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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겜 시즌2’가 끝내 머무른 곳, 상상속의 악

악은 한없이 단조롭고 선은 무한히 다채로운데…비상계엄 속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2의 한계
등록 2025-02-01 12:28 수정 2025-02-03 08:57
‘오징어 게임’ 시즌2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 시즌2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상상 속의 악은 낭만적이며 다양하지만, 실재하는 악은 음산하고 단조로우며 삭막하고도 지루하다. 상상 속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재하는 선은 언제나 새롭고 경탄할 만큼 매혹적이다.”

민주노총 주도로 진행된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3박4일 체포투쟁 자유발언 중에 들었던 이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가 자신의 저서 ‘중력과 은총’에 남긴 말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이 말을 조금 더 간결하게 정리했다. “악은 한없이 단조롭지만 선은 무한히 다채롭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이 말을 담은 깃발을 보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광장의 시민들은 이 말을 스스로 입증해나가고 있다. ‘실재하는 악’들이 단조롭고 지루하게 방탄 행각을 이어가는 동안, 광장의 시민들은 무한히 다채로운 깃발과 빛으로 광장을 ‘실재하는 선’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광장의 동료들에게 무엇이든 나눠주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도울 일이 있으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려 나오고, 농민과 노동자에서 장애인과 성소수자로 연대의 보폭을 끊임없이 넓혀가는 광장의 시민들은 ‘실재하는 선'이 어떤 모양인지를 주말마다 보여주고 있다.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오겜’이 이기지 못한 비상계엄

‘오징어 게임’ 시즌2가 2024년 12월26일 공개됐다. 공개되자마자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대흥행을 기록했지만 비평적 측면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듯하다. 특히 유독 한국에서 더욱 혹평받고 있는지, 황동혁 감독은 공개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평가가 가장 각박하다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비상계엄이라는 예외적 상황이 생존게임이라는 예외적 상황을 다룬 드라마의 흥행을 도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재난처럼 닥친 비상계엄 상황에서 시민들이 각자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면 ‘오징어 게임’은 시국에 조응하는 명작으로 평가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에겐 안타깝게도 한국의 시민들은 비상계엄 당일 밤의 국회 앞과 매주 토요일의 여의도와 광화문을 지나 남태령과 한남동까지 도달한 사람들이다. 이 드라마가 시종일관 도저히 숨기지 못하는 ‘이기적 개인’들에 대한 멸시와 혐오는, 적어도 지금 한국의 시민들에겐 별다른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시몬 베유식으로 말하자면 ‘오징어 게임’이 묘사하는 ‘상상 속의 악’은 지금 이 순간 광장의 ‘실재하는 선’들에겐 너무 음산하고 단조롭게 보이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각자도생 대신 ‘편 가르기’ 테마로

‘오징어 게임’ 시즌2는 한국 유년기 놀이문화를 바탕으로 잔인한 생존게임을 벌이는 시즌1의 골격을 반복한다. 시즌1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해 456억원을 수령한 주인공 성기훈이 게임을 막기 위해 주최 쪽을 찾아 헤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성기훈은 우여곡절 끝에 주최 쪽을 만나게 되고, 게임이 벌어지는 위치를 포착하기 위해 자신의 몸속에 몰래 위치추적기를 집어넣어 다시 게임에 참여한다. 하지만 위치추적기는 이미 적발돼 제거된 상태. 결국 참가자들을 최대한 많이 살리고 함께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들과 함께 게임의 존재를 세상에 폭로하겠다는 것이다.

‘각자도생’을 핵심 테마로 삼았던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편 가르기’를 핵심 테마로 삼았다. 한 라운드가 끝나면 참가자들이 투표를 통해 게임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설정을 보탰다. 탈락자(사망자) 1명당 1억원이 적립되며, 투표를 통해 게임이 중단되면 남은 생존자들이 적립된 금액을 나눠 갖는다는 것이다. 성기훈은 투표 때마다 게임 중단을 호소하지만, 예상 가능하듯 더 큰 상금을 갈망하는 참가자들의 투표로 게임은 3라운드까지 계속된다.

투표로 게임을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성기훈은 방법을 바꾼다. 진행 요원들을 속여 총기를 빼앗고 반란을 일으켜 주최 쪽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남은 생존자는 60~70명인데, 성기훈의 반란에 동참한 이는 10명 남짓. 징병제 국가답게(?) 반란자들은 나름대로 전술적인 움직임으로 돌파구를 마련하지만, 참가자로 위장하고 있던 게임의 총책임자 ‘프런트맨’이 결정적인 순간 정체를 드러내 배신하며 반란은 실패로 끝난다. 여기까지가 시즌2의 줄거리로, 반란 실패 이후의 이야기가 2025년 중하순쯤 공개될 시즌3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엄밀히 말하면 시즌2는 미완의 이야기다. 감독의 여러 선택과 주제의식을 공정하게 평가하려면 시즌3까지 봐야 할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 시즌2의 이야기들을 평가하는 것은 어떤 점에선 섣부를지도 모르지만, 시즌1과 비교해 여전한 것과 현저히 달라진 것, 그리고 남은 이야기와 무관하게 이미 완결된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애초에 기대는 없는 건가

황동혁 감독은 시즌1과 마찬가지로 시즌2에서도 인간의 선함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시몬 베유식으로 말하자면 이 작품 속 ‘선’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어떤 주인공이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은 단지 그 사람이 특별히 선하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인물이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라는 식의 묘사가 이어진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선한 인물에게는 개연성이 없다고 여긴다. 반면 악한 인물에게는 그것이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여긴다.

