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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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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것

등록 2015-02-08 13:11 수정 2020-05-03 04:27

[무서운 게 있기는 있나보다.] 보건복지부가 3년 동안 준비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1월29일 발표하려다 말았다. 정부 정책은 손바닥이 아니어야 한다. 단순하고 간단하게 하나의 원칙만을 따져보자. 하나의 작은 정책이 있기까지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수많은 공무원들은 현황과 정책 효과를 따지기 위해 끝도 없는 계산을 이어갔을 것이다. 일부의 과정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 비용,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비용을 들여 정부 정책을 마련했더라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 등을 떠올려보면. 그러나 이번 사안은 결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덜 버는 많은 사람은 덜 내고, 더 버는 일부 사람은 더 내도록 건보료를 손보자는 게 골자다.

[박근혜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는 계층의 빠른 이탈. 청와대 호랑이가 곶감보다 무서워하는 것의 실체인 것인가? 여론조사기관마다 다르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 일로다. 뭐 하나 도와주는 것이 없다. 아니 애초에 도와줄 이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시작했어야 할 일이다. 세금은 더 걷지 않고 복지를 늘리겠다는 꿈에 허우적대다 자초한 길이다. 담뱃값 인상·연말정산 대란으로 부글대기 시작한 시민들의 화에 기름을 붓고 싶지 않았을 터. 기름 대신 물 붓겠다고 고른 게 건보료라니. 대형 산불이 저 멀리 덮쳐오는데, 발등의 불만 끄느라 요란스럽다. 이런 정부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나.

[무섭긴 해도 부끄러운 것은] 없나보다. 당당하지 못하게 뒤꼍에서 손바닥 뒤집길 종용하는 모습이라니. 에이~. 문형표 복지부 장관(사진)은 평소 건보료 개편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지만 돌연 태도를 바꿨다. 청와대에서 마땅치 않아한다는 뜻을 비치며 백지화를 종용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복지부 안팎에서 나온다.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느냐’라는 무시무시한 그분의 뜻이 문 장관에게 전해진 것으로 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온다. 그랬더니 청와대는 ‘전적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판단한 것’이라며 이 역시 그분 뜻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점을 굳이 강조한다. 그래, 그렇겠지요, 암요. 정말 그분과는 정말 상관없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정부 관료들의 손바닥 뒤집기였으면 좋겠다. 차라리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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