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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촌수 파괴자, 오빠 싫어

등록 2015-02-15 10:40 수정 2020-05-03 04:27

우리는 명절이 싫다. “언제 시집가냐.” “애는 언제낳냐.” 훈수 두는 당숙 아저씨와 꾸중하는 작은아버지 때문에 우리는 명절에 ‘시무룩’. 그래도 올해 명절은 좀 낫겠다. 우리보다 더 시무룩하게 명절을 보낼 분들이 있으니 시집·출산 얘기가 나오면 잽싸게 그쪽으로 화제를 돌리자.

먼저 ‘박무룩’. 이분은 이번 설에 딸내미, 손주들 얼굴을 어떻게 보시려는가. 지난해 9월 골프 중에 여성 경기보조원을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사진)에게 검찰이 지난 2월9일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일반적으로 강제추행에는 징역형이 구형된다. 2006년 여기자 성추행 파문을 일으킨 ‘성추행 선배’ 최연희 새누리당 의원도 결국 선고유예 판결을 받긴 했으나 당시 검찰은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

“손녀 같아 터치했다”고 했던가. 공판에서 박 전 의장은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아 용인하는 것으로 오인했다”고 말했다. 심각한 판단 장애다. 검찰은 재판부에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명령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전엔 되도록 손주들은 할아버지를 피하는 걸로. 최후진술에서 약속한 대로 할아버지는 “여생을 조용히 보내”는 걸로.

다시 시무룩. “내가 딱 너를 보는 순간, 아 얘는 내 여자친굿감이다(라고 생각했다.)” 복수의 여학생을 상습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대 경영대학원 ㅂ 교수도 이번 명절이 정말 두렵겠다. 학생들이 서울대 인권센터에 제출한 녹취 파일에 따르면 ㅂ 교수는 학생에게 “천하의 ㅂ의 애인이 됐다는 건 조상의 은덕”이고 “네가 나를 기분 좋게 해주면 내가 연구를 많이 하고 그게 인류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했단다. 낯부끄러워 조상님을 어찌 보려나. 박 전 의장과 ㅂ 교수에겐 공통점이 있다. 두 분 다 ‘촌수 파괴자’라는 거. “나한테 카톡 할 때 ‘오빠’다, ’교수님’ 하면 너 F(학점)다.” ㅂ 교수가 술자리에서 학생에게 했던 말이란다. 우린 너네 같은 할아버지, 오빠 둔 적 없다. 부디 진짜 손녀딸, 진짜 동생들과 무사히 명절 지내시라.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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