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은 누구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습설이 내려앉던 밤, 서울 한남동 대로에는 ‘키세스 시위대’로 명명된 새로운 정치적 세대가 기어이 출현했다. 시인 송경동은 이 광경을 “기가 막히게 존엄한 아침”이었고 “어떤 전설처럼 아득한 순간”이라고 묘사했다. 일요일인 2025년 1월5일 아침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10차선 대로는 그렇게 ‘5·18 광주 전남도청, 6·10 명동성당,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거리, 2016년 광화문광장’을 계승하는 저항의 상징 장소가 됐다.
그러나 아직은 거기까지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체포로 상황을 일단락 짓지 못하는 시간이 길게 늘어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해학과 유머가 넘쳐나지만 그렇게 한바탕 농담으로 규정짓기에는 공화국의 위기가, 헌정의 위태로움이 너무 엄중하다. ‘남태령 대첩’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키세스 시위대’로 불린 시민들이 있는 나라에서 이미 논리적으로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법리적으로는 완벽하게 단죄돼야 할 이들이 왜 여전히 권력을 작동하며 버티고 있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보수 정치인이며 한때는 법조 엘리트를 대표했던 윤석열이 법과 질서에 대한 ‘불복종’을 선택한 상황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다만 그가 5100만 명 국민 그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비상계엄을 일찍이 그리고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사고 회로가 어떻게 치달아왔는지를 점쳐볼 뿐이다. 그는 지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관할과 발부된 체포영장의 적법성을 맹렬히 문제 삼고 있다. 법조 엘리트 출신 대통령의 이런 태도에 ‘영남 자민련’을 자처한 보수 여당 국회의원 45명은 스크럼을 짜며 엄호 태세를 갖췄고, 관저 앞 극우 시위대와 일부 유튜버는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가 법적 절차에 딴지를 걸고, 친위 쿠데타를 옹호하는 변호인단은 행정 절차에 시비를 걸고, 그 동조 세력들은 길거리에서 동료 시민의 뺨을 치며 국정 안정을 외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란사태 이후, 우리는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강고히 지배해온 법조 엘리트와 고위 관료들의 앙상한 세계관을 뜻밖에도 목격하는 중이다. 법치를 부르짖던 이들이 정작 사회가 가장 혼란스러워지자 그 원칙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과 법률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이들에게 그저 ‘출세’를 위한 도구였을 뿐이라는 진실이 초라하게 드러났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윤석열과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한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비상계엄 선포를 강하게 반대’했다고 하지만 정작 내란죄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처, 즉 대통령경호처에 대한 지휘는 거부하고 있다. 최 대행이 경호처에 ‘경호를 풀라’는 짤막한 지시만 내려주면 이 극도의 혼란 상황이 일거에 해결될 수 있지만, 그는 내면을 기술적으로 분리해 살아가는지 ‘내란 반대’와 ‘내란범 체포 불가’라는 모순적 멘털리티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윤석열의 불복종이 시민들에게 어떤 좌절감과 모욕감을 주는지에 그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대통령 시절 윤석열이 그토록 강조했던 ‘카르텔’이라는 개념뿐이다. 윤석열의 불복종과 그 불복종에 동조 혹은 방관으로 일관해 결국 불복종이 유지되도록 기여하는 법조·관료 엘리트 집단들이 바로 ‘한남동 카르텔’이라 할 수 있다. 인권활동가 출신으로 최근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내며 법조 출신 엘리트 관료들과 싸워왔던 박진씨는 이에 대해 “실패해본 적 없는 엘리트들이 윤석열이라는 대표선수로 인해 카르텔의 실체를 드러내는 중”이라며 “(이들은) 타인의 삶이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도 엘리트라는 이유로 계급사회의 이너서클 안에서 무난히 생존해왔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이어 “자기 몸을 던져 이름 없이 싸우는 ‘키세스 시위대’가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다면, 시험능력주의에서 성공한 이십 대의 성취로 실패 없이 살아온 이들은 성공한 자신과 그렇지 않은 누군가로 편을 나누는 세계관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극명하게 아름다웠던, 한계 상황에서도 절제하는 공동체주의를 보여준 ‘키세스 시위대’의 울분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가 체포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 개인 윤석열만이 아니라 ‘윤석열들’로 구조화된 카르텔 그 자체일지 모른다. 실제,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 카르텔을 해체할 기회가 최소한 3번은 있었다. 우선,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직후 곧장 내란 우두머리와 그 기획자들을 체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시민의 함성과 국회의 결기로 심야 친위 쿠데타를 실패하게 하는 데 머문 상태에서 다음날 아침을 평온하게 맞았다. 그 후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딱 8명만이 내란 혐의로 구속됐을 뿐이다. 거기에 우두머리는 빠졌다.
