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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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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건과 싸우다 훌리건이 되다

대학 서열화의 최전선에 있는 공격수 ‘훌리건’-수비수 ‘점공’…
다른 학교 비방하고 자신의 학교를 방어하는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이유
등록 2014-07-04 09:57 수정 2020-05-03 04:27
그래픽/ 손정란

그래픽/ 손정란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나.
최근 중앙대가 한양대 학생들을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한양대 학생들이 중앙대를 비방하는 악의적인 글을 올렸다며 13개의 IP를 지목했다. 고소전의 ‘선공’은 한양대였다. 지난해 12월 한양대는 ‘중아더’(맥아더)와 ‘한망히토’(일왕 히로히토)란 말로 중앙대를 추어올리고 한양대를 깎아내린 중앙대 학생을 고소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 우나.
대학 서열을 놓고 ‘경쟁 학교’ 학생들끼리 ‘훌리건(특정 대학을 옹호하며 타 학교를 비방) 전쟁’을 벌이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학교 당국이 맞고소로 전쟁에 뛰어들면서 양상은 훨씬 과격해졌다. 잔인한 학벌사회에서 생존투쟁을 벌이는 학생들은 대학 서열화의 ‘희생자’와 ‘행위자’의 경계를 오가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대학생들 자신의 싸움’과 ‘서열화의 과실을 취하는 누군가의 대리전’ 사이 어딘가에서 ‘훌리 짓’(훌리건 행위)은 오늘도 치열하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나.
훌리건과 ‘점공’(점수 공개) 카페지기는 대척점에 있다. 훌리건이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다른 학교를 비방하는 공격수라면, 점공 카페지기는 훌리건의 공격에 맞서 자신의 학교를 방어하는 수비수다. 공수 과정에서 비방과 정보전이 치열하며, 어느 순간 공수의 경계도 불분명해진다.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 두 번째 기획은 ‘대학 서열화의 최전선’을 찾았다. 훌리건과 점공 카페지기를 인터뷰해 그들이 말하는 ‘전쟁의 이유’를 들었다. ‘캠퍼스’를 거쳐 학과 단위로 침투해 들어가는 ‘학내 서열화’의 폭력도 들여다봤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우리는 무엇과 싸워야 하나.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우리 학교를 까니까 ‘빡쳐서’ 시작한 겁니다.”

A씨는 훌리건과 싸우다 훌리건이 됐다. 한양대학교 4학년인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 ‘훌리건 천국’에서 2년 넘게 ‘키보드 전사’로 활동해왔다. 그는 한양대와 경쟁 구도에 있는 학교를 깎아내리고 한양대의 좋은 점을 설파하는 ‘한대 훌리’로 통한다.

자기 학교를 공격하는 타 학교에 맞대응하는 것으로 시작해 점차 상대 학교를 비방하는 일로 옮겨가는 ‘훌리건의 일반적 경로’를 그도 겪었다.

“나도 한때 정보 분석도 하고 자료도 열심히 모아 상대 훌리의 공격에 방어했다. 그런데 방어한다고 방어가 되는 게 아니더라. 제3자가 보면 나는 변명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상대 학교를 같이 깎기 시작했다.”

‘훌리건 천국’에서 활동하는 ‘키보드 전사’

인터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진행했다. 그가 채팅창에 새긴 문자들에서 훌리건으로 활동하며 거쳐온 ‘마음의 경로’를 읽을 수 있었다. 처음 훌리건이 됐을 때와 지금 훌리건 활동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엔 상당한 변화가 느껴졌다.

-훌리건으로서 어떻게 활동하나.

=“우선 입시 커뮤니티에서 게시판을 도배질하는 데 참여한다. 특정 학교를 지지하거나 깎아내리는 댓글을 많이 단다. ‘그 점수면 다른 학교 가겠다’는 식의 글도 올린다. 포털 사이트에서도 해당 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댓글을 단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RO 사태’가 있었을 땐 한국외국어대를 까는 글을, 고려대 인맥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가 나오면 고려대를 까는 댓글을 단다.”

-같이 활동하는 훌리건들이 있나.

=“훌리건은 딱히 집단적으로 움직이진 않는다. 각자 어느 학교 학생인지도 모른다. 발언 내용으로 미뤄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공통의 적이 등장하고 ‘도배 글’이 비슷해지면 슬쩍 연합한다. 상대가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 경우 연합전선을 펴서 각자가 가진 지표 몇 개를 던져주면 쉽게 이길 수 있다.”

-싸움의 무기가 되는 지표란 무엇인가.

