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하느님의 자살골

등록 2014-06-24 15:21 수정 2020-05-03 04:27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의 망언폭탄이 터지면서 다시 한번 식민사관이 주목받고 있다. 사실 새로울 건 없다. 잊을 만하면 역사의 굽이굽이를 장식해왔던 전형적인 식민사관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망언 또한 이미 100년 전 군국주의와 뒤범벅된 일본 기독교가, 조선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놓았던 메뉴에 불과하다. 조선의 식민지배가 ‘하느님의 뜻’이란 게다.

그것은 바나나킥일 수도

목적론이란 거창한 철학적 개념은, 사실 그 논리가 매우 간단하다. 모든 게 하느님이 일부러 그랬단 식이니까. 조선이 식민화된 것도, 게으른 조선을 깨우쳐주시려는 하느님의 의도이고, 대한민국이 내전과 분단을 겪은 것도, 공산주의를 막아주시려는 하느님의 의도란다. 더 쉽게 요약하자면 ‘하느님, 슛, 골인’. (정신 못 차리는 민족에게 일부러 시련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슛은 바나나킥일 수도 있다.) 이러한 목적론은, 전지전능한 하느님조차 조준해야 할 골대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사실도 웃기지만, 이보다 더 웃긴 건, 이 슈팅에는 자살골이 더러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의도’ 때문에, 하느님은 자신이 부여한 시련이 야기하는 고통과 죽음에 대해 죄를 저지른 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의도’는, 하느님의 고의성이 된다. 그렇다면 일부러 시련을 가하고 조선 민족의 탄압과 학살을 야기한 하느님은, 고의적으로 사람을 살상한 죄인이 된다. 목적론은, 모든 역사적 현상들에서 하느님의 의도를 찾아내려다, 하느님을 역사상 최고 흉악범으로 만들어버리는 자살골을 범하는 셈이다.

하지만 자살골은 그 슈팅 순간에서의 실수만은 아니다. 자살골은, 그 슈팅이 나오기 이전부터 수비조직력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목적론의 자살골은, 그 이후보다는 그 이전이 더 흥미롭다. 만약 하느님이 조선 사람들이 500년을 게으름으로 허송세월 보낸 것을 아시고서는 의도적으로 시련을 준 것이라면, 500년 동안은 왜 보고만 있으셨을까? 500년 되는 해에 의도하시려던 것을, 왜 500년 동안은 의도하지 않으셨을까? 만약 일부러 의도하지 않으셨다면, 충분히 의도할 수 있었던 것을 의도하지 않으셨다는 의미에서, 하느님은 500년 동안 살상된 사람들에 대해선- 요즘 세월호 참사 재판으로 유명해진 개념인-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느님이 공산주의를 막으시려고 일부러 한국전쟁을 일으키셨다면, 그 이전에 공산주의를 방치하신 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아닌가?

종교인들이여 대답해주시길

요컨대 목적론은 두 가지 유형의 자살골을 넣는다. 의도 이후엔 ‘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하느님께 뒤집어씌우고, 의도 이전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하느님께 뒤집어씌운다. 사실 목적론이 진정 자살골을 넣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골에 있다. 하느님이 어떤 정해진 골대를 향해 골을 슈팅하는 플레이어라고, 즉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주체라고 상정하는 식으로, 목적론은 신을 인간적 지위로 격하시켜버리는 것이다. 목적론에 가장 분노해야 할 것은, 사실 나 같은 무교도가 아니라, 종교인 자신이다. 목적론은 신을, 정해진 골대와 정해진 룰을 따르는 그라운드의 플레이어로 격하시키고, 그 무한한 권능을 인간 주체의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목적론은 사실 신에 대한 멸시다. 또 그렇기 때문에 목적론은, 문창극과 같은 인간에 의해, 자기 입맛과 시류에 맞춰 이리저리 오용되고 남용될 수 있는 것이고.

목적론에서 여전히 위안을 받는 종교인이라면 대답해주시길. 그토록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왜 문창극 같은 사람이 총리 후보로 지명된 것이오? 이건 당최 무슨 뜻이오? 이건 당최 어떤 시련이오?!

김곡 영화감독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