그나마 시즌1에는 완전한 타인에게조차 이타적인 인물들(성기훈, 강새벽, 알리 압둘, 지영)이 드문드문 배치돼 균형을 맞췄지만, 시즌2에서는 그런 인물이 성기훈 말고는 잘 보이지 않는다. 친구라서 돕거나, 가족이라서 돕거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돕는 식이다.

시즌2의 가장 충격적인 전개라 할 만한 반란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다. 규칙 없이 서로를 죽이는 무자비한 ‘스페셜 게임’이 진행된 직후 게임 중단파와 지속파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반란이 일어난다. 성기훈을 중심으로 대여섯 명 정도가 진행 요원들의 총기를 빼앗은 다음 동참할 참가자를 구하는데 역시 대여섯 명이 반란에 동참한다. 동참하지 않은 이들은 50여 명. 진행 요원들에 비하면 반란자들은 턱없이 적지만, 성기훈은 더 이상 그 어떤 설득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 이상의 기대는 없었다는 듯이. 두려움에 떨던 이들이 하나둘 일어나 비장한 각오로 합류하는 그런 전개는 현실 속에 존재할 수 없다는 듯이.(반란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특전사 출신의 트랜스젠더 여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여성 캐릭터가 아무런 역할도 부여받지 못한 채 병풍처럼 시즌을 마무리하는 것도 문제적이다.)

인간의 선함에 대한 무관심이 인간에 대한 환멸감이라면, 타인을 나와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하대는 인간에 대한 멸시와 혐오에 가깝다. 시즌2의 주제의식을 집약하고 있는 1화에는 게임의 영업사원이 빵과 복권을 잔뜩 사서 탑골공원의 노숙인들에게 내기를 제안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장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빵과 운 좋으면 인생 역전을 이룰 수 있는 복권 중 단 하나만 골라보라는 것이다. 노숙인들은, 역시 예상 가능하듯, 모두 복권을 고르고 모두 꽝이 나온다. 영업사원은 뻔하다는 웃음을 짓곤 남은 빵들을 구둣발로 짓이겨 먹을 수 없게 만든다.

‘오징어 게임’ 시즌2 황동혁 감독. 연합뉴스

‘오징어 게임’ 시즌2 황동혁 감독. 연합뉴스


황동혁이 머물고 있는 곳

이 에피소드는 자연스럽게 시즌2의 핵심 설정인 ‘투표’로 이어진다. 게임 중단에 투표하면 목숨을 잃지 않고 당장 적립된 금액을 적당히 나눠 가질 수 있지만, 어차피 인간은 확률이 희박하고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커져도 더 큰 돈에 눈이 멀어 게임을 이어갈 ‘멍청하고 뻔한' 존재 아니냐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앞의 노숙인 이야기와 연결되어 감독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너희가 노숙인과 무엇이 다르냐.” 노숙인을 향한 멸시와 인간 일반을 향한 혐오가 동시에 표현되는 순간이다. 일종의 선민의식이 바로 이 지점에서 포착된다.

감독은 “이 사회를 굴려온 자본 권력, 정치 권력”이 “사람들이 서로 탓하게끔 했다”고 비판하며 언제나 이타성을 잃지 않으며 문제의 근원을 찾아가는 “기훈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즌2에 나타나는 것과 같이 ‘서로 탓하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혐오하는 태도로는 화해와 연대를 결코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감독의 문제의식은 작품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다.

작품 공개를 전후해 나온 감독의 인터뷰들을 읽다보면 이런 문제의식이 더욱 또렷해진다. 작품의 재미를 과신하며 “이게 재미없다면 그냥 우울하신 걸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마약·성범죄·성매매 사건에 연루된 바 있는 배우들의 캐스팅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한 것이 크게 논란이 됐지만, 내 시선을 끈 것은 다른 인터뷰다. 공개 한 달 전 시즌2의 투표 시스템이 현실의 무엇을 풍자하려고 한 것인지 아주 직접적으로 설명한 인터뷰나, 2025년 1월2일 대통령 관저 앞의 양쪽으로 갈라진 풍경이 시즌2 속 풍경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다’고 자평한 인터뷰가 그렇다.

시즌1 엔딩에서 게임의 주최자이자 죽음을 목전에 둔 오일남은 병상에 누워 우승자인 성기훈을 맞이한다. 오일남은 인간의 가능성을 철저히 무시하며 성기훈에게 내기를 제안하는데, 자정이 되기까지 창문 밖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인에게 도움의 손길이 주어질 것인지 아닌지 선택해보라는 것이다. 당연히 오일남은 ‘아니다’에 걸고, 성기훈은 ‘주어질 것이다’에 걸었다. 자정이 되기 몇십 초 전 도우러 온 시민이 나타나 성기훈이 승리를 알리려는 순간, 오일남은 이미 죽어 있다. 그는 결과를 알고 죽었을까. 알았다면 인간의 가능성을 인정했을까. 오만으로 가득한 오일남이라면 아마도 ‘알지 않기를 선택’하며 죽었을 것이다.

황동혁 감독은 오일남을 비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내게는 황동혁 감독과 오일남이 꼭 겹쳐 보인다. 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관저 앞의 ‘갈라진 풍경’만이 아니라 광화문과 남태령과 한남동의 ‘빛나는 풍경’을 볼 수 있는데도 황동혁 감독의 시선은 오로지 상상 속의 악에만 머물기를 ‘선택’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온 힘 다해 외면하려 드는 실재하는 선은 지금도 현실의 광장에서 밝게 빛을 내뿜고 있건만.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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