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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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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동문 동문 거리는 놈들…”

입학형태·캠퍼스 따라 더욱 정교해지는 연세대의 ‘카스트제도’,

취업률 잣대로 학과 간 서열 경쟁도… 경쟁사회 불안을 잠재우려는 처절한 몸부림
등록 2014-07-05 14:18 수정 2020-05-03 04:27
연세대 본관. (출처/한겨레DB)

연세대 본관. (출처/한겨레DB)

“연세대학교 입시 결과별 골품 비교한다. 성골=정세(정시합격생)·수세(수시합격생)·정재세(재수 정시합격생), 진골=정삼세(삼수 정시합격생)·정장세(장수 정시합격생)·수재세(재수 수시합격생), 6두품=교세(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 학생)·송세(연세대 국제캠퍼스생)·특세(특별전형), 5두품=편세(편입생), 군세(군인전형), 농세(농어촌전형), 민세(민주화 유공자 자녀 특별전형)….”

몇 년 전 연세대 커뮤니티 ‘세연넷’의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세연넷에선 입학 형태에 따라 학생들을 계급화한 표현이 ‘버전’을 달리하며 꾸준히 업데이트된다. 최근엔 힌두교 카스트제도에 비유한 표현들도 등장했다. 이런 글(2014년 6월15일)도 눈에 띈다. “원세대 다니는 친구놈이 나한테 ‘동문 동문’ 거리는데 원세대 놈들 중에 이렇게 신촌을 자기네하고 동급 취급하는 애들 있을까봐 심히 우려된다.”

캠퍼스 간 묵은 갈등 학교 본부가 자초

세연넷의 익명게시판은 일명 ‘불판’으로 불린다. 하루가 멀다 하고 뜨거운 논란거리가 끊임없이 쏟아져나오기 때문이다. 원주캠퍼스 학생들과 수시입학생, 편입생들에 대한 ‘조리돌림’은 익명게시판의 오랜 불장난이다. 세연넷 게시판에는 원주캠퍼스 학생들을 ‘원세대생’, 심하게는 ‘지잡대생’이라고 표현하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원주캠퍼스 학생들을 학적을 ‘세탁’하려는 ‘기생수’라고 부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정시’로 신촌캠퍼스에 입성한 일부 대학생들에게는 수시입학생과 편입생도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정시생들은 이들을 벌레 보듯 한다. 수시입학생들을 ‘수시충(蟲)’, 편입생들을 ‘편입충’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물론, 이들은 조롱의 수위를 높이기 위해 계속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성골’을 자처하는 신촌캠퍼스 학생이 원주캠퍼스 학생을 무시하는 경향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현재 세연넷도 신촌캠퍼스 학생만 이용할 수 있다. 2009년 신촌캠퍼스 학생들 사이에서 원주캠퍼스 학생들과 동일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불만 여론이 거세지면서 세연넷이 원주캠퍼스와 선을 그어버렸기 때문이다. 세연넷이 ‘세연넷2.0’으로 개편된 이후 커뮤니티에 가입하려면 신촌캠퍼스 학번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세연넷에서 ‘내쫓긴’ 뒤 원주캠퍼스 학생들은 연세대 학생 사회에서 공인된 온라인 커뮤니티를 갖지 못하고 있다.

원주캠퍼스와 신촌캠퍼스 간의 묵은 갈등은 학교 본부가 자초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는 원주캠퍼스 입시설명회를 열 때마다 신촌캠퍼스로의 ‘소속 변경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을 홍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원주캠퍼스가 ‘본교’인 신촌캠퍼스로 ‘진급’하기 위한 사실상의 통로 역할을 하도록 학교 차원에서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원주캠퍼스 학생들 사이에서는 소속 변경을 위한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원주캠퍼스 학생들의 자치활동과 문화생활은 과도한 학업 경쟁에 밀려 위축된 지 오래다.

