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통하네뜨’인가 했더니 ‘로베스피에르’였나.] 박근혜 대통령이 공포 발언의 수위를 나날이 높여가고 있다.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사회악 척결’ 같은 전두환식 화법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잊힐 만하면 언어충격 요법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요사이에는 그림자처럼 활동한다는 ‘십상시’ 때문인지 해외 순방 때가 아니면 좀처럼 대통령의 존재감을 느끼기 어렵다.)
[지난 11월26일 박 대통령이 한 달 만에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기억에 남는 단어는 딱 하나다.] 기요틴. 박 대통령은 이날 “규제들은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서 처리하게 될 것”이라며 “규제 기요틴을 확대해서 규제혁명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혁명 때 사용하던 사형 집행 기구인 ‘기요틴’이란 단어를 4차례나 거듭했다.
[올해 초 국무조정실 등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진돗개는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겨져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고 말해 반려동물 포비아를 야기하더니, 3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쓸데없는 규제는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라고 말해 국민으로 하여금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게 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쳐부수다’는 앵커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용례로 “역적패당을 단매에 쳐부술 열의”와 같은 관용구를 들 수 있다.
[당선 전후 박 대통령은 원래 충격 발언보다] ‘유구냉무’(입은 있으되 내용이 없음) 내지 ‘오리무중’ 화법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주요 초식으로 “저도 참 유감스럽다”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 같은 문장들이 있다. 행정부 수반으로 유구냉무 화법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과격 발언이 튀어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공직사회에 각성을 촉구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원래 충격요법이란 게 반복될수록 더 센 자극을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기요틴 같은 끔찍한 사형 도구까지 튀어나온 마당이니, 다음이 걱정스럽다. 당분간 박 대통령의 각종 업무보고·국무회의·신년연설 등은 애들은 못 보게 하는 걸로. ‘19금’ 표시하고 가는 걸로.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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