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11월3일 한국사 국정교과서 확정고시를 강행했다. 같은 날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신문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에 이어 국정미디어를 만들고자 인터넷신문 등록제를 사실상 허가제로 바꾼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인터넷신문의 평균 기자 수 4.5명2014년 말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에 등록된 인터넷신문은 5950여 개다. 등록제를 시행한 첫해인 2005년 286개에 비해 10년 사이 20배 이상 늘었다. 기존 신문법에 따르면 인터넷신문은 취재·편집 인력을 3명 이상 고용하면 운영이 가능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취재·편집 인력을 3명에서 5명으로 늘리고 인터넷신문 등록 신청시 제출하던 ‘취재 및 편집 담당자 명부’ 대신 상시 고용을 증명할 수 있는 ‘국민연금·건강보험 등에 대한 가입내역 확인서’ 제출을 명시했다.
쉽게 말해 앞으로 정규직 5명을 고용하지 못하면 언론이 아니다. 이미 등록된 인터넷신문은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령 적용 대상이 된다. 문화부는 “인터넷신문 등록을 위한 최소 상시 고용 인원을 증원하여 인터넷신문의 기사 품질 제고와 함께 언론매체로서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하여 인터넷신문 난립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3명에서 5명으로의 변화는 얼핏 대단해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2014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신문의 평균 기자 수는 4.5명이다. 정부가 ‘유사언론’과 ‘언론’의 기준을 5명으로 잡은 점이 절묘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도형래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사무총장은 “연매출 1억원 미만 사업자가 5명의 상시 인력을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매출액 1억원 미만 인터넷신문은 전체의 85.1%다. 이번 시행령이 인터넷신문의 85% 이상을 정리하는 법안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의 등장 과정은 심상찮다. 올해 초 대표 출신 민병호씨가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황호택 논설주간은 6월11일자 칼럼에서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설립에) 청와대 민병호 뉴미디어 비서관의 막후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외부 강연 등에서 ‘인터넷 매체 문제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정리해놓고 청와대를 나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고 적어 파문이 일었다.
이후 7월23일 한국언론학회가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하는 ‘인터넷뉴스 생태계의 현안과 개선방향’이란 세미나에서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이 “등록제의 맹점을 이용해 인터넷신문이 사이비 언론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 기획 기사를 내세워 반강제로 광고를 유치하는 유사언론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일부는 언론 활동보다는 세제 혜택이나 언론기관 부설 평생교육시설 운영 등 수익을 위한 수단으로 인터넷신문 등록제를 이용하고 있다”며 등록제 강화를 제안했다.
“자본 없는 작은 언론사는 사이비인가”김위근 위원은 이날 세미나에서 “최소 인력 3인으로는 언론매체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없다”며 등록 가능 최소 인력을 5인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상시 고용 증명을 위해 건강보험 등 명확한 입증 자료 제출을 (사업자에) 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당시 언론계에선 세미나가 문화부 주도로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한 달 뒤인 8월21일, 문화부는 신문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속전속결이었다.
도형래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사무총장은 “어떤 법이든 시행하기 전에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문화부는 입법예고 전 단 한 차례도 우리 의견을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반면 광고주들은 환영했다. 곽혁 한국광고주협회 상무는 “인터넷신문의 증가로 광고 집행을 두고 갈등이 있다. ‘기업 조지기’를 수익모델로 삼는 매체가 증가하고 있다”며 등록 기준 강화에 찬성했다. 광고주협회는 등록 기준을 10인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신문 사업자의 91.6%는 9인 이하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은 당장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언론위원회는 “유사언론 행위는 매체 규모에 따라 발생 가능성이 달라진다고 단정할 수 없어, 수단의 적합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광고주협회가 2015년 사이비 언론에 의한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광고 협찬 강요 등 유사언론 행위는 대부분 5인 이상 매체에서 벌어졌다.