=“인터넷 기사나 수능 정시 배치표, ‘아웃풋’(해당 학교 출신 인사)에 대한 자료다. 자료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자료는 어떤 대학엔 득이 되지만 다른 대학엔 해가 될 수 있다.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A씨는 훌리건들이 ‘지능적으로’ 활동한다고 했다. ‘훌리짓’(훌리건 행위) 과정에서 자칫 자기 학교 이미지를 해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까닭이다. “우리도 머리를 쓴다. 대놓고 어느 학교를 응원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도록 만든다. 예를 들면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을 두고 이야기할 때 한양대를 대놓고 응원하는 게 아니라 서강대를 깎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성균관대와 한양대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지능적 활동’이 간파당해 소속 학교를 노출당하는 경우도 있겠다.

=“한번은 한양대를 까는 훌리들이 유독 옹호하는 학교가 있었다. 서강대라 생각하고 욕하니까 발끈하더라. 그들은 한양대를 ‘이과만 잘나가는 학교’라고 욕한다. 성균관대는 ‘글경’(글로벌경영학과)으로 잘나가고, 서강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 자신감이 더 커졌다. 한양대는 법대도 아웃풋에서는 상당히 잘나간다. 법조계에서 자리를 잡았고 입시 결과도 괜찮다. 그런데 이걸 ‘다군 프리미엄’ 때문이라고 공격한다. (대학입시 지원학교) 다군엔 상대적으로 좋은 학교가 없어서 입시생들이 (그나마) 한양대에 원서를 넣는다는 거다. 어부지리라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공격했던 그 훌리는 예상대로) 서강대 학생이 맞았다.”

‘학교 수호’에서 ‘인터넷 전쟁’으로…

A씨는 훌리 활동이 대학 입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단언했다. “입시생들도 기본적인 정보를 다 알고 있어 배치표에 맞는 대학을 지원하지 훌리건들의 말에 휘둘릴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지금은 인터넷에 접속하면 별 생각 없이 (훌리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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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활동하는 동안 그의 생각은 처음 훌리건이 됐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처럼 훌리 활동 몇 년차 된 사람들 중에 실제로 ‘학교 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고학년이 되면 스펙 쌓고 취업 준비하기 바쁜데 누가 이러고 있겠나. 자기 점수 제대로 인정 못 받는 몇몇만 얼굴 시뻘게져서 댓글 다는 거다. 학교 점수를 올리고 싶으면 자기나 잘하거나 다른 홍보 방법을 제안하는 게 훨씬 이득일 것이다.”

그가 훌리건 활동을 하는 이유도 ‘학교 수호’에서 ‘인터넷 전쟁’ 자체로 바뀌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 학교를 위해 한다는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인터넷에서 욕하고 막말하는 게 재밌고 ‘키워’(키보드 워리어)가 재밌기도 해서 계속한다. 일단 싸움 자체가 주목적이 됐다. 흔히 말하는 ‘정신승리’(루쉰의 소설 주인공의 자기합리화 방식)다.” 훌리건 활동을 포기할 생각도 그는 아직 없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한양대와 중앙대는 ‘훌리짓’ 하는 상대 학교 학생들을 고소하며 학생과 학교가 한 몸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뜨거운 계절’인데도 A씨는 의외로 냉소적이었다.

“(중앙대와 한양대의 맞고소 사태를 보면 두 학교) 학생들이 허위 사실을 대놓고 유포했다. 별것도 아닌 걸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만큼 학교가 할 일이 없지 않다. (최근 중앙대가 한양대 학생을 고소한 것도 한양대 학생이) 애교심이랍시고 다른 학교를 깎아내리다가 그렇게 됐다.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자신의 만족을 위한 싸움이었는지 진짜 학교를 위한 싸움이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A씨는 한양대 입학처에서 다른 학교 훌리건들의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훌리건으로 활동하며 익힌 ‘전문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학생들의 자발적 훌리 활동과 학교의 이해득실 관계는 이처럼 묘하게 얽힌다.

“훌리건은 네거티브하게 활동하지만 ‘점공 카페’(점수공개 카페·소속 대학의 입시 결과를 분석해 공개)는 포지티브를 지향한다.”

한국외국어대 점공 카페지기 B씨는 점공과 훌리는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애교심으로 활동을 시작한다는 점은 점공 카페와 훌리건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애교심을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다. 입시 커뮤니티에서 훌리건이 활동하는 방식은 네거티브라고 할 수 있다. 점공 카페는 포지티브여야만 한다. 우리는 수험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는 곳이고, 한국외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공식 커뮤니티다. 마치 ‘과잠’(학교 잠바)을 입었을 때는 행동을 좀더 조심하는 것과 같다.”

