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언’이라는 말에는 여러 개의 얼굴이 섞여 있다. 한 시대가 끝나버린다는 절망과 공포, 그 뒤에 새로운 시대가 올지 모른다는 기대와 열망 같은 것들. 지금 미디어 시장에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같은 말들이 떠돈다. 잡지의 종말, 신문의 최후, 사라질 직업군으로서의 기자…. 신문과 잡지의 종말을 말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독자들은 안녕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변신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2월 발표한 ‘2014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신문열독률은 2002년 이래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종이신문 및 고정형·이동형 인터넷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신문을 접하는 ‘결합열독률’은 2013년 76.4%에서 2014년 78%로 소폭 증가세를 보였다.
그런데 종이신문을 통한 열독률(33.8% →30.7%), 고정형 인터넷을 통한 열독률(50.7%→47.7%), 이동형 인터넷을 통한 열독률(55.3%→59.6%) 등을 구분해보면, 모바일로 기사를 접하는 비율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PC와 모바일이 서로를 보안하며 공존하는 체제였다면 앞으로는 모바일 중심의 플랫폼이 압도적일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구글은 지난해 12월4일 대만에서 열린 ‘모바일 퍼스트 월드 콘퍼런스’에서 PC에서 모바일로 옮겨온 ‘모바일 퍼스트’를 넘어 모바일로 대부분의 뉴스를 접하고 비즈니스를 해결하는 ‘모바일 온리(only)’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B. J. 포그(미국 스탠퍼드대학 설득기술학연구소 디렉터)는 에서 휴대전화는 가장 개인적인 도구로서 다른 어떤 매체보다 인간의 행동과 생활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 온리 시대’ 짧아야 산다?그렇다면 우편함에서 이 잡지를 꺼내들 독자는 화석이 될 유물을 미리 발굴하고 있는 걸까. 지면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던 우리는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까. 모바일 온리 시대가 온다면, 오늘의 잡지가 다뤘던 긴 호흡의 뉴스, 사건과 사고의 이면을 다루느라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이 발붙일 곳은 어디일까.
기성 언론이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나면서 먼저 꺼내든 카드는 ‘짧은 글’이다. 아무리 복잡하고 긴 뉴스라도 일단 이해하기 쉽고 간명하게 요약돼야 한다. 짧아야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뉴스의 본질이기도 하다.
대다수 국내 언론사가 제공하는 ‘카드뉴스’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하나의 주제를 잘 요약한 이미지와 함께 스토리텔링을 담아 압축한 형태로 뉴스를 제공한다. 미국 의 ‘카드스택’(Card Stack)이 그 시초다. 질문과 답변의 형태로 간략하게 정리된 뉴스가 주제별로 쌓인다.
‘스노폴’(Snowfall)로 디지털 공간에서 매혹적인 장문의 기사를 써내는 데 성공한 도 지난 4월, 애플워치의 출시를 겨냥해 ‘한 줄 뉴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애플워치의 글랜스(Glance·한눈에 보기) 기능에 맞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기존 신문이 제공하던 주제별로 분류한 짧은 뉴스를 내보낸다는 것이다. 사용자는 손목에서 반짝이는 한 줄짜리 뉴스를 흘끔 보고, 관심 있는 내용이라면 탭을 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넘어가 뉴스를 볼 수 있다. 사용자 스스로 편집자가 되어 본인이 읽을 뉴스를 선별하는 셈이다.
긴 글이 꼭 양질의 뉴스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요약된 단문이 가지는 한계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짧은 글 뒤에 숨은 구체적 이야기는 영영 알 길이 없다. 짧은 글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현상은 지속될 것인가. 모바일 기기가 좀더 진화하면 긴 글에 대한 갈망도 생기지 않을까.
강정수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과의 전화 통화에서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강 전문연구원은 “한국에서는 아직 롱폼 저널리즘(long-form journalism)을 구현한, 모바일 스토리로 읽힐 만한 콘텐츠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산 주체가 눈에 띄지 않으므로 수요도 점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도 짧은 글의 위력을 알고 있다. “스마트폰을 쓰면서 글을 읽는 행위의 지속 시간이 나도 모르게 짧아지고 있다. 자투리 시간에 읽는 것이 몸에 배다보니 독서 형태가 조금씩 바뀌는 측면이 있다. 야구로 치면 선발투수 체질이 구원투수로 바뀌는 것 같다. 간단하게 요약해주는 카드뉴스와 같은 보도 형태는 분명히 통하는 측면이 있다.”
