 포기한다고 해서 상황이 종료될 일도 아니다. 현실의 불만을 숨기고 미래의 전망을 막으려는 자들은 과거의 미화와 지배 전통의 정당화를 포기하는 법이 없다. 국정교과서 도입을 이끄는 세력들은 한국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좌파’들에게 장악됐기에 ‘다양성이 침해됐다’고 주장한다. 서양사학자 출신인 이인호 KBS 이사장 같은 이들은 현 역사학계의 중심 세대 전체를 ‘종북 좌파’라고 낙인찍기를 일삼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계의 현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 및 서술상의 쟁점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민중’과 ‘민족’에 대한 인식 관점도 상당히 달라 논쟁은 수차례 지속됐다. 사회사와 일상사와 구술사 등이 역사학의 주요 연구 관점이자 서술 경향으로 들어선 지도 좀 되었다. 분단과 전쟁, 남북한 사회에 대한 역사 인식에서도 새로운 시각과 문제제기가 뚜렷하다. 세대가 다르고 시대가 변하니 연구는 깊고 지평이 열렸다.

이를테면, 학술잡지 은 2012년 가을 ‘100호 특집’에서 다양한 전공 분야의 역사학자 14명에게 7개 문항으로 된 ‘역사를 묻는다’를 던져 답하게 했다. 그 답글들을 보면, 비판적 역사학자들 내부의 관점과 입장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뉴라이트 지식인들처럼 한국의 역사학계가 하나의 단일한 연구집단으로 결속돼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마타도어에 불과하다. 더구나 자유주의 사회에서 역사학계 전체를 ‘좌파’라고 낙인찍어 부정하는 것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지적 테러다.

극우 지식인들의 정치적 린치
조지 오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1984>의 한 장면. 한겨레

조지 오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1984>의 한 장면. 한겨레

결국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수년간의 갈등은 진보와 보수의 학문적 대결도 아니고 흔히 말하는 ‘기억투쟁’도 아니다. 그것은 역사학자들의 집단적 학문 성과에 대해 일부 극우(보수) 지식인들이 권력을 앞장세워 전개하는 정치적 린치에 가깝다. 다시 말해, 그것은 민주주의적 다원주의와 인식 지평의 확대 또는 이질적인 관점과 방법론의 다양성이 낳은 연구 성과들이 정상적으로 경합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과정이 아니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학문공동체에서 진중하게 토론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인식 절차를 건너뛰고 곧장 권력을 활용하며 집단적 궐기에 매달린다. 이에 조응해 지배 권력은 소수의 극우적 보수 학자들을 내세워 지배의 정당화를 위한 담론과 서사를 유포하고 있다. 결국 국정화 추진으로 이어진 이 몇 년의 교과서 논쟁은 진보와 보수 사이의 학문적 경합이나 해석상의 경쟁 대결이라기보다는 소수 퇴행적 지식인들이 권력을 내세워 학문공동체와 교육현장에 가하는 일종의 공포정치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단순히 역사 인식의 다양성에 대한 억압을 넘어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에 대한 전면 부정이자, 심지어 역사학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에 가깝다.

기억은 그 자체로 역사가 아니다. 기억은 역사 연구에 기여하고 자극을 주지만 그것만으로는 곧장 공동체의 역사의식이 될 수가 없다. 일부 노년 세대는 자신들의 특별한 생애사적 출세 경험이나 이데올로기화한 정치 경험을 곧장 뒷세대의 집단적 정체성으로 삼고자 한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노년 세대 중 가장 퇴행적인 집단들이 자신들의 주관적 기억을 어린 학생들에게 ‘정통 역사’로 강제로 주입하는 정신적 폭력으로 귀결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노년 세대 중 일부가 자신들을 ‘건국 세대’로 규정하며 국가에 대한 긍정적 역사 기억에 매달리는 것을 이해 못할 이유는 없다. 1945년 이후 파시즘과 식민화로부터 벗어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초기 세대는 ‘폐허 속에서 국가를 만들고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애사에 대한 기억을 ‘국가의 성공’이나 ‘민족의 광휘’와 일치시키고 싶은 욕망을 갖기 쉽다.

그러나 그런 기억과 욕망은 학문적 분석과 소통의 대상이지 다음 세대에게 강제하고 주입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더구나 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이 학문공동체를 부정하고 권력을 동원해 자신들의 주관적 기억과 해석을 공동체 전체의 역사의식이나 정체성으로 관철하는 것은 전체주의에서나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우리 사회에는 그런 긍정적 기억을 갖기 어려운 사람이 많다. 그것은 반드시 한국 현대사에 대해 부정적 기억을 가져야 한다는 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거듭 역사는 기억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역사교과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특정 기억에만 사로잡힐 이유가 없다. 오히려 역사교육에서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기억의 맥락과 근원을 드러내 그것을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 역사나 역사교과서는 기본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삶이 놓여 있는 자락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역사의 맥락과 자신의 삶이 놓인 연관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은 비로소 현재를 밝히고 미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과서 국정화 추진 세력들이 제시하는 ‘올바른 역사관’은 조지 오웰의 소설 의 빅브러더 국가 오세아니아가 내건 ‘전쟁은 평화, 자유는 속박, 무지는 힘’이라는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기괴한 개념과 용어로 현실과 역사를 뒤틀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배 권력과 국정화 추진 세력들이 대한민국의 ‘진리부’에 내걸고자 하는 역사상의 구호는 ‘식민은 근대, 분단은 건국, 독재는 부국’이다. 그들은 제국주의 억압과 폭력, 단일국가 건설의 실패로 인한 민족 분단 그리고 민주주의 압살과 불평등을 ‘근대-건국-부국’이라는 국가 발전의 서사로 덮어버렸다. 그것으로 지배적 역사에 대한 긍정적 환상을 유포한다.

‘올바른 역사관’의 올바르지 않음

그것은 정치공동체에 대한 시민들의 소박한 결속과 연대의식을 악용해 국가주의 신화로 끌어올리는 거대 서사다. 또 그 서사 담론을 관철하기 위해 그들은 ‘국가의 성공과 영광을 부인할 테냐’며 공동체 전체를 협박한다. 한국 현대사의 여러 사건과 과정에 대한 그들의 위선과 변명, 허세와 궤변을 제외하더라도 ‘성공 신화’는 이미 역사가 아니다. 요동지시(遼東之豕)가 아니라면, 대한민국의 일정한 영역에서 역사적 성취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파국과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와 현실을 보고서도 ‘성공’이라고 자랑하며 깃발을 흔들어대는 것은 경박하며 기만적이다.

역사는 성공과 실패로 딱 나눌 수가 없다. 다층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또 늘 혼재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고려나 조선은 ‘성공한 역사’인가, 아니면 그저 ‘실패한 역사’인가? 일본 현대사는 성공일까? 폴란드 현대사는 실패인가? 현대사의 발전은 유동적이고 열려 있다. 단일한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 현대사의 흐름은 끊임없이 변하고 재해석되기에 성공이니 실패라는 이분법적 판단이 들어설 겨를이 없다. 또 ‘성공 신화’와 영웅적 서사에 갇히지 않아도 일정한 영역의 역사적 성취를 충분히 살필 수 있다. 물론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복잡한 실타래들, 즉 성취들의 역설과 불연속, 전환과 엉킴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권력이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치폭력과 부정의의 역사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오랜 정치적 악용은 20세기 파시즘과 사회주의 및 개발독재 국가들에서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이미 1970년대부터 국제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어떤 형식과 과정으로든 국가권력이 특정 역사상을 강제하고 공동체의 희생과 파괴를 주변화하거나 부인하는 경향에 비판적이었다.

요컨대, 국제 역사학계는 역사교육의 목표가 더 이상 긍정적 역사상에 기초한 정체성 창출이 아니라 부정적 유산에 대해 더 주목해야 함을 강조했다.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배제로 겪은 파괴와 희생이 역사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영역으로 간주됐다. 국가나 지배 엘리트에 의한 폭력과 굴절의 실상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역사는 한낱 신화로 전락하며 기억은 다시 이데올로기로 물든다. 그렇기에 역사교육은 개방적이고 다원주의적인 가치의 고양과 함께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사유와 판단 능력의 함양을 놓칠 수 없다, 이때 그것은 ‘체제 부정’이니 ‘자학사관’이니 ‘후세를 패배자로 만드’니 하는 기괴한 억설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정리함으로써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공동체는 비극적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더 나은 현재와 새로운 미래를 찾아나갈 수 있다.

역사정책, 정치가들의 선의에 맡겨선 안 된다

역사교육 문제가 단순히 ‘권력자들의 악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교육은 ‘역사문화’(Historical Culture)나 ‘공중역사’(Public History)의 일부로서 전문적 역사 연구의 성과를 정치와 문화의 영역에서 활용하는 실천의 일부다. 집단적 역사의식과 역사문화의 형성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역사정책’을 아마추어리즘에 빠진 ‘정치가들의 선의’에 맡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정치의 횡포는 ‘뒷문’으로도 얼마든지 들어오는 법이다. 또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졌지만 형편없는 역사 전시나 엉터리 기념물도 널렸다. 그런데 역사문화와 역사정책에 대한 새로운 논의는 일단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을 막은 뒤에나 가능하겠다. 역사문화와 공중역사 등의 개념과 이론을 둘러싼 토론이 전혀 진전되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이다. 수년째 이 교과서 논쟁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우리는 낡은 ‘역사 전선’의 참호에서 장대비를 하염없이 맞게 될 것이다. 상황은 중하다.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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