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하필 빼빼로데이였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대동단결한 싱글부대원들이 그저 이탈자가 없도록 동료들의 탈영을 감시하는 날, 괜히 길에서 어슬렁거리다 어두운 길목에 잠복해 있는 염장 커플에 눈 버리지 않도록 발길을 재촉하는 날. 11월11일 아침부터 조간신문을 장식한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의 발언이 만국의 싱글, 아니 38선 이남의 싱글부대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저출산 문제 해법으로 뚱딴지같이 “싱글세 같은 페널티 정책이 필요하다”고 한 것. 성탄절,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로도 모자라 달력에도 없는 이날저날 만들어서 싱글들만 왕따시키는 세상에, 없는 세금도 만들어서 벌까지 주겠다니…. 넌 내게 굴욕감을 줬어.
[“농담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분’도 싱글이 아닌감.] 최고 존엄께 어찌 굴욕감을 줄 수 있겠는가. 담당 관료는 서둘러 “저출산 대책으로 과거에는 아이를 낳은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줬지만, 앞으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에게 페널티를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농담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분이 계셔서 싱글부대는 든든하다. 남은 임기 3년3개월 동안 싱글부대라고 타박당할 일은 없으리라.
[안심하긴 이르다.] 적은 도처에서 잠복 중이다. 벌은 미루고, 대신 커플들한테만 상을 주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1월14일 ‘신혼부부 집 한 채를’ 포럼을 출범했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방침 아래 매년 신혼부부 10만 쌍에게 5~10년간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단다. 남의 집 살이 하는 건 너나 나나 서럽기 매한가진데 어째 신혼부부들한테만 집 한 채씩 안겨주겠다는 건가.
[이참에 알고 보니 싱글부대가 커플들보다 세금도 더 내고 있단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월소득 300만원을 기준으로 싱글은 소득세와 지방소득세를 월 8만8510원 낼 때 4인 가구는 월 1만8810원씩 낸다. 이 소식이 확산되면 싱글부대 장병들의 대거 탈영이 예상된다. 머잖아 여기저기서 ‘위장결혼’ 구인광고라도 보게 되는 게 아닐까. 겨울은 이제 시작이다. 싱글들의 최대 위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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