다만 김 소장은 ‘긴 글’의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카드뉴스 등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측면이 있다. 모바일이라고 해서 긴 글을 굳이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글쓰기라는 것이 짧은 글, 요약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짧은 글의 한계, SNS와 포털의 시도갈 곳 잃은 긴 글은 어디로 가야 하나. 저널리즘의 형태는 아니지만 모바일에서 긴 글이 통하는지에 대한 실험은 일상의 영역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모바일 퍼블리싱 플랫폼인 ‘포스트’와 ‘브런치’를 각각 제공한다. 두 서비스는 미국의 웹 출판 플랫폼인 ‘미디엄’을 벤치마킹했다. 2012년 서비스를 시작한 미디엄은 트위터의 공동창업자인 에번 윌리엄스가 만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가장 짧은 글을 지향했던 이가 어쩌면 짧은 글의 한계를 가장 잘 알았을지도 모른다.
미디엄은 트위터나 페이스북보다는 길게, 블로그보다는 좀더 텍스트 중심으로, PC 중심이 아닌 모바일에서도 사용이 용이하게 제작된 플랫폼이다. 필자를 팔로어하고 추천, 북마크를 할 수 있다는 점, 해시태그를 통해 특정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다는 점은 기존의 SNS와 유사하지만, 소통이나 관계 형성보다 길게 말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고 정보를 나누는 방식을 지향한다.
미디엄에서는 해시태그로 관심 주제를 검색하거나 미디엄이 제시하는 세분화한 주제에 따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의 글을 모아 읽을 수 있다. 예컨대 미디엄이 제시한 해시태그 중 ‘선거’ ‘구글’ ‘레시피’ 등을 클릭해 들어가면 각 주제와 관련해 인기 있는 필자들을 리스트업 해준다.
미디엄은 기존 블로그에 있는 스킨이나 사이드바 같은 복잡한 기능을 걷어냈다. 작은 화면의 모바일에서는 플랫폼을 꾸미는 세분화된 기능은 의미가 없게 마련이다. 최소화한 기능은 글을 쓰고 업로드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배치돼 있다. 백지 같은 종이에 글을 쓰고 필요에 따라 이미지를 더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재미있는 점은 읽을 때 두드러진다. 글을 읽다가 어떤 부분에 대해 필자에게 의견을 전하고 싶을 때, 문장을 드래그해서 멘트를 남길 수 있다. 이 멘트는 필자 혹은 같은 부분에 의견을 남긴 사람에게만 보이고, 필자의 선택에 따라 글을 읽는 모두에게 공개될 수도 있다. 책을 읽다 밑줄을 치고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던 기존의 독서 방식을 차용했는데 여기에 저자까지 호출할 수 있는 기능인 셈이다.
미디엄을 국내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국산화’한 사례인 네이버 포스트와 다음카카오의 브런치는 어떨까. 먼저 출시된 네이버 포스트는 긴 글과 짧은 글 가운데 어느 한 쪽에 비중을 둔 서비스라기보다는 모바일에서 어떻게 하면 읽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에 고민의 방점이 찍혀 있다.
포스트가 제공하는 글쓰기 템플릿은 종이에 앉혔던 글들이 디지털 세계로 넘어오면서 시도됐던 여러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퀴즈형, 음원 삽입, 문답 활용, 웹툰과 웹소설 방식의 차용, ‘~하는 방법’ 등 주제별 노하우를 정리할 수 있도록 만든 템플릿 등이 눈에 띈다.