그러나 막상 소속 변경에 성공한 학생들에게는 ‘원주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학교에 입학하면 신촌캠퍼스 학생들은 ‘1’로 시작하는 학번을, 원주캠퍼스 학생들은 ‘2’로 시작하는 학번을 받는다. 소속을 변경하더라도 학번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원주캠퍼스 출신 학생들은 당당히 학번을 공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학생은 “2로 시작하는 학번이 마치 ‘주홍글씨’ 같다”고까지 말했다. 원주캠퍼스 출신으로 두 캠퍼스에서 복수전공을 하는 학생들은 채플수업 이수와 졸업사진 촬영을 원주캠퍼스에서만 할 수 있다.

‘자칭 엘리트들’ 간의 ‘비뚤어진 전쟁’

‘최고’는 으뜸이 아닌 모든 존재를 배제하고 타자화함으로써 보장받는 지위다. 연세대는 공동체가 인정하는 구성원의 풀(pool)이 굉장히 좁다. 명성을 누릴 권리는 오로지 신촌캠퍼스 학생에게만 허락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런 계급의식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5월20일 연세대 ‘대나무숲’(학생들이 사연을 제보하면 익명으로 글을 게시해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 졸업생의 글이 올라왔다. “(두 캠퍼스는) 재단이 다르든 위치가 다르든 같은 공동체”며 “사회에서 연세의 이름으로 하나 되는 것처럼 학교에서도 하나로 뭉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한 재학생이 댓글을 달아 반박했다. 그는 “연세라는 이름과 마크를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공동체로 묶이기엔 다른 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우열 논리와 인성을 언급하며 비난하면서 성인 행세하는 것이 더 별로”라고 했다. 해당 댓글은 학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사회가 정한 서열을 체화해온 학생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합격한 ‘최고 사학’에서 ‘입결’(입시 결과)이 낮은 원주캠퍼스 학생들과 동급으로 취급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박유리 진보교육연구소 사무국장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자신이 타인과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 없는 학생들은 누군가를 밟고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훈련받아왔다”고 풀이했다.

세연넷 익명게시판에서 빈번하게 맞붙는 ‘상공전’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상공전은 문과 학생 중 입결 최상위를 자랑하는 상경대 학생들과, 높은 입결의 이과 학생이 포진된 공대생들 간의 상호 비방 경쟁이다. ‘급’이 다른 여타 인문대와 이과대 학생들을 배제한 채 벌어지는 ‘자칭 엘리트들’ 간의 ‘비뚤어진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익명의 학생이 “얘들아 상공전이나 하자”며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를 불면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 줄지어 댓글을 달기 시작한다. “공대는 원래 불가촉천민일 뿐”이라고 상경대 학생이 공격하면, “경영은 원래 계략적이고 치졸하고 노략질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모인 집단”이라며 공대 학생이 역공한다. 상대생은 최하층 계급에 빗대 공대생을 비하하고, 공대생은 ‘미래의 치킨집 사장’이라며 상대생을 비꼰다. 취업률과 평균연봉을 잣대로 싸우는 이 의미 없는 전쟁은 ‘학교 서열화’를 넘어 ‘학내 서열화’로 비화된 자본주의 서열 경쟁의 단면을 드러낸다.

캠퍼스 단위를 거쳐 학과 단위로 세분화되는 서열화의 배경에는 시간이 갈수록 격심해지는 ‘경쟁사회’에 대한 대학생들의 불안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더 잘게 단위를 쪼개 그 안에서라도 우위를 점하려는 학생들의 모습은 사실 생존경쟁에서 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상대, 공대, 의대를 제외한 나머지 학과들은 구색 맞추기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조롱과 “인문학과는 사실상 성적 맞춰서 온 것”이라는 게시글이 커뮤니티에 난무하는 현상은 분노보다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무한경쟁만 남은 외톨이

이 현상의 끝은 어딜까. 같은 ‘학교’라는 이유로 뭉쳐서 ‘학벌’이라는 성을 쌓고 해자를 짓던 동문들은 이제 같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과 간의 서열 경쟁을 목도하고 있다. ‘학교’라는 단 하나의 연결고리도 희미해진 시대를 학생들은 살고 있다. 끊임없는 서열 다툼의 끝엔 개인 간의 무한 경쟁만이 남을 뿐이다. 갈수록 치솟는 서열화의 울타리는 대학을 ‘학생들을 외톨이로 가둔 감옥’으로 만들고 있다. 혼자 있는 감옥에서 최고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박성환·황윤정 연세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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