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선생님한테 화났을 때랑 경비 아저씨한테 화났을 때랑 달라?” 초등학생 아들의 질문을 받고 친구는 화들짝 놀랐단다. 행동은 말보다 크고 깊게 말하는 법. 노동자를 변호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엄마가 부지불식간에 어떤 노동자를 낮추어 대하고 있었다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단다. ‘네 아들이니 그런 훌륭한 질문을 던질 줄 아나보다’라며 돌아서면서 나 역시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민 6430명이 다 사장이다”
50대 중반에 결코 명예롭지 않은 ‘명예퇴직’을 강요받았던 아버지가 예순을 넘겨 겨우 구한 ‘최고’의 일자리는 경비였다. 빚잔치로 모은 재산을 다 날리고 자식들이 얻어준 조그마한 아파트에 기거하면서 아버지는 남들이 사는 아파트를 지켰다. 이름은 경비였으나 청소, 재활용품 정리, 눈 치우기, 주차 관리까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다. 원래는 없던 택배 업무도 점차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루 걸러 24시간씩 좁은 경비실에서 한뎃밥을 먹고 쪽잠을 자며 받은 돈은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쳤다. 임금에 잡히지 않는 휴게시간이건만 ‘내가 낸 관리비로 월급 받으면서 잠이나 잔다’는 눈총이 따가워 발 한번 편히 뻗지 못했다. ‘경비원이 만날 자리를 비운다’는 민원이 들어올까 화장실도 서둘러 다녀왔다. 2년 전 법이 개정돼 경비원 임금이 최저임금의 90%까지 올랐을 때도 좋아하기는커녕 옆 동네처럼 경비원이 잘려나가지 않을까 노심초사였다. 아버지는 더 바지런히 몸을 놀리셨고 입주민에게 더 반갑게 인사를 건네셨다.
“아파트 경비요. 편해 보여요.” 교육에서 해보고 싶은 알바가 있느냐는 질문에 한 청소년이 이렇게 답했을 때, 선뜻 ‘저희 아버지를 보니 그렇지 않던데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머리는 경비원을 그리 대하는 이 사회가 문제라 말했지만, 가슴은 그렇게 일하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노동의 위아래를 가르는, 그 끈질기고도 부끄러운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주민 6430명이 다 사장이다.” 최근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한 경비원의 동료가 한 말이다. 수백~수천 명을 사장으로 이고 살아야 하는 노동이란 어떤 것일까. 분신을 부른 직접적 계기야 한 ‘진상’ 입주민의 돼먹지 못한 행동이었다 해도, 내가 부리는 사람인 양 취급하는 입주민의 태도로부터 자유로운 경비원은 얼마나 될까. “내가 경비 눈치까지 보며 살아야 해?” “잘려봐야 정신 차리지!” 경비원 임금은 관리비의 몇%에 불과하건만, 경비원과 입주민의 분쟁이 생길 때면 주민들은 사장님이 되곤 한다. 내 권리는 곧잘 주장하면서도, 관리비 몇 푼 아끼려고 누군가의 저임금을 당연시한다. 일터에서 나의 노동은 존중받길 원하면서 나의 삶터에서 일하는 눈앞의 저임 노동자는 내려다본다. 최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조사에서 경비원들이 꼽은 직무 스트레스의 1순위는 임금 문제였고 입주민 응대와 고용불안이 그 뒤를 이었다. 그분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사회가 몸값이 곧 인격값이 되는 체제임을. 저임금과 불안한 지위가 하대와 모욕을 허용하는 사회임을. 누가 민원을 넣으면 어쩌나, 전자보안시스템이 도입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받는 유일한 보상이 겨우 푼돈일 때 더 큰 비참이 찾아온다는 것을. 내년이면 최저임금이 전면 적용된다는데, 쫓겨나느니 ‘법 아래 임금’이라도 감수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해야 하는 처지야말로 욕지거리 하나 동반하지 않은 우아한 모욕임을. 그래서 낱개로 쪼개진 설문 항목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욕지거리 동반하지 않은 모욕‘참, 택배 왔다고 문자 왔는데….’ 자정을 넘긴 퇴근길, 아파트 경비실에 불이 꺼져 있다. 편해 보이는, 하대해도 괜찮은, 그 자리라도 감사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한 노동자가 잠들어 있다. 택배는 경비실이 아니라 그곳을 지키는 분에게 맡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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