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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구·분, 분·리·불·안

등록 2014-09-30 13:58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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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구·분’.
예능 프로그램 진행 중에 맥락 없이 등장하는 사자성어가 아니다. 겉으로나마, 우리 사회가 아주 중히 여기는 덕목이다. 물론 현실에선 끈질기게 무시당하고 야멸차게 버림받는 덕목이기도 하다. 나랏일을 담당하는 고위 공직자이건 민간업체의 고위 임원이건 간에 두루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겠으나, 특히 전임 정부와 현 정부는 이 점에서 여러모로 닮은꼴이구나 싶다. 전임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같은 당 출신으로 차례로 권력을 이어받은 두 사람의 뇌 어디에도 공사를 가르는 ‘구분선’은 없다. 의학적·심리학적 견지에서, 애초부터 아예 ‘생성’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서로 쏙 빼닮았으되 스타일은 완전히 정반대다. 심지어 (그러기에, 흥미롭게도) 둘은 상극이다. 먼저 MB씨. 5년의 재임기간에 대한 단 한마디 총평이라면, ‘공공의 것(공)은 모두 내 것(사)이다’를 삶의 모토로 살아온 분 같다는 것이다. 공은 곧 사이니라. 이런 스타일의 인물에게, 공공영역이란 모두 사적 이해를 관철할 수 있는 탐나는 대상이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무대다. 스스로를 일러 ‘비즈니스 프렌들리’ 대통령이라 불렀듯이, 국가 경영은 곧 비즈니스 자체다. 결과가 과정의 흠결을 말끔히 지워주고,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건 당연한 과정이다. 비즈니스맨 대통령? 최고경영자(CEO) 대통령? 앞으로 한동안 이 땅에 다시는 등장하지 말아야 할 오답이다.
이번엔 박근혜 대통령. 한마디로, 비즈니스맨과는 거리가 먼, 뼛속 깊이 ‘공’만을 노심초사하는 ‘스테이츠맨’의 전형이다. 중요한 건, 국정 운영의 출발선이 ‘사적인 것은 모두 공적인 것’이라는, 전임자와는 정반대 방향을 향한다는 점이다. 내(사)가 곧 국가(공)이니라. 사적 이해에 따라 공적 가치를 탐하는 비즈니스맨형 스타일과는 케미가 통하려야 통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의협심도 뛰어나고 공명심도 강할뿐더러, 굳건한 가치(원리·원칙)가 한낱 세속의 욕망(떼쓰기)에 무릎 꿇지 못하도록 끝없이 자신과 남을 다그친다.
하지만 공사 구분이란 대명제는 공과 사는 서로 다른 것임을, 엄연히 각자의 영역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해야 구분도 가능해지는 법. 전임 대통령이 5년 내내 되풀이했고, 적어도 집권 2년차 중반을 넘어선 현직 대통령이 보이는 행태는, ‘공사 동심일체’(!), 곧 일종의 ‘분리 불안’ 증세나 마찬가지다. 각자의 성장 기반과 믿음 체계에 따라 서로 다른 스타일만 취했을 뿐. 뿌리도 줄기도 잎사귀마저 한 몸인.
검찰은 최근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을 꾸리고 온라인 상시 모니터링을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주요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 등이 1차 대상일 듯싶다. 비판은 열린 사회를 지탱하는 뿌리요, 상식이다. 개인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곧 국민과 국가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인, 공사 구분 못하는 대통령의 한마디가 나온 직후다.
불안은 불안을 키우고 급기야 건강을 해치는 법이다. 하물며 국정 최고 책임자의 분리 불안이 사회에 끼치는 폐해는 엄청나다. 결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스타일은 달랐으되 같은 증상의) 전임자가 남긴 값비싼 교훈이 아니었던가.


*이번호에는 한가위 퀴즈큰잔치 당첨자 명단이 실렸습니다(52~57쪽 참조). 올해에도 역시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응모엽서를 하나하나 펼쳐가며 정답자를 추려내고 다시 추첨하는 과정은, 힘든 노동이었으나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응모엽서에 함께 적어 보낸 글 가운데는 요절복통할 사연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당첨되신 분들에겐 축하의 말씀을, 아쉽게도 기회를 놓치신 분들에겐 죄송하다는 말씀을 정중히 드립니다. 이번 퀴즈큰잔치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에겐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ah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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