내란에 책임을 지고 윤석열이 사실상 대통령 직무를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12월4일 직후는 두 번째 기회였다. 윤석열의 담화 이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헌법에 전혀 부합하지 않고, 그 어떤 법률적 권한도 없는 국정 공동운영체제를 선언했다가 차갑게 거부당했다. 이후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라는 법적 절차에 의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시작됐다. 이때 더불어민주당은 한덕수 권한대행이 참여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고 오랜 관료 경험으로 대세에 순응할 것이라 판단하고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3명을 그대로 임명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한 권한대행은 그 기대를 배반했고, 뒤늦게 탄핵됐다. 내란 모의 국무회의를 실행했던 한 권한대행과 어설픈 타협을 기대했다가 배신당하면서 혼란은 가중됐고, 그 기간 세력은 백래시에 힘을 얻었다.
마지막 기회는 법원의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직였다. 하지만 공수처는 안일한 판단을 거듭하며 영장 집행에 실패했다. 이 실패는 현재까지 가장 치명적인 상흔이 되어 대통령 관저의 요새화와 윤석열의 장기 불복종이라는 가관의 상황을 초래했다. 이는 미완의 개혁으로 끝난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경찰과 검찰, 공수처는 12·3 내란사태 초기부터 수사 주도권 경쟁을 벌였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내란죄 수사 권한은 경찰에 있지만, 검찰과 공수처도 수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내란죄를 대통령의 직권남용(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을 불법하게 행한 것을 처벌하는 것)죄와 관련한 범죄(검찰청법 제4조 1항 1호 다목)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공수처 또한 내란죄를 직권남용 관련 범죄(공수처법 제2조 3호 가목과 4호 라목)로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검찰이 내란죄를 수사하면 법원에서 공소를 기각할 수 있다는 여론이 일면서, 공수처가 검찰과 경찰에 사건 이첩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경찰은 2024년 12월16일, 검찰은 12월18일 나란히 공수처에 사건을 이첩했고,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가 만든 공조수사본부(공조본) 체제로 내란죄 수사가 정리됐다. 공수처·국가수사본부와 달리 기소권을 가진 유일한 기관인 검찰은 갈등 끝에 공조본에서 빠졌다. 결국 공조본이 수사를 맡고, 검찰이 기소를 맡는 형태가 됐다.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한 상황은 공수처법 제24조 1항에 따른 조처다. 중복되는 범죄수사를 두고 공수처가 타 수사기관에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공수처법에 수사 ‘우선권’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수처가 수사를 이첩받는 과정에서 수사는 차일피일 지연되고 말았다. 공수처는 구조적으로 기소권이 제한적이고, 수사 역량과 인력도 부족하다. 평시에도 유능하게 기능하기 어려웠던 공수처가 내란과 같은 전시적 상황의 주도권을 갖자 상황은 더욱 난맥으로 흘렀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많은 권한을 주지 않겠다는 타협의 산물로서 탄생한 것이 지금 공수처”라며 “공수처가 독자적으로 수사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다. 수사 역량과 인원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양홍석 변호사도 “공수처가 원래 가지고 있던 사건도 수사를 제대로 못하던 상황에서, 수사 우선권을 이유로 이기주의에 가까운 과욕을 부려 (내란죄 수사에) 다른 수사기관들이 나설 수 있는 여지를 막았다”고 말했다.
이런 혼선은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났다. 영장 집행에 실패한 공수처는 1차 영장 만료 시한(1월6일)을 앞두고, 경찰에 체포영장 집행을 일임할 것을 제안했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절차를 도모”라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경찰은 이를 즉각 거부했고, 공수처는 제안을 하루 만에 철회했다. 공수처의 요구는 검사 지휘로 사법경찰관(경찰)이 구속영장을 집행한다는 조항(형사소송법 제81조)에 근거한 것인데,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이후 상황과 맞지 않는 면이 있다. 현재, 검사의 수사지휘권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검경 협력 관계로 바뀐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전 조율 없이 명령장 하나로 경찰을 지휘하려 했던 공수처의 실패가 또 하나 더해졌다.