“대학 서열화 존재하는 한 훌리건은 계속 존재”

B씨는 가지고 온 노트북을 켜고 화면을 보여줬다. 그가 운영하는 점수공개 카페가 떴다. “여기 게시판들을 한번 클릭해보라.” 직접 마우스를 움직여 클릭했다. 게시판이 열리지 않았다. “내가 게시판들을 폐쇄했다. 훌리건들 덕분이다. 점공 카페를 운영하다보면 훌리건들과 자주 대치하게 된다. 인터넷은 훌리건들의 집이고, 대학들은 훌리건들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점공 카페와 훌리건은 적대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평범한 2학년 학생인 B씨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인터넷 전사’로 변신한다. 노트북에 여러 개의 창을 띄우고 수험생들이 보내준 모교의 입시 결과 수치를 엑셀 파일로 정리한다. 정보 업데이트가 끝나면 디시인사이드나 ‘훌리건 천국’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한 바퀴 돌며 오늘은 무슨 ‘문제’가 없는지 모니터링한다.

-훌리건의 공격을 방어할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나.

=“지난해 우리 점공 카페에 훌리건들이 ‘출몰’했는데 정말 악질적이었다. 고소하고 싶을 정도였다. 정신적으로 받은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했다. 훌리건을 상대하면서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 학교가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인정받는 것도 아닌데’ 하는 회의감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점공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지금까지 모아둔 자료를 썩히기엔 너무 아깝다. 수험생들이 접하는 그나마 정확한 자료인데, 그만둔다고 생각하면 수험생들에게 미안해진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힘든 건 수험생 상담이 아니다. 재학생들 때문에 더 힘들다. 입시 아닌가. 그러니 점공 카페 운영도 학번마다 하는 것이 좋지만 실제로 그러기는 힘들다. 이 일을 하려는 재학생이 드물다. 많은 점공 카페가 문을 닫는 배경이다.”

본래 점공 카페는 훌리건과의 전투를 목적으로 탄생한 공간은 아니었다. B씨는 “수험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학교를 긍정적으로 홍보해 실력 있는 후배들을 받기 위한 곳”이라며 카페의 효용을 설명했다. 그는 점공의 필요성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카페에 있는 여러 입시 관련 최신 자료가 훌리건들을 모여들게 만든다. 훌리건들은 점공 카페에서 공개한 입시 결과 자료를 가져가 악용한다. 훌리들이 카페에서 표본을 무단 유출해 퍼뜨리는 경우가 있었다. 표본이 있다고 하더라도 허위 표본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블체크’ 후에 공개하는데, 훌리들은 표본을 사실 확인 절차 없이 긁어다 퍼뜨려 문제를 만든다. 우리 카페에서 나온 자료는 딱 보면 알 수 있다. 그 자료가 타 사이트에서 악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발견하면 즉시 게시판을 폐쇄한다.”

훌리건과 점공 카페는 대학 서열화가 만들어낸 ‘그늘의 양면’이란 지적이 많다. B씨는 “대학 서열화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대학 서열화가 존재하는 한 훌리건들은 계속 존재할 것”이며 “그럼 우리도 계속 훌리건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자신의 꼬리 잘려나갈 때까지 ‘영겁의 꼬리물기’

“훌리건들이 대학 서열화 없는 사회를 원한다고 말하기도 좀 애매하다. 훌리건들은 대학 서열화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자신의 학교를 끌어올리려 애쓴다. 대학 서열화가 사라진다면 (잠시 침묵) 더 이상 이렇게 애쓰지 않아도 될 테니 우리도 좀 편해질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차피 (서열화 해소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

점공 카페도 대학 서열화의 산물이란 이야기를 그는 끝내 하지 않았다. ‘학교를 위하겠다’고 나섰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싸움 자체에 취해버린 훌리건. 공개된 ‘입결’(입시 결과) 점수들을 훌리건 손에서 지킨다며 게시판 폐쇄로 맞받는 점공 카페지기. ‘인터넷 전사’인 그들은 사실 모교의 ‘서열’이 낮아지면 자신들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줄세우기 사회’의 피해자다.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되는 현실은 자신의 꼬리가 잘려나갈 때까지 타인의 꼬리를 물어뜯어야 하는 ‘영겁의 꼬리물기’와도 같다.

조봉현·강유나 한국외국어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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