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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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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는 인권이다

쌍용차, 인권단체·시민이 평택 굴뚝에 올리는 배터리 차단 이창근
“SNS만 체크하지 말고 연대와 사회의 호소 봐줬
으면”
등록 2015-01-01 14:23 수정 2020-05-03 04:27
쌍용자동차 경기도 평택공장 굴뚝에서 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 이창근씨(왼쪽)가 휴대전화로 응원온 지인들과 통화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정욱씨. 박승화 기자

쌍용자동차 경기도 평택공장 굴뚝에서 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 이창근씨(왼쪽)가 휴대전화로 응원온 지인들과 통화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정욱씨. 박승화 기자

‘평택 굴뚝’의 두 남자 목소리에선 늘 얼음이 서걱거린다. 전화가 연결될 때마다 거센 바람 소리가 파고들며 대화를 갉는다. 통화가 시작되면 이창근(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의 목소리는 급하게 빨라진다. 김정욱(사무국장)의 전화기는 가끔 꺼져 있다.

배터리 탓이다. 두 사람은 춥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괴롭다. 그래도 배터리가 가장 애달프다. 서해안 바닷바람이 섞인 70m 고공의 추위는 배터리를 빨리 방전시킨다. 전화 통화는 최대한 짧게 하고, 껐다 켰다를 반복한다. 깊이 품어 몸보다 철저히 관리해도, 배터리는 지체 없이 줄어든다. 그들을 걱정하는 지인과 시민들이 배터리를 보내주지만 굴뚝으로 승천시키진 못한다. 회사가 차단하기 때문이다. 인권단체들이 2014년 12월22일 공장 앞에 모여 사 쪽의 ‘인도적 조처’를 호소했으나 ‘배터리 장벽’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말했다.

“이 추위에 농성자들이 굴뚝 생활을 찍어 SNS에 올리고 글을 띄우면 회사의 안 좋은 이미지가 확산된다. 신차도 출시되고 있다. 배터리를 계속 올려주면 회사는 계속 타격받을 수밖에 없다.”

배터리는 인권이다. 고공농성의 핵심이다. 하늘에 매달린 이유다. 배터리는 궁벽한 하늘 모서리를 세상과 잇는 유일한 실핏줄이다. “우리는 트위터나 하려고 굴뚝에 오른 게 아니다. 배터리로 세상과 소통하고 호소한다. 회사와 동료들과도 대화하고 싶다. 배터리가 아웃될 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도 완전히 아웃된다.” 이창근의 휴대전화 연결음은 다. 그는 “회사가 배터리 공급을 차단하면서도 SNS 글은 유심히 살피고 있다”고 했다.

“인도 석학 가야트리 스피박이 우리 지지 입장을 밝힌 뒤 나는 그 내용을 트위터으로 전했다. 지인이 스피박 책을 올려주려 하자 회사가 막았다. 깜짝 놀랐다. 우리의 SNS만 체크하지 말고 굴뚝 아래의 연대와 사회의 호소도 봐줬으면 좋겠다.”

고공농성 14일째(12월26일 기준)다. 굴뚝을 향한 회사의 입장(12월15일 “20만이 넘는 쌍용자동차 가족의 생존권을 볼모로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법과 정의를 무시한 처사로서 사회질서 유지 차원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은 변함없이 강경하다. 이창근은 “농성 이후 회사에서 우리에게 전화 한번 한 적 없다”고 했다. 김정욱은 “대화를 호소하며 올라왔는데 모르쇠로 일관해 가슴 아프다”고 했다. 최근 3자 협의(회사-기업노조-쌍용차지부)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사 쪽이 밝힌 대화의 선결 조건은 ‘굴뚝농성 해제’다. 회사와 이야기하기 앞서 기업노조와 먼저 협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2009년 당시 무급휴직이나 희망퇴직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법원 패소 뒤 다시 이슈를 만들기 위해 굴뚝에 올라갔다”(사 쪽 관계자)는 것이 기본 시각이다.

현재 김정욱·이창근은 태양광발전으로 배터리를 채우고 있다. 날씨가 좋지 않아 효과가 크지 않다. “조만간 한계가 올 것 같다”고 김정욱은 우려했다.

두 사람에게 말은 소통하는 다리다. 악수를 나누는 손길이다. 하나뿐인 싸움의 무기다. 그들은 굴뚝 위에서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광합성을 한다. “토끼똥만큼의 햇볕”이라도 모아야 그들은 얼어붙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말하려고 올라왔는데 말을 잃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먹고, 자고, 견디는 것은 수단이다. 수단이 본질이 될까 두렵다.”(이창근)


■ 고공농성 일수(2014년 12월26일 기준)
스타케미칼 차광호 213 일
씨앤앰 임정균·강성덕 45 일
쌍용자동차 김정욱·이창근 14 일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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