이사이 윤석열은 한남동 관저를 요새화했다. 공조본의 체포영장 집행과 수사에 대해선 각종 법령을 들어 ‘위법’이라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쪽 변호인인 윤갑근 변호사 등은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며 체포영장 불응을 정당화하는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 주장과 논거는 각종 극우 유튜브 등을 통해 재생산되며, ‘탄핵 반대’ ‘체포 반대’ 지지자들을 규합하고 있다.
윤석열 쪽 논리는 이미 법원의 판단이 끝난 사안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앞서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과 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공수처의 내란 수사권을 이미 1차적으로 인정한 적이 있다. 하지만 윤석열 쪽은 아예 노골적으로 “체포영장 집행이나 수사와 관련해서는 우선 기소를 해라. 아니면 사전영장(체포되지 않은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라”고 맞서고 있다. 수차례 소환조사를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에도 응하지 않은 피의자가 흡사 영장과 법원을 쇼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를 두고 김대근 연구위원은 “법리를 면밀히 따지는 게 아닌, 편의에 따라 조사받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전히 윤석열 쪽은 체포영장이 형사소송법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형사소송법 제110조와 제111조 때문이다. 이 조항은 군사·직무상 비밀을 필요로 하는 장소일 때 책임자 승낙 없이는 압수·수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도 비밀을 필요로 하는 장소이기에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압수할 물건에 대한 조항이지, 사람을 찾는 과정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다수 견해다. 법관 출신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소송법 제110조에 대해 “물건 압수수색에만 적용되지 체포, 구속할 사람을 찾는 수색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사람 수색에도 형사소송법 제110조를 적용하는 소수설도 생각해볼 수 있으나, 그 결과는 재앙적”이라며 “(소수설을 적용할 경우) 아직 체포되지 않은 내란죄 가담자의 경우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군부대 등에 머무르고 군부대장이 체포·수색을 거부하면 (영장 집행이)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을 체포하기 위해선 경찰 기동대 투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윤석열 쪽은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경찰 기동대 등은) 경비와 대테러가 임무지 사법절차에 관여해 영장을 집행하는 임무는 법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수처법 제17조 4항에는 공수처장이 직무수행시 필요한 경우 대검찰청, 경찰청 등 관계 기관의 장에 수사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차 교수는 “윤 대통령을 직접 체포하는 행위는 ‘수사행위’지만, 법원이 발부한 영장 집행을 막는 일반인, 경호처 직원의 공무집행방해 등 범죄를 막는 것은 ‘경비업무로서 경찰행정’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경찰 기동대 등 투입에) 법령상의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을 체포하라’. 2024년 12월6일,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 현장에 뿌려진 한겨레21 특별판 표지 제목이다. 하지만 그 뒤로 한 달이 넘도록 체포가 지연되면서 사회적 울분은 비등점을 지나고 있다. 공수처의 무능에 진절머리가 나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휴대전화부터 들고 ‘잡혀갔나’를 확인하는 것이 국민적 일상이 됐다. 그사이 숫자로 드러나는 여론에선 ‘탄핵 반대’의 숫자가 차츰 두텁게 포착되고, 보수층은 결집하고 있다. 인터넷 공론장에는 ‘민주당 탄핵 원인 제공론’ ‘국정 안정 방해하는 야권’ 등의 정치적 프레임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가을이 아무리 더운들 그다음에 올 계절이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란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특히 민주화 이후 최초의 내란사태에서 한없이 지연되고 있는 내란 우두머리 체포는 뜻밖에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익숙한 카르텔의 낯선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단단하다고 믿던 자리의 취약성이 확인된 것이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고, 학연을 중심으로 지연과 근무연이 작동하는 엘리트 관료들이 카르텔을 만들어 이끌던 체제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여론이 시민들 사이에 폭넓게 공유되는 까닭이다. 폭설 속에사도 “누구라도 여기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18쪽 기사 참조)는 마음을 모아 기념비적인 상황을 만들어낸 ‘키세스 시위대’의 물음도 바로 거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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