지난 4월에는 이용자들의 관심사와 취향이 탈카테고리화되는 현상에 주목해 태그 중심으로 사이트를 개편했다. 사람들은 이제 음악·여행·과학 등과 같은 기존 카테고리를 넘어 뮤직페스티벌·제주도·미생물 등 아주 세분화한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모인다. 포스트의 게시물들은 이렇게 세세한 주제로 나뉜 수백 권의 잡지와 같다. 네이버 홍보실 홍경표 대리는 “기존 잡지와 크게 구분할 지점이 없다”며 짧게 쓴 글도 모이면 하나의 주제로 응집하고 연속성을 가지도록 시리즈 형태로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독자와 태도와 습관을 고려해 스며들다하지만 모바일에서 긴 글, 혹은 연속성이 있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은 한국에선 아직 낯설다. 더불어 포스트에 게시된 콘텐츠의 품질도 기존 종이 매체로 발행되는 잡지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기존 출판사나 기업 등이 단순히 모바일에서 홍보용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포스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콘텐츠 강화에 나섰다. 강원도, 제주도 등 여행을 테마로 정해 한두 달씩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콘텐츠를 쌓고 이 가운데 선발된 작가들에게 창작지원금을 제공하고 에디터를 육성해가는 방식이다. 포스트는 기존에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를 쌓아왔던 네이버의 행보가 그래왔던 것처럼 정보를 촘촘하게 모아나가는 플랫폼이다. 홍경표 대리는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느는 수준은 아니지만 콘텐츠가 쌓이고 있다. 아주 세분화한 분야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고급 정보, 특정 주제에 관한 정보를 총망라한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 6월22일 베타서비스를 시작한 다음카카오의 브런치는 미디엄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아주 유사하다. 다음카카오 커뮤니케이션 파트 임선영 매니저는 “기존의 블로그는 공간을 꾸리는, 집을 짓는다는 개념이 컸는데 브런치는 그걸 벗어나 하나만 포스팅해도 한 권의 잡지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블로그는 개인이 꾸미지 않으면 휑해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브런치는 글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편집을 최소화한,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것들은 아예 제공하지 않고, 어떻게 붙여도 정돈돼 보이는 것”이 차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긴 호흡이 강화된 브런치는 디지털적이면서 오히려 아날로그적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브런치 이용자들은 디자인이나 문화 쪽 콘텐츠를 쓰는 작가가 많은 편이다. 임 매니저는 “블로그, 티스토리 등의 경우 정보기술(IT)이나 테크, 비즈니스 쪽 필자가 많았는데 브런치는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고 콘텐츠 하나로만 승부할 수 있어서인지 이런 플랫폼을 기다렸던 필자들이 많이 모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제까지 모바일에서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은 PC 화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 혹은 PDF 자료처럼 종이 지면을 고스란히 옮겨와 단순히 ‘본다’는 수준의 읽을거리가 많았다. 모바일은 가로로 놓인 PC 화면 또는 펼쳐서 읽어내려가는 종이책 등과는 사용법이 완전히 다르다. 임 매니저는 “플랫폼 환경에 집중해 같은 글이라도 브런치에 있을 때 더 읽고 싶은 콘텐츠가 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한다.
포스트의 정보 축적과 전문 에디터 육성, 브런치의 읽히는 공간으로서의 플랫폼이라는 화두는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다. 모바일 중심 체제에서 독자와 소비자는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세분화·전문화한 정보를 원했고, 이런 것들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모바일 퍼블리싱 플랫폼들은 독자의 태도와 습관을 고려해 이들의 시공간에 스며드는 전략을 취했다.
매일 먹을 밥상 고민이 우선언론이 추구하는 정보는 일상적 이야기를 넘어 뉴스로, 뉴스를 넘어 보편적 진실로 나아간다. 디지털 공간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경쟁하며 언론은 어떻게 독자들을 매혹할 수 있을까.
김익현 소장은 2012년 의 ‘스노폴’ 이래 국내 언론이 비슷한 시도를 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이것이 정답이나 돌파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노폴’이나 (의) ‘파이어스톰’ 등 디지털 기술이 구현된 인터랙티브 기사는, 예컨대 명절에 한 번씩 할 수 있는 잘 차린 음식과 같다. 일회성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돈을 들이면 웬만한 회사는 잘할 수 있다. 이런 (인적·물적 투자가 필요한) 기사는 가난한 집에서 할 일은 아니다. 일회성 프로젝트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잘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돈을 많이 들여야만 혁신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길고 짧은 글을 떠나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정수 전문연구원은 가장 기본적인 고민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영미권에서는 다큐멘터리 같은 글쓰기 방식을 택한 롱폼 저널리즘, 호흡이 긴 스토리텔링이 있는 글들이 많이 읽힌다. 밤 10시 이후(일과를 마치고 비교적 연속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시간)에 소비되는 글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강 연구원은 전통 언론의 분발도 주문했다. “한국에서는 인터랙티브 기사 열풍이 불더니 거기서 끝이었다. 모바일 기기의 진화와 관계없이 아직까지 한국에는 모바일에 맞는 롱폼 저널리즘 자체가 없다. 부정적으로 말해 죄송하지만, 일단 생산이 돼야 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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