민변 언론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강혁 변호사는 “결국 자본력에 따라 언론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사회적 소수자의 언론사 운영 기회를 박탈하게 돼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강혁 변호사는 “시행령으로 언론 등록 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제한 규정은 시행령이 아닌 법률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언론사 등록 기준을 완화하는 세계적 추세에 비춰볼 때 등록 기준 강화는 시대와 역행하는 방침이다. 4명이면 ‘유사언론’이고 5명이면 ‘언론’이란 발상도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스타트업 미디어 의 최용식 대표는 “2명이서 을 운영하고 있지만 피키캐스트라든지 대형 플랫폼과 코워킹도 했다. 아주 작은 매체지만 업계에서 인정받고 취재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하며 “현실적으로 2명으로도 잘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언론사라고 할 수 없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최용식 대표는 “콘텐츠는 창업 업종으로 유망한데 정부가 창조경제를 이야기하면서 콘텐츠 업종의 토양을 짓밟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주류 언론과 정치 권력의 공모유지웅 편집장은 “앞으로 미등록 언론이 되면 유사언론이 되고 기자 사칭이 된다. 관에서 취재를 거부할 수 있고 반론을 들을 수도 없게 된다”며 “21세기에 기자 4명이면 사이비고 5명이면 언론으로 인정하겠다는 발상의 근거가 도대체 뭐냐. ‘기레기’ 문제가 기자 머릿수의 문제인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지웅 편집장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 없으면 기자를 3명 운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이걸 국가가 재단하나”라고 비판했다.
김정대 발행인은 “인터넷신문을 통제하려는 사람들은 인터넷신문 종사자를 벌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지역에서 억울하고 하소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지역 인터넷신문이 대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항변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며 1인 미디어와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는 상황에서 인원수로 언론을 규정하겠다는 발상은 결국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 토론회에서 “세상이 엄혹하면 늘 기자의 자격을 물었던 것 같다. 자격 시비 의도는 정치적 의도도 있고, 언론권력과 정치권력의 공모관계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 뒤 “정파성에 따라 갈등을 부추기고 오보를 주도해온 주류 언론이 질 낮은 저널리즘에 대한 책임 전가용으로 인터넷신문의 저질성 시비를 거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김철관 한국인터넷기자협회장은 “소수 언론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언론 자유가 척박해진다는 것이다. 시행령이 통과되더라도 헌법소원을 통해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인터넷신문의 ‘난립’으로 온라인 영향력이 오프라인에 비해 떨어지는 주류 언론이 온라인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주류 언론의 프레임이 자주 노출되길 바라는 정부·여당과 수많은 인터넷신문의 광고 요구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기업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뷰징을 비롯한 온라인에서의 저널리즘 황폐화에 대한 책임을 인터넷신문으로 돌리고 온라인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기존 언론권력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 통과와 함께 봐야 할 곳이 지난 10월 출범한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다. 이곳은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와 제휴를 맺고 있는 모든 언론사의 뉴스 검색 진입과 퇴출을 결정하는 조직이다. 연말까지 신규 제휴 매체 평가 기준과 방식, 저품질 뉴스 판단 기준 등을 마련할 방침이다. 평가위는 첫 회의에서 입점기준소위원회와 퇴출기준소위원회를 구성했다. 앞으로 5명 미만 언론사가 ‘언론 아님’ 통보를 받게 되면 뉴스제휴평가위는 이를 퇴출 근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저널리즘 황폐화 책임, 작은 언론에 돌려인터넷신문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5월 기준 포털 사이트 네이버 제휴 언론사는 474곳, 다음 제휴 언론사는 793곳이다. 제휴 언론사가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대폭 줄어들 경우, 트래픽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보는 쪽은 보수 의제를 확대재생산하는 주류 언론이다. 민변 언론위원회는 “정권의 통제가 어려운 인터넷신문 영역의 위축을 통해 보수세력이 주도하는 종이신문 영역의 영향력을 유지·강화하고 정권에 보다 유리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려는 시대착오적 의도가 깔린 게 아닌가”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같은 의혹은 조·중·동을 비롯한 주류 언론에 한 줄도 실리지 않고 있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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