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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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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자 ‘인상’안

등록 2014-09-16 17:38 수정 2020-05-03 04:27

[한국에서 흡연자로 사는 건 고달픈 일이다.] 그동안 흡연자는 일하는 사무실 건물이 금연빌딩으로 지정돼 설 곳을 잃고, 음식점 금연구역지정 정책으로 술집에서도 쫓겨나기를 밥 먹듯 했다. 길거리에서 폼나게 담배를 꺼내 무는 것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 그랬다가는 교양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딱 좋다. 그나마 마음 편히 담배 연기를 머금을 수 있는 곳은 고작 자기 집, 그것도 반평 안팎의 베란다가 전부였다. 요즘은 베란다에서도 함부로 담배를 피우면 아래윗집 주민한테 항의를 받을 수 있다. 흡연자의 흡연권 보장을 위한 ‘흡연 종합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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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오갈 데 없어 불쌍한 흡연자의 씨를 아예 말리려는 것인가.] 담뱃세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온 정부의 ‘담뱃세 인상파’가 ‘금연 종합대책’이라며 내년 1월1일부터 현재 2500원(국산 담배 ‘에쎄 라이트’ 기준)인 담뱃값을 4500원으로 올리는 ‘담뱃값 인상안’을 내놓았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내년 1월1일부터 담뱃값이 오른다. 이게 끝이 아니다. 정부는 담뱃갑에 혐오스러운 경고그림을 넣어 담배를 볼 때마다 흡연자의 인상을 구겨놓겠다고, 편의점에서 해온 담배광고도 금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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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안은 인상안인데, 좀 이상하다.] 레종(KT&G)이든, 말버러 라이트(필립모리스)든, 던힐(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이든, 담배라는 상품을 만들어 파는 곳은 엄연히 일반 기업이다. 기업이 만들어 파는 상품의 가격, 곧 담뱃값을 정부가 어떻게 마음대로 올리고 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따라서 담뱃값 인상안은 사실 담뱃세 인상안이다. 담배소비세와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등 담배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각종 세금·기금을 두 배 넘게 올려 담뱃값을 4500원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름의 대가를 지불하고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에게 정부가 올린 게 ‘담뱃값’인지, ‘담뱃세’인지 인상 내용을 파악하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담뱃세 인상안’을 내놓으면서 이를 ‘담뱃값 인상안’이라며 ‘인상(내용) 파악’이 안 되게 하는 정부 행태만 보면, 흡연자의 인상은 구겨지고 만다.

최성진 사